10대 청소년이 마약 거래에 동원되는 사례가 부쩍 늘었다고 한다. 특히 일명 '던지기 수법'에 쓰이는 전달책은 이미 상당수가 미성년자인 상황. CBS노컷뉴스는 이처럼 10대 청소년까지 무차별적으로 끌어들여 판을 키우고 있는 마약 거래의 최신 실태를 집중 조명한다.
'드라퍼'의 세계
"형이 버는 돈은 네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야. 그리고 앞으로 더 많이 벌 거야. 그런데 형이 계속 장사하려면 '드라퍼'가 잘 해줘야 해. 형이랑 돈 벌자."
온라인 메신저에서 만난 마약 판매상 A는 17세 고등학생을 가장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드라퍼'란 직역하면 '투하하는 사람', 즉 전달책을 뜻한다.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만나서 거래하면 혹시 한 쪽이 잡혔을 때 꼬리가 밟혀서 같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중간에 다른 사람을 징검다리 삼아 거래하려는 것이다. 보통 이렇게 판매자가 전달책을 시켜서 마약을 특정한 장소에 놓게 하고, 그 뒤에 구매자가 찾아가는 방식이 마약 거래에 많이 쓰인다.
그런데 그 전달책이 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기본적으로 '텔레그램'이라는 보안성이 강한 메신저에서 접선이 이뤄지는데, 전달책을 모집하는 판매상의 계정이 공연히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CBS노컷뉴스 취재진이 온라인에서 검색을 시작하자마자, 즉 1~2분 안에 찾을 수 있었다. 10대 청소년들이 마약 거래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취재진이 접촉한 판매상 10여곳은 모두 고수익을 보장한다고 현혹했다. '형'을 운운하던 판매상 A의 경우 "한 달에 1천만원을 보장한다"며 "절대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를 비롯한 판매상들이 소개한 임무는 제법 단순했다. 말 그대로 마약을 '툭 던져놓기만' 하면 된다고 했다. 투척 장소는 폐가와 같이 인적이 드문 곳부터 상가 건물 내부,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 같은 일상적 장소까지 다양했다.
그리고 그런 일을 서울 강남 등 수요가 많은 곳에서 수행할 경우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마약 판매상 B는 기자에게 "강남, 서초, 역삼을 무대로 계속 돌면 하루에 100만원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전했다.
"교복 입고 해도 된다"
판매상 입장에서는 전달책만 제 기능을 발휘한다면 혹여 구매자가 당국에 적발되더라도 본인의 존재가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 때문에 늘상 전달책 구인에 애쓰고, 쉽사리 큰돈을 건넬 수 있는 것이다.
마약 범죄 전문가 박진실 변호사에 따르면 이들은 "절대 잡힐 일 없다. 잡히면 우리가 변호사 비용이나 영치금도 다 대줄 테니 걱정하지 마라"라는 식으로 전달책 지원자를 설득한다고 한다.
반면 전달책이 물건을 낚아채 '잠수'를 한다거나 여타 다른 말썽을 일으킬 경우 판매상에게 막심한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 전달책 지원자를 꼼꼼히 검증하는 이유다.
실제로 취재진과 접촉한 판매상은 모두 '신분 인증'과 '보증금'을 요구했다.
신분 인증은 대부분 신분증을 찍어서 보내라는 식이었다. 판매상 C의 경우 "신분증을 들고 본인 얼굴과 현재 시간이 같이 나오게 사진을 찍어 보내라"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기자가 '학생 신분'이라고 밝혔지만 이를 문제 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대부분 학생증으로 대체가 가능하다고 했고 "학원 끝나고 밤늦게 해도 된다"거나 "교복 입고 해도 된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밖에 대통령 이름에 욕설을 붙여 '윤석열 XXX'라는 구호를 녹음해서 음성메시지로 보내라는 사례도 있었다. 이렇게 신분증이나 목소리를 넘기게 되면 전달책 스스로가 판매상을 배신하지 않고 '자기 검열'하게 된다고 경찰 관계자는 설명했다.
아울러 판매상이 요구하는 보증금은 최소 200만원부터 시작했다. 계좌 추적을 피하기 위해 거래는 가상화폐로 제한됐다. 코인 지갑이 없는 경우 '대행업체'에 송금하면 알아서 처리해준다고 했다.
전달책이 구매자로, 나아가 판매자로 전환
그런가 하면 전달책은 주로 급전이 필요하거나 생활이 궁한 경우가 많다고, 관련 사건을 맡았던 경찰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렇게 시작한 범죄는 "보통 처음에만 겁이 나지 하다 보면 점점 무뎌지게 된다"(서울 지역 마약 전담 형사)고 한다.
문제는 청소년 범죄의 특성상 또래 집단 내 확산 속도가 무척 빠르다는 점이다.
나아가 처음에는 전달책으로 가담했다가 호기심에 마약을 '찍어 먹어보는' 경우도 상당하다고 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박영덕 중독재활센터장은 "심부름 하다 돈이 생기고, 또 마약도 자꾸 받다 보면 호기심에 투약할 수 있다"며 "또 그러다 보면 약을 받다가 판매책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달책이 구매자로, 나아가 판매자로까지 전환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마약 판매상 B는 기자에게 "만약 마약을 하게 되면 얘기하라"며 "그때는 따로 샘플을 드리겠다"고 하기도 했다. 물론 마약이나 향정신성 의약품을 소지하거나 매매하는 행위는 최대 무기징역까지 처해질 수 있는 중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