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0으로 돌아간 장근석, 5년 공백기가 남긴 것

쿠팡플레이 시리즈 '미끼'에서 형사 구도한 역을 맡은 배우 장근석. 쿠팡플레이 제공
5년 만에 다시 대중 앞에 선 장근석은 좀 더 단단해져 있었다. 쿠팡플레이 '미끼' 속 형사 구도한은 사기꾼 노상천(허성태) 죽음에 얽힌 살인사건과 그 진실을 추적한다. 구도한을 보며 주로 트렌디한 로맨스 드라마에서 활약했던 장근석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장근석은 끝내 구도한의 손을 잡았다.

군 복무 이후 공백기가 길어지면서 장근석은 자신의 '무기'가 될 작품을 찾아 헤맸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5년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일찍이 '아시아 프린스'로 불리며 아역부터 20대까지 꽉 차게 달린 장근석에게는 스스로를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굳이 형사 캐릭터 구도한 때문이 아니더라도 장근석은 어딘가 홀가분해 보였다.

되짚어보면 공백기에 접어들기 전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다. 유독 세금 문제가 잦았다. 2015년에는 1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국세청에 납부하기도 했고, 2020년에는 소속사 트리제이컴퍼니 대표인 어머니 전모씨가 역외탈세 혐의로 기소돼 벌금 45억 원을 선고 받았다. 장근석은 2018년 이후 '인간 장근석'으로 시간을 보내다 결국 돌아왔다. 다시 태어나도 선택할 수밖에 없는 배우의 길로.

장근석에게 '미끼'는 어쩌면 새로운 시작이다. 아니, 완전히 체질을 변화 시킬 어떤 신호탄이다. 배우들에게 '이미지 변신'에 대해 물으면 '비의도적'이라는 답변이 제일 많이 나오지만 장근석은 분명히 '의도'했다. 스스로 달라지고 싶었고, 자신에 대한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고 싶었다. 앞선 논란들에서 장근석의 책임과 별개로, 연기를 대하는 그 마음만큼은 평생에 걸쳐 진심이었다.

다음은 장근석과의 인터뷰 일문일답.

쿠팡플레이 시리즈 '미끼'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Q 구도한 형사가 수염을 기르는데 이런 캐릭터 디자인은 어디서 나왔나


A 수염은 애초에 열려 있었다. 감독님과 술자리를 가졌는데 면도를 하지 않고 갔다. 그랬더니 그냥 기르라고 하시더라. 내 수염인데 그렇게 난다. 다만 스케줄이 있고 이러면 수염을 유지할 수는 없으니까 촬영을 4일 동안 못하기도 했다. 어느 정도는 수염을 길러야 해서. 전체를 다 억지로 무리하게 만들어 놓은 장치는 아니다. '미끼' 파트 2에서는 또 중요한 장치로 나온다.

Q 5년 공백 이후 복귀했기에 '미끼'에 대한 피드백이 많이 궁금했을 것 같다

A 좋은 반응도, 나쁜 반응도 있겠지만 그 반응에 내가 취하고 싶지 않다. 한쪽에 치우쳐서 '어깨뽕'이 올라오는 것도 싫고, 수염을 괜히 길렀나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싫다. 평정심을 유지하고 싶은 생각이 강해서 깊게 받아들이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집 나갔다 돌아오면 반겨주는 것처럼 '근짱(장근석의 일본식 애칭) 어디 갔다가 이제 온 거냐'라고 반겨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좋았다.

Q 여러 선택지가 있었을텐데 '미끼'를 복귀작으로 낙점한 이유가 있을까

A 저는 항상 두리번거리면서 앞을 걸어갔다. 그런데 '미끼'를 만난 순간,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꿩이 된 기분이었다. 옆을 볼 이유가 없이 정말 직진만 하는 느낌. 누가 여기 좀 보라고 해도 안 봤다. 정신 무장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하여간 그랬다. 구도한으로 지내는 시간 동안 너무 여기에 집중해서 주변 친구들도 다 멀어졌다. 그 정도로 믿음이 있었고, 적어도 구도한으로 산 6개월을 돌이켜보면 부끄럽지 않은 시간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은 뽑아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미끼'에서 형사 구도한 역을 맡은 배우 장근석. 쿠팡플레이 제공
Q 공백기 이전에 했던 작품들과는 확실히 결이 다른데 스스로도 변화를 느꼈나. '미끼'의 어떤 지점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A 장근석과 어울리지 않는 옷인데 소화를 해낼까? 이런 불안감과 의문, 즉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는 순간에 배우로서 희열과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 적어도 현장에서 배우들과 감독님, 스태프들이 저를 많이 믿어주셨다. 일단 많이 놀라더라. 저와 함께 10년 전 작품을 했던 스태프도 있었는데 '형이 이런 걸 할 줄은 몰랐다.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해줬다. 이게 자위(自慰·스스로 위로)가 아니어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용기가 생기다 보니 희열을 느끼게 됐고, 그래서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정보다 촬영 회차가 늘었는데도 좋았다. 더 찍어도 되니까 구도한으로 살아도 재미있겠다 싶었다.

