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은 튕겨 나온다. 그걸 다시 잡으면 되는 기다."
과거 전국대회 MVP까지 했지만 지금은 공익근무요원 강양현은 전무한 경력에도 과거 이력 덕분에 모교인 부산중앙고 농구부 코치가 된다. 프로 2군 출신이라는 꼬리표 때문에 선수들에게까지 무시당하지만, 결국 양현은 한 번의 실패를 거친 후 선수들을 진심으로 끌어안는다. 학교의 지원도, 돈도, 선수도 없다. 그러나 양현과 아이들은 해보기로 한다. 이미 한 번 튕겨져 나온 거, 다시 잡기로 한 거다. 이토록 좋아 미치는 농구를 말이다.
다시 읽어봐도 답 안 나오는 스펙을 가졌지만 뜨거운 열정으로 네트를 갈랐던 만섭('족구왕')을 통해 청춘의 순간을 그려냈던 배우 안재홍. 그가 이번엔 강양현 코치가 되어 심장이 뜨거워지는 코트 위로 돌아왔다. 2012년 전국 중·고교농구대회에서 파란을 일으킨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다룬 '리바운드'에서 안재홍은 강 코치를 '살아 숨 쉬는 인물'로 그려냈다.
안재홍은 강 코치를 연기하기 위해 당시 선수들 경기 영상, 인터뷰, 기사 스크랩 등 무려 30GB에 이르는 데이터를 모두 봤다. 그렇게 말투부터 작은 동작 하나까지 관찰한 후 자신 안에 체화했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자신을 사로잡았던 '슬램덩크'의 뜨거움까지 '리바운드' 안에 쏟아냈다. 개봉을 앞둔 어느 날, 수줍게 인터뷰를 시작한 안재홍은 어느새 영화에 대한 열정을 동력 삼아 장항준 감독 못지않은 입담을 뽐냈다.
진짜 사랑했던 것을 찾아가는 이야기
▷ 처음 '리바운드' 시나리오를 받아본 후 인상 깊었던 지점은 무엇인가?
'스포츠'라는 단어보다 '농구'라는 단어가 더 크게 와 닿았다. 나에게 '농구'는 예전에 우리가 굉장히 열광했던, 그리고 운동장에서 막 땀에 젖을 정도로 했던 스포츠였다. 난 '슬램덩크' 만화책을 보고 자란 세대고, 농구대잔치 열풍을 겪었다가 어느 순간 뭔가 추억처럼 된 스포츠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게 스포츠 영화로서 어떤 걸 보여준다기보다 우리가 진짜 사랑했던 것, 우리가 정말 미치는 것, 좋아 죽겠는 것, 뜨거움을 찾아가는 이야기라 더 좋았다.
▷ 장항준 감독 말로는 이번 역할을 위해 증량을 빠르게 해 와서 놀랐다고.
일주일 동안 10㎏를 증량했다. 그런 분들이 간혹 있다. 살찌고 싶은데 안 쪄서 고민인 분들에게 식단을 짜줄 수 있을 정도로 난 정말 쉬웠다.(웃음) 단시간에 피자와 갈릭 디핑 소스로 해냈다. 그리고 증량은 가속도가 붙더라. 멈추는 게 어렵다. 딱 그 지점에서 멈추는 게 쉽지 않다. 그리고 증량한 후부터는 '유지'라는 개념으로 가야 한다. 그게 쉽지 않다. 또 빼는 거야말로 고난도다. 지금 살짝 공복 유산소 운동을 해보고 있다.
감독님이 굉장히 해맑게 웃으셨다. 살쪄서 나타났을 때 "오?" 이러면서 입꼬리가 올라갔다. 감독님 특유의 말투로 "오~ 좋은데?"라고 말씀해주셔서 나도 기분 좋았다. 실제 강 코치님도 "우와!"라며 놀라시더라.(웃음)
▷ 실제 강 코치와 비슷하게 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
실제 영상이나 사진을 봐도, 강 코치님을 어떤 캐릭터로서 봤을 때 상징적인 포즈가 있다. 항상 벨트 라인에 손을 올린다. 사실 생각해보면, 젊은 공익 출신이 처음 감독을 맡아 첫 경기 치르러 나갔을 때 얼마나 떨렸겠나 싶다. 강 코치님을 보면 베테랑 코치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일부러 동작을 크게 한다. 더 과한 제스처를 취한다든가 선수들에게 괜히 더 소리도 지르게 된다. 그 마음을 잘 표현하고 싶었다.
