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사랑스러움을 불러일으켰던 배우 전도연이 이번에는 청부살인업계의 전설적인 킬러이자 10대 딸의 싱글 맘인 길복순으로 돌아왔다. 성공률 100%, 업계에서는 '킬(kill)복순'이라고 불릴 만큼 모든 이가 인정하는 킬러다. 킬러 길복순의 미소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서늘함이 있다.
길복순의 또 다른 역할은 '엄마'다. 홀로 15살 딸 재영(김시아)을 키우는 복순은 차라리 사람을 죽이는 게 '심플'하다고 할 정도로 아이를 키우는 게 너무나 어렵다. 싸움 상대의 수는 읽을 수 있어도, 재영의 수는 아무리 읽으려 해도 보이지 않는다. 딸 재영을 대하는 복순의 미소 속에는 어딘지 모르게 난감함이 있다. 그런 딸을 위해 복순은 오늘도 사람을 죽이러 간다.
'길복순'은 전도연의 필모그래피 사상 가장 고강도 액션이 가장 많은 작품이다. 롱테이크 촬영이 많고 얼굴이 보이는 장면이 많다 보니 대역도 쓸 수 없었다. 매 작품 자신을 한계까지 몰아붙이는 전도연은 이번 액션을 소화하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한계에 거듭 부딪히며 '킬러 길복순'을 만들어냈다. 지난 5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전도연은 "보여줄 액션은 다 보여주지 않았나"라며 웃었다.
"'길복순' 액션, 한계에 부딪히며 해냈다"
▷ '길복순'이 공개 3일 만에 글로벌 톱 10 영화(비영어) 부문 1위를 차지했다.
(박수치며) 와! 감사하다!(웃음)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3일 만에 1위를 하니 뛸 듯이 기쁘고, 통쾌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다.
▷ '길복순'은 변성현 감독이 전도연을 놓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들었다.
나를 놓고 써보고 싶다고 해서 너무 반갑고 감사했다. 중간에 엄마와 딸 이야기도 들어간다며 나와 내 딸의 관계를 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많이 왔다.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는 생각보다 액션이 많아서 당황했다. 이야기 자체는 세계관이 영화나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많이 연관돼 있기에 무늬만 바뀐 듯한 느낌이 들어서 이질감은 없었다.
▷ 실제 딸과의 관계 중 어떤 점들이 비슷하게 반영된 것 같나?
엄마를 '입닥'(입 닥치다)하게 만드는 부분들? 지금 한창 사춘기이기도 하고 자기 자아가 생겨서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때가 있다. 예전에는 무조건 엄마 행동이 다 맞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건 맞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런 게 많이 투영된 거 같다.
▷ 필모 사상 가장 고난도이자 가장 많은 분량의 액션을 선보였다. 액션은 잘 맞았나?
안 맞았다. 너무 힘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잘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꼭 해내야 한다는 악바리 같은 근성으로 해냈다. 촬영하면서도 마음과 다르게 육체적으로 한계도 오고, 내가 반복해서 해도 해내지 못하는 것도 있고, 그런 부분에 부딪히면서 해냈다.
▷ 어떤 액션 신이 가장 힘들었나?
다 힘들긴 했는데 첫 액션이 황정민씨와 다리 위 신이었다. 연습은 오래 했는데 처음 실전에서 하는 거였는데, 마음처럼 잘되지 않았다.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 촬영이었다. 당시 황정민씨가 액션도 하고 일본어도 해야 하는데 시간은 많지도 않았고, 5일 안에 찍을 수 있는 분량인지에 대해서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했다. 시간적으로도 여유가 없었는데, 계속 황정민씨가 충분히 잘했다고 하는데도 내 욕심에 "한 번만 더 해볼게요" 그랬다.
▷ 그렇다면 보람 있던 액션 신은 무엇이었을까?
각각 특색 있게 액션이 잘 나오지 않았나? 후반작업도 공을 들였고. 상가 식당 신은 거의 한 달 가까이 촬영했다. 배우들도 많이 나오고, 한 공간이지만 스팟(지점)이 여러 군데 있었다. 그렇게 계속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액션이 조금 편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감독님이 지금 컨디션이면 오프닝 신을 다시 찍어도 더 잘할 수 있겠다고 했는데 다시 찍을 수 없었다.(웃음)
▷ 액션을 더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나?
액션은, 보여줄 건 다 보여주지 않았나.(웃음) 감독님도 이렇게까지 배우들이 고생하는지 몰랐던 거다. 감독님도 두 번 다시 액션은 안 할 거라고 말했는데,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웃음)
전도연에게 단비 같은 작품이 된 '길복순'
▷ 설경구와는 이번이 세 번째 작품이지만 같이 액션 신을 찍은 건 처음이다. 액션 합과 이번 작품에서의 호흡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셜경구씨가 굉장히 많이 기다려주고 맞춰줬다. 내가 엔딩 액션을 찍을 때 굉장히 지쳐있고 힘든 상황이라서 내가 편하게 많이 맞춰줬다. 그리고 시나리오 읽었을 때는 그렇게 멜로가 많이 와닿지는 않았다. 표면적으로 많이 드러나 있지 않았다. 설경구씨가 산같이 옆에 있어 줬다고 했는데, 결국 산을 오르다 보면 그 사람이 가진 감정이 느껴지는 거다. 그게 몰랐는데 멜로였다. 설경구씨가 만들어준 멜로는 작품을 찍으면서 알았다.
사실 나도 재영이가 누구 딸인지 궁금해서 감독님에게 물어봤다. 나도 민규 딸인 거 같더라. 그런데 감독님이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복순이가 아이를 선택했을 때는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선택한 거라 생각한다.
▷ 감독의 디렉션이 워낙 세세해서 처음엔 당혹스럽기도 했다고 들었다.
설경구씨도 나랑 배슷한 배우인데 '불한당' 촬영할 때 굉장히 많이 싸웠다고 하더라. 그런 작업이 좀 흥미로웠다. 어떻게 보면 감독님들의 작업 방식이 대체로 배우의 감정을 존중하며 따라간다. 그런데 변 감독님은 얼굴의 각도까지 디테일하게 정해준다. 안 해본 방식이어서 그게 마냥 편할 거 같진 않지만 재밌을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런 방식이 막상 해보니 불편했다. 이렇게 돌려서 이야기하고 싶은데 못하고, 감독님이 원하는 앵글 때문에 내가 배우로서 감정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불편함 속에서도 편안함을 찾으려 노력했다. 그런 데서 알게 모르게 새로움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했고, 재밌어졌다.
▷ 시나리오 쓸 때부터 날 염두에 둔 작품이다. 그런 '길복순'의 한 줄 평을 해본다면?
"오늘처럼 단비와 같은 작품이다."(*참고 : 인터뷰를 진행한 4월 5일에는 비가 내렸다) 메말라 있던 땅을 적셔 주는 단비와 같은 작품이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