Q 이번에 연기 수업을 받던 도중 눈물을 흘렸다고 하던데 어떤 사정이었나 

A 선생님이 어떤 레슨 방향을 원하는지 물었는데 그냥 '제로 포인트부터 저를 꺼냈으면 좋겠다. 뇌가 이 안까지 들어가 있는데 뽑아 달라'고 부탁 드렸다. 그랬더니 해보자고 하시더라. 그날 30분을 펑펑 울었다. 무뚝뚝하게 된 저를 자연스럽게 스트레칭 해주고,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만들어 달라고 했었다. 오히려 선생님이 '반은 왔다'고 안도했다. 아마 여전히 굳어 있고, 그게 슬프냐고 되물었으면 머리가 아팠을 거다.(웃음) 인간이라면 자기 감정을 공유해야 하는데 첫날 그게 살아있는 걸 보고 희망을 얻었다. 신선했고, 더 빨리 이런 수업을 받을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Q 생각보다 공백기가 많이 길었다. '미끼'까지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A 불안감을 크게 안 느끼는 성격이긴 한데 한번 싹 백지가 되는 것처럼 비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더 시간이 걸렸던 이유도 있다. 중간에 제가 받았던 작품들을 보면 '장근석 저거 할 줄 알았다'는 식은 재미가 없고, 나를 더 갉아먹을 거 같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져도 되니까 제발 내 무기 하나만 나타나길 바랐다. '나의 칼'이 되어줄 대본 하나만 나타나주길 원했다. 그렇게 걷다 보니 5년이 흘러갔다. 공백이 길어지면서 처음에는 불안한 마음도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좋은 인연처럼 그런 대본이 들어올 거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불안감도 사라졌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미끼' 스틸컷. 쿠팡플레이 제공
Q 그 5년이 장근석에게 어떤 시간이었는지 궁금하다


A 5년을 쉬기 전에는 오랫동안 작품을 하지 않는 배우들이 어떻게 시간을 보낼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저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웃음) 그런데 그런 시간이 32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 전에는 무엇인가 해야 된다고 스스로 채찍질하기 바빴다.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성격이었는데 그런 저를 컨트롤하는 시간이었다. 심심하면 아역 때부터 시작해서 제 모든 작품을 봤다. 한 30년 정도 되더라. 당시 무슨 가치관을 갖고, 어떤 색깔을 갖고 연기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돌이켜 보고 싶었다. 오프로드 캠핑도 좋아하게 됐고, 밴드도 취미로 했다. 밴드는 쉬면서 저를 가다듬는 방법이었다.  

Q 한번 필모그래피를 훑었으니 기억에 남는 작품들이 있었겠다

A 드라마 '황진이'는 내 마음 속의 '원픽'(최고)이다. '베토벤 바이러스'는 정말 처절하게 했구나 싶고, '미남이시네요'는 내가 딱 예뻤구나 싶었다. 젊었을 때의 에너지가 충만하더라.(웃음)

Q 이번에 'SNL 코리아 4'(이하 'SNL')나 유튜브 예능 등에서 예상 밖의 모습들도 보여줬다

A 그 전에도 섭외는 많았는데 아직 내게 무기가 없어서 나가지 않았다. 그냥 이벤트로 한 번 나가서 웃기고 끝나는 게 배우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더라. 사실 저는 'SNL'에 최적화된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드디어 나간다'는 반응이었다. 저도 지금의 '미끼'란 무기를 얻게 됐고, 어디든 나간다고 했을 때 대충 할 거면 안하는 게 낫단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어설프게 할 거면 안하고, 하면 제대로 망가질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했다고 봐주심 좋을 거 같다. 제가 마침 시즌 마지막 게스트라 타이밍도 좋았다. '미끼'라는 뒷배가 있어서 망가져도 상관없고, 자신 있었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미끼'에서 형사 구도한 역을 맡은 배우 장근석. 쿠팡플레이 제공
Q '미끼' 이후의 장근석은 어떤 행보를 가게 될까


A 사람들이 장근석하면 떠오르는 가이드라인이 있다. 로맨틱 코미디만 하거나, 가벼운 작품만 하거나. 내가 이런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시간이 있었나 싶은데 스스로 바뀌어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군대를 포함해 5년 공백기 동안 나도 나를 지워보자가 목표였다. 예상 경로를 다시 만들었고 그게 5년 정도 걸린 것 같다. '미끼'가 후회되지 않는 선택이라면 제 선택을 계속 믿고 싶다. 또 다른 숙제가 주어진 건데 '미끼'보다 더 강한 장르물을 해야 되겠다는 반응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작품에 대한 제 마음가짐이 무게가 있는지 없는지, 또 배우로서 얼마나 세계관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 그런 가치가 중요하다. 만약 같은 로맨틱 코미디를 하더라도 지금까지와 다른 명확한 차별점이 있어야 하고, 제가 자신이 있어야 한다. 그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더 믿는 연습을 자신있게 하는 궤도에 있기 때문에 쉬운 길로는 가지 않을 거다.

Q 지금의 장근석이 있기까지 어쨌든 글로벌 팬들의 지지를 빼놓을 수 없다

A 너무 고마운 사람들이다. 예전에는 솔직하게 숨기지 않고 제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쉴 새 없이 일을 했었고, 제가 지쳐가는 걸 몰랐다. 자신이 없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었다. 그런데 제 자신이 계속 성숙하고 고민과 번뇌를 거치면서 끊임없이 완벽한 자신의 모습을 뽑아서 보여줘야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작품을 선택할 때도 좋은 작품을 '잘'하는 게 제 관점이 됐다. 아마 팬들도 그걸 원하지 않았을까. 팬들은 사실 기약 없이 기다렸고, 기다림이 너무 길어지면 떠나기도 한다. (하지만 공백기는 팬들을) 더 길게 보기 위해서 제가 저를 빨리 부시고 가야 하는 순간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이었지만 지금부터는 저도 기지개를 켜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 성큼 성큼 걸어갈 시간이 됐다.

Q 배우 장근석이 아닌 다른 삶을 생각해 본 적은 있을까

A 다시 태어나도 배우로, 저로 살고 싶다.(웃음) 제 직업이 좋고, 계속 이렇게 고민하는 습관들이 좋다. 후회한 적은 없다. 일단 훌륭한 배우가 되고 싶다. 그렇게 되면 쉬고 싶을 때는 자신 있게 쉴 기회가 올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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