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 중·고교농구대회, 6명의 엔트리로 출전한 최약체 팀이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코트 위에서 파란을 일으킨다. 과거의 명성을 잃고 존폐 위기에 놓였지만 간신히 선수들을 영입해 팀을 꾸린 신임 코치와 6명의 선수가 일궈낸 연승의 쾌거는 세상을 놀라게 했다. 바로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제 이야기다.
이 실화의 감동을 스크린에 옮긴 건 '눈물 자국 없는 말티즈' '신이 내린 꿀 팔자' 등의 수식어를 얻으며 사랑받고 있는 '만능 재주꾼' 장항준 감독이다. 한국에서 있었나 싶을 정도로 놀랍고도 재밌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자세히 찾아봤고 연출을 하게 된다면 조금 더 실제에 가깝게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리바운드'가 탄생했다.
국내에서 인기 없는, 이른바 '흥행 열세'의 장르인 '스포츠'였다. 더군다나 '신인 배우'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무도 '리바운드'에 투자하려 하지 않았다. 마치 부산중앙고처럼 '리바운드'팀도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때 장 감독의 손을 잡아준 건 의외로 게임업체 넥슨이었다. 그렇게 투자를 받아 시작한 영화에서 장 감독이 '화룡점정'을 찍도록 도와준 것 역시 넥슨이었다.
'인생은 장항준처럼' '신이 내린 꿀 팔자'라는 수식어가 이렇게 '리바운드'까지 이어졌다. 스스로도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개봉을 앞둔 지난 3월,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장항준 감독을 만나 운 좋게 시작한 '리바운드'를 어떻게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의 정신으로 완성했는지 들어봤다.
"넥슨이 없었으면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다"
▷ '리바운드'는 게임회사 넥슨의 투자를 받아 제작된 영화라는 점에서도 눈에 띈다.
투자에 난항을 겪고 있을 때였다. 당시 넥슨이 시나리오를 보고 굉장히 좋아했다. 얼마 안 있다가 투자가 결정됐다. 넥슨이 없었으면 이 영화가 존재하지 않았을 거다. 당시 넥슨 관계자가 "우리는 돈 벌고 싶어서 영화에 투자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데 깜짝 놀랐다. 투자자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일 없다. 돈이 걸린 문제인데…. '장원석('리바운드' 제작사 대표)이 몰카를 설치했나?' 별생각 다 했다.
▷ 투자자인 넥슨과의 일화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
지금까지 이렇게 좋은 투자자를 만나본 적 없는 거 같다. 그 전 투자자들도 너무 감사했지만, 전액을 선뜻 내주신 것고 그렇고 그 이후 과정에서도 모든 걸 물심양면으로 서포팅해주고 필요한 게 있으면 이야기만 하라고 하셨다. 한번은 부산중앙고에서 찍고 있는데 점심 밥차로 넥슨에서 보낸 호텔 뷔페가 왔다. 처음으로 영화 현장에서 호텔 뷔페를 받아봤다.
딱 그런 말이 생각났다.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 내 동료 감독들이 어떻게 꼬셨냐고, 넌 왜 이렇게 운이 좋냐고 물어봤다. 그때가 영화에 대한 신규 투자가 조금 잘 안되기 시작할 때였다. 만들어지기 쉽지 않은 장르이고, 쉽지 않은 영화인데 온전히 시나리오를 믿고 투자해준 데 감사하게 생각한다.
▷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이미 다 알려진 결말이기도 하다. 실화가 곧 스포일러인데, 그렇기에 이걸 알면서도 긴장되고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드는가에 대한 고민도 컸을 것 같다.
농구 영화니까 농구 경기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편하게 찍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선 관객들이 경기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경기장에 있단 느낌을 받으려면 카메라가 밑으로 내려가 있어야 하고 컷을 끊으면 안 된다. 사실 미국 농구 영화를 보면 엄청 끊는데, 그만큼 한 번에 찍기가 힘들다.
그래서 선수 역할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들도 나중엔 독이 올라서 열심히 했다. 내가 고생 안 하니까 너무 좋더라.(웃음) 진짜 우리 배우들의 '리바운드'였다. 배우들이 다들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인 배우들이라서 이 작품이 되게 중요한 거다. 본인들 이야기와도 거리가 떨어져 있지 않다. 그들이 진짜 노력했다. 경기를 순서대로 찍었는데, 자세히 보면 살이 쪽쪽쪽쪽 빠지는 게 눈에 보인다. 그들의 노력이 화면에 자연스레 묻어났다.
