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합리적 규제체계' 갖춰야 제2의 '오징어게임' 양산된다

최경진 가천대 법학과 교수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에 따라 변화하는 미디어 환경에 대응한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과거 라디오, 텔레비전방송이나 신문과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에 대한 규제가 논의의 주를 이루었다면, 인터넷이 우리 실생활 속에 등장한 이후에는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인터넷 혹은 온라인 플랫폼이 과연 새로운 미디어인가, 어떻게 규제를 해야 하는가라는 주제가 주된 관심사가 되어왔다.
 
최근에는 넷플릭스나 디즈니플러스 등과 같은 OTT 동영상 플랫폼이 미디어·콘텐츠 시장의 주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전체적인 미디어 규제의 틀도 새로운 환경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새로운 서비스인 OTT는 미디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에 비하여 사실상 아무런 규제가 없지만, 점차 그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는 지상파 방송이나 케이블TV 등의 경우에는 방송발전기금 징수나 각종 재허가·재승인 부관 조건 등으로 상대적으로 과도한 규제를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적절한 역할과 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규제틀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방송·동영상 콘텐츠 시장이 온라인으로 재편되고 영화·방송 등 콘텐츠가 OTT 동영상 플랫폼을 통해 유통되는 현실을 고려하여 OTT 동영상 플랫폼을 현재의 부가통신사업자로부터 새로운 사업자 분류로 재편하거나 OTT 동영상 플랫폼에 대하여도 방송발전기금 부과 등의 일정한 사회적 책무 강화를 법적으로 규율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고 있다.
 
OTT 동영상 플랫폼이 미디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질수록 이를 고려한 합리적 규율체계에 대한 고민은 불가피하다.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규율의 필요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미디어 환경의 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고려나 각각의 미디어 특성과 국내에 미치는 사회적·경제적 영향력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 없이 성급하게 일반적이고 포괄적인 규제 법제를 도입하거나 과도한 수준의 책임을 규정하는 것은 자칫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왜곡하거나 국내의 OTT를 포함한 전체 미디어 경쟁력을 떨어뜨려서 최근 상승 바람이 불고 있는 'K-콘텐츠'의 글로벌 확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MWC 2023에서 소개된 넷플릭스 콘텐츠. 공동취재단

특히, 미디어는 더 이상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인 연결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글로벌 스탠다드와의 조화도 매우 중요한 고려요소이다. 물론 미디어 생태계의 발전을 위하여 시급히 해결해야 할 특정 이슈, 예를 들면 방송사·OTT와 외주제작사의 불공정 문제나 소위 '검정 고무신' 사태로 촉발된 창작자 보호 이슈 등의 경우에는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적·정책적 대책을 마련하여 필요한 경우 관련 법제의 개선도 필요하다.
 
그러나 이런 특정 이슈의 해결을 이유로 전체 미디어 생태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반적·포괄적 규제 체계로의 전면적인 개편이나 도입을 성급히 결정하거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은 지양하여야 한다. 최근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안'과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안'을 통합 조정한 대안은 문화산업 분야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제작 방향의 변경, 제작 인력의 지정·교체 등 문화상품제작업자의 제작활동 방해 등 대표적 불공정행위 유형을 금지행위로 정하고 금지행위 규정을 위반한 문화상품사업자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시정조치를 명할 수 있도록 하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시정명령을 따르지 않은 자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였다.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통하여 문화다양성을 증진하고 문화상품의 창작 및 제작 기반을 보호한다는 위 법안의 기본 목적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이들 법안은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을 위하여 금지행위(문화상품 불공정행위에 대한 금지), 시정명령, 이행강제금, 과태료 등의 강력한 제재 규정을 포함하고 있어서 관련 산업의 진흥을 넘어 강력한 규제로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이들 법안의 공통된 적용대상인 문화산업과 문화상품의 정의가 차용된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규정을 보면, 문화상품은 '예술성·창의성·오락성·여가성·대중성이 체화(體化)되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형·무형의 재화(문화콘텐츠, 디지털문화콘텐츠 및 멀티미디어문화콘텐츠 포함)와 그 서비스 및 이들의 복합체'를 말하고, 문화산업은 '문화상품의 기획·개발·제작·생산·유통·소비 등과 이에 관련된 서비스를 하는 산업'을 말한다.
 
사실상 만화, 영화, 비디오물, 공연, 도서, 게임, 문화재, 캐릭터, 애니메이션, 디자인, 광고, 대중문화 등을 망라하고 있어서 방송통신 융합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확장되고 있는 모든 미디어가 적용대상이다. OTT 동영상 플랫폼도 이들 법안의 적용범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OTT 동영상 플랫폼도 문화상품 또는 문화산업으로서 공정한 유통환경을 만들기 위해 일정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 대하여는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미디어에 대하여는 문화산업진흥 기본법, 콘텐츠산업 진흥법, 방송법, 전기통신사업법,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등 다양한 법률에 의한 규제를 받고 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방송통신위원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여러 부처의 규제·감독을 받고 있어서 자칫 과도한 중복규제나 미디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규제의 문제가 지적될 수 있다.
 
때문에 미디어 생태계 전반을 규율하는 일반적 규제법을 제정하는 경우에는 기존 법률과의 관계, 부처간의 규제 권한의 중복문제, 수범자인 미디어 생태계 참여자의 특성·역할을 고려한 합리적인 책임 및 규제 수준의 설정이 매우 중요하며, 구체적·개별적 이슈에 대한 해결뿐만 아니라 변화하는 미디어 생태계 전반에 대한 거시적인 관점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더욱이 새정부가 출범할 때 공약으로 내세웠던 '미디어혁신위원회'의 출범이 최근 추진되고 있어서, 국회에서의 입법논의와 병행하여 바람직한 미디어 혁신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규제 체계 개편은 국회만의 몫은 아니고 정부나 이해관계자 모두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가야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OTT 동영상 플랫폼을 포함하는 전체 미디어 생태계에 대한 일관성 있고 합리적인 규제, 이용자 보호를 위한 효과적인 규제, 불필요한 규제 권한의 중복을 피하기 위한 규제 기관 사이의 역할과 권한의 배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우리나라 미디어 생태계의 조화로운 발전의 토대가 되는 법제도적 개선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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