'리바운드' 현장에 '슬램덩크' 마지막 권 들고 간 안재홍
▷ 강 코치 역할을 맡길 잘했다고 순간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20대 때 정말 얼굴이 새까매질 정도로 족구를 한 경험도 있어서 그런지 선수 역할 배우들과 더 친해졌던 것 같다. 선수 역 배우들도 '족구왕'을 너무 좋아해 줬다. 모든 작품이 처음이고 새로 시작한 마음은 다 똑같다. 조금이라도 형처럼 현장에 있으려 했다. 선수들 의욕도 대단했다. 그래서 혹시나 부상당할까, 나중에 지쳐서 중요한 경기 장면에서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할까 봐 내가 오히려 진정시켜주기도 했다.
경기 장면도 한두 달 안에 계속 찍어야 했다. 상대 팀 배우들은 바뀌는데 우리는 계속 이겨서 올라가는 팀이라 체력적으로 정말 고됐다. 그래서 우리끼리 파이팅이 있었다. 체격 조건도, 플레이 성향도 다른 고교 팀이 오면 "쫄지 말자" "기세로 가자" 이렇게 서로서로 '파이팅'하면서 갔다.
▷ 지금 '더 퍼스트 슬램덩크'가 큰 인기를 끌면서 거대 팬덤을 형성했는데, 이게 영화에 부담이 될 것으로 보나? 아니면 기쁨으로 작용할 거라 보나?
'슬램덩크'는 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완결이 난 작품이다. 부산 집에서 '슬램덩크' 마지막 권을 봤던 기억이 마치 '인터스텔라'처럼 떠오른다. 서태웅과 강백호의 하이 파이브를 거실에서 봤던 기억이 있다. 성인이 되어선 컬러로 나온 '슬램덩크' 전권을 샀다. 그리고 집에는 예전 말로 브로마이드라고, 포스터를 걸어 놨었다.
난 항상 '리바운드' 촬영장에 부적처럼 '슬램덩크' 마지막 권을 들고 다녔다. 대본을 보다가도 환기하고 싶을 때 다시 봤다. 그거 아나? '슬램덩크' 마지막 권은 대사가 거의 없다. 보면서 "이거다!" "이걸 상기하자!" "이 뜨거운 걸 담아내야 한다" 마음먹었다. 나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를 봤는데, 초반 오프닝 장면에서 만화책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인물들이 걸어 나오는데 눈물 나더라. 나도 뜨거워졌다. 그런 '슬램덩크'가 기쁨이 됐으면 좋겠다.
▷ 코치의 시선으로 북산고와 중앙고의 전력을 비교해 본다면?
대본을 받았을 때 그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누가 강백호일까, 누가 서태웅일까. 의미 없는 비교였던 거 같다. 개인적으로 '슬램덩크'에 안경 선배(권준호)가 투입돼서 3점 슛을 터트리는 장면이 있다. 볼 때마다 눈물 흘리는 장면인데, 우리 영화에서 허재윤(김민)이 3점 슛을 넣을 때 비슷한 감정을 받았다.
시나리오에서도 이미 큰 울림으로 다가왔던 장면이다. 못하는 애들이 모인 팀에 더 못하는 애가 결정적인 순간에 전세를 뒤집어 버리는 카타르시스가 있다. 그 장면은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였다. 렌즈가 대포만 한 800fps의 초고속 카메라로 촬영했다. 마치 예전 '스펀지' 실험에서 봤을 법한 그런 거 말이다.
▷ '리바운드'만의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
우리 영화는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다. 나도 그렇지만,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때가 많다. '리바운드'는 지금을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말을 하는 거 같다. 그 메시지를 농구 장면 속에 내포하고 있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