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최근 지도부를 비판해온 홍준표 대구시장을 당 상임고문직에서 해촉했다. 김 대표는 현직 지방자치단체장은 상임고문을 맡지 않는다는 '관례'를 해촉 이유로 꺼내 들었지만, 그간 홍 시장이 지도부를 질타해온 데 대한 사실상의 징계인 것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하지만 당내에선 "문제 해결의 순서가 바뀌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김 대표는 1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를 두고 당 안팎 인사들의 과도한 설전이 도를 넘고 있다"며 "특정 목회자(전광훈)가 국민의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당 지도부가 그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라고 말했다.
이어진 비공개회의가 끝난 뒤 홍 시장의 상임고문 해촉 사실이 알려지자 김 대표는 "우리 당 상임고문의 경우 현직 정치인으로 활동하거나 현직 지자체장으로 활동하는 분은 안 계신 것이 그간 관례였다"며 "그에 맞춘 정상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결정의 속내엔 김 대표와 홍 시장이 최근 들어 김재원 최고위원의 논란을 두고 불편한 관계가 된 게 주된 원인이란 해석이 다수다.
홍 시장은 김 최고위원이 최근 극우 인사인 전광훈 목사와 접촉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 헌법 수록에 반대한다"거나 "제주 4·3사건은 3·1절, 광복절보다 격 낮은 기념일 내지는 추모일" 등 논란의 발언을 이어간 점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당 지도부의 조치가 김 최고위원의 '셀프 자숙'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김 대표를 향해선 "살피고 엿보다가 끝나는 판사식 정치를 하고 있다" "(전 목사를) 이사야 같은 선지자라고 스스로 추켜세웠으니 그 밑에서 잘해 보시라"는 취지로 잇따라 날을 세웠다.
김 대표의 결정은 홍 시장이 중앙정치에 말을 보탤 '자격'에 힘을 빼기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된다. "지방자치행정을 맡은 사람은 그에 전념했으면 좋겠다"는 김 대표의 말에 홍 시장이 "나는 그냥 대구시장이 아니라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내고, 없어질 당을 바로 세운 유일한 현역 당 상임 고문이다. 중앙정치에 관여할 권한과 책무가 있다"고 반박한 점을 겨냥한 셈이다.
그러나 김 대표의 결정을 둘러싸고 당내에선 여러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의 한 관계자는 "홍 시장이 최근 김 대표를 다소 과하게 비판하고 있다는 생각은 했지만, 해촉 조치는 그보다 더 당혹스러웠다"라며 "홍 시장이 그런다고 김 대표까지 강 대 강으로 맞서 처리할 일인가 싶다"라고 말했다.
당내 한 초선 의원 역시 "순서가 잘못됐다. 당원이 아니란 말로 전 목사에 대한 비판을 피할 게 아니라, 당을 흔드는 외부 언사에 더 분명하고 강하게 경고해야 했고, 그 다음은 김 최고위원에 대한 조치여야 했다"며 "홍 시장이 잘했단 건 아니지만, 왜 이 시점이어야 했는지 공감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 대표 측의 한 관계자는 "전날 지도부와 당 중진 의원들 간 연석회의에서도 당내 기강에 대한 우려가 나왔다"고 설명했지만, 이것이 김 대표가 홍 시장에 대한 조치를 요구한 건 아니란 게 참석자의 말이다.
해당 회의에 참석했던 한 중진 의원은 "연석회의에서 나온 중진 의원들의 말은 대표로서 앞으로 당내 기강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을 뿐, 홍 시장 등에 대한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취지의 언급은 전혀 없었다"며 "상임고문을 전례 없이 해촉한다는 건 사실상 징계에 가까운 일인데, 설령 특정 인물에 대한 조치를 내려야 했다면 당연히 김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가 선행됐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반면, 홍 시장의 그간 발언 수위를 고려하면 김 대표의 결정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온다. 국민의힘의 또 다른 상임고문은 "당 상임고문이란 사람이 왜 자꾸만 언론에 나와서 그러는지 모르겠다. 처음 목도하는 일"이라고 홍 시장을 비판하면서 "상임고문쯤 되면 당내 문제는 지도부에 개별적으로 조언해야 한다. 당 밖에서 싸움판을 벌여 치고받고 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