▷ 그만큼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것도 힘들었을 것 같다.
연기 잘하는 사람이 농구도 잘하기 쉽지 않다. 반대도 그렇다. 캐스팅 제한이 되게 심했다. 실제 경기를 구현해야겠다고 생각했기에 선수들 신장도, 생김새도 비슷해야 했다. 그러면서도 농구를 잘해야 하니 캐스팅하기 제일 힘들었다. 그 친구들도 이야기하더라. 2022년이 잊히지 않을 거 같다고 말이다. 너무 큰 기회였고, 아낌없이 불살랐고, 힘들었지만 재밌게 같이 있었으니 잊을 수 없을 거 같다고 그러더라.
"당신이 지금까지 본 건 다 진짜다"
▷ 해설위원의 해설이 실제 중계처럼 느껴지면서도 농구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선수들의 상황을 설명해주는 일종의 내레이션 역할을 톡톡히 했다.
대부분의 장면은 실제 해설진 앞에서 경기했다. 현장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그거였다. 너무 보이는 게 해설진 둘만 찍는 거 말이다. 시사회를 본 일반 관객들이 농구장에 있는 거 같았다고 하시더라. 직관하는 거 같았다는 건 그런 이유가 크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경기 결과를 알고 있음에도 그냥 빨려 들어가게 된 거 같다.
▷ 부산에서 로케이션을 진행했는데, 부산의 어떤 모습을 담아보고자 했나?
부산은 맨날 해운대 가서 회 먹고, 술주정하다 오는 곳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부산은 달랐다. 서울 사람이 가는 관광지가 아니라 생활이 있는 부산이라고 콘셉트를 잡았다. 실제 선수들이 살았던 곳이고, 부산중앙고도 마찬가지다. 로케이션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십여 년 전에 부산이 있어야 했고, 십여 년 전 골목이 있어야 했다. 외국인은 명동과 경복궁에 가면 서울을 다 봤다고 하지만 사실 사람들은 쌍문동, 내발산동에 산다. 그런 생활감이 중요했다. 부산에서 시사회를 했는데, 관객들 반응이 너무 좋은 거다. "그래! 이게 부산이지!"(웃음)
▷ 엔딩에서 배우들의 모습과 실제 코치와 선수들의 모습을 교차한 장면이 많은 관객에게 감동을 안기고 있다.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원래 엔딩은 촬영 들어가기 직전까지 없었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각색을 하면서 뭔가 좀 더 실화의 느낌 줄 순 없을까 고민했다. 맨 처음 실화 바탕으로 제작됐다는 거 빼고는 (실화라는 걸) 관객들이 잊을 거 같더라. "당신이 지금까지 본 건 다 진짜"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촬영 전에 옛날 부산중앙고 사진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물화처럼 되어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 움직이면서 가야 했기에 엔딩 장면 찍는 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다. 고개, 손 위치 등 개인 샷은 대부분 플레이 중에 나온 거라 아무리 보고 해 봤자 할 때마다 동작이나 표정이 달라진다. 그걸 맞추는 데 테이크를 하나 당 20번 이상씩 갔다. 찍으면서 다들 속으로 '이렇게 할 만한 가치가 있나?' 생각했을 거다.(웃음)
▷ 엔딩 장면 사운드트랙으로 나온 그룹 펀(FUN.)의 '위 아 영'(We Are Young)은 그 장면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 일등 공신이었다.
사실 너무 좋았지만, 팝송이 너무 비싸서 살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다른 것도 깔아보자 했는데 '위 아 영'이 제일 잘 맞는 거다. 나중에 블라인드 시사 때 넥슨 분들께 보여드렸다. 그때 분위가가 거의 그랬다. "와!!!" 넥슨 분들이 보시더니 전화가 왔다. "감독님, 그거 저희가 사겠습니다. 이 영화에 이 곡만큼의 대안이 생각나지 않습니다"라고 하는 거다.
기본적으로 팝송은 돈이 억대다. 영화는 영사 한 번당 돈을 내야 한다. 사실은 그게 '화룡점정'이 됐다고 생각한다. 영화 한 편이 나오려면 수많은 난관과 위기가 있고,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고, 그때그때 찰나의 순간 판단도 중요하고, 수많은 운이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내 능력 밖에 있는 일들이 되게 잘 풀린 거 같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