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항준 감독의 입담과 재주는 비단 예능 등 방송에서만 빛나는 게 아니다. 영화 '라이터를 켜라'(2002) '불어라 봄바람'(2003) '기억의 밤'(2017) 등의 연출은 물론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2020) '북경반점'(1999) '박봉곤 가출 사건'(1996) 등의 각본, '끝까지 간다'(2014) '귀신이 산다'(2004) 등 각색에 참여하며 연출자이자 작가로서 재능을 뽐내왔다.
'송은이 김숙의 영화보장'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알쓸범잡'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인간잡학사전' 등 방송에서의 장항준 감독, 이른바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 장항준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리바운드'의 장항준은 낯설면서도 어느 때보다 '장항준'답게 다가갈 수 있다. 영화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며 유쾌하면서도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인다.
늘 재치 있는 입담으로 분위기를 주도하는 그이기에 긴장이라고는 일(1)도 하지 않을 것 같지만, 이번 '리바운드' 개봉을 앞두고는 "굉장히 긴장된다"고 말했다. 장항준 감독의 목표는 60대에도 영화 현장에 있는 거라고 한다. '리바운드'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 이번에는 '감독 장항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기로 했다.
'멘붕'이었던 시기 거쳐 이제는 '긴장된다'는 장항준
▷ 지난해 봄부터 여름까지 치열하게 달려온 시간을 이게 관객들에게 선보이게 됐다.
원래 안 쪼는 스타일인데, 굉장히 긴장된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나랑 같이 영화 시작한 동료 중 지금도 하고 있는 동료가 별로 없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이 나이가 들수록 소수만 살아남는다. 영화는 흔히 '청춘의 예술'이라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감각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 관객층이 다 젊은 분이라…. 관록이나 노하우는 많을지 몰라도 졸업한 지 몇 년이 됐으니 학교 이야기를 리얼리티 있게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시사회나 무대 인사를 갔는데, 아 정말…. 난 오랜만에 영화를 하게 됐지만, 제작사는 매년 몇 편씩 내는 회사다. 홍보하는 분도 일 년에 몇 개씩 홍보하는 분인데, 최근에 이렇게 시사회 반응이 좋은 적이 없었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후기들을 계속 보니 너무 좋아하시더라. '어? 진짜 잘 되려나?' 막 그런 기대를 살짝 하게 됐다.
▷ 지난해 1월 영화의 바탕이 된 실화의 주인공, 프로농구 삼성 가드 천기범이 음주운전을 한 소식이 전해졌다. 이때 당혹스러웠을 것 같다.
멘붕이었다. 영화를 하다보면 많은 일이 벌어진다.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있고, 없는 게 있다. 그걸 떠나서 난 이 작품의 수장이니까 흔들리면 안 됐다. 흔들리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작품에 대해 규정지은 게 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는 꿈을 잃어버린 25살 청년과 아무도 주목하지 않고 소외된 6명의 소년들이 여행 떠나는 이야기다. 누구 한 명이 중요하지 않았다.
▷ 장항준 감독의 코미디가 갖는 특징은 철들지 않은 어른의 감성인 것 같다. '리바운드'에서 안재홍이 연기한 강양현 코치 역시 장항준의 감성이 잘 묻어났다. 어른이지만 어린이 같은 감성을 어떻게 유지하는지 궁금하다.
그냥…. 위장하지 않는 거? 뭔가 생각 깊은 척하지 않는다. 그런 게 다 귀찮다. 어릴 때부터 누구도 나에게 기대 안 했으니까 그런데 익숙해 있고, 잘난 척할 필요가 없었다. 다 내 정체를 알았으니까. 난 다 못했다. 그렇게 골고루 다 못하는 건 흔치 않았다. 줄넘기라도 잘하든지 해야 했는데, 난 다 못했다. 다 못했기에 귀엽기만 했다. 맨날 어른들은 날 보고 귀여워하면서도 속으로는 "쯧쯧쯧쯧" 이런 느낌이었다. 사실 세상이 바뀐 거다. 난 그대로인데….
"60대에도 영화 현장에 있고 싶다"
▷ '리바운드'에 앞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인 '오픈 더 도어'를 통해 감독으로서의 내공을 마음껏 선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작품이 소중해진다. 영화감독이 오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보니, 언제 은퇴할지도 모르고….(웃음)
▷ 사실 감독으로서의 역량도 뛰어난데 그동안 방송에서만 활동한 게 아쉬울 정도다. 그런데 방송에 많이 나오면서 '방송인'으로서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지 궁금하다.
사실 방송하면 부담스럽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KBS 개그 공채 몇 기도 아닌데 예능작가 출신이라 그들의 마음을 잘 알아서 그런지 가면 웃겨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게 진짜 소비되는 걸 잘 안다. 옛날에는 방송에 나와도 재방 삼방이 적어서 잘 소비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재방 삼방 사방에 유튜브까지 나오면서 이미지 소비가 극심하다. 물론 많이 찾아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이제 '리바운드' 홍보 활동이 끝나면 안 하려고 한다.
▷ 감독으로서 연출하면서 중요시하는 지점은 무엇인가?
작품적으로는 왜 이 시기에 이 영화는 만들어져야 하나. 왜 하고많은 기획 중 이 영화는 세상에 나와야 하냐에 의미를 부여한다. 나뿐 아니라 다른 감독님도 그럴 거다. '왜?' '왜 내년이 아니고 지금?' '왜 저 삶이 아니고?' '왜 내가 해야 하나?' '이게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라는 질문을 꾸준히 한다. 실제 현장에서는 악당들과 한 지붕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 않다.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나쁜 놈이랑은 일하기 싫다. 그러지 않고도 성공하고 평가받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리라!(웃음)
▷ 2017년 영화 '기억의 밤' 인터뷰 당시 영화판에 오래 있고 싶다고 했다. 지금은 감독으로서 또 다른 목표나 소망이 생겼을지 궁금하다.
목표는 60대에도 영화 현장에 있는 거다. 이제 55살이다. 아, XX, 진짜….(웃음)
▷ 아까 '이게 세상에 어떤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라는 질문을 꾸준히 한다고 했다. 지금 장항준 감독의 관심사는 무엇인가?
누가 먼저 해버렸는데, 10·26 사태다. 기회가 되면 하고 싶은데 너무 앞에서 잘해버렸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안 될 거 같고…. 현대사라기보다 그런 걸 해보고 싶다. 내 아버지가 청년이었던 시절에 이야기 말이다. 그의 청소년기와 청년기? 아버지한테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해보고 싶다. 그런데, 관객들이 안 보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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