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무료 시음회를 가장해 학생들에게 '마약 음료수'를 나눠주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학생과 학부모들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신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경계심을 넘어 '공포'를 느끼는 수준이 됐다. 뉴스로만 접해온 마약 사건이 생활 반경에 들어왔다는 생각에 놀랍다는 반응도 많았다.
6일 오후 3시쯤 서울 강남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등학생 심정헌(17)군은 마약 음료수 뉴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심군은 "월요일 저녁에 학원을 마치고 집에 가는데 2명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봤다"며 "나중에 알고 보니 마약 음료수를 나눠준 사람들이라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심군은 "그날은 멀리서 지나갔지만 만약 마주쳤다면 거절을 못 하고 받아 마셨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대치동 인근에서 학원에 다닌다는 중학생 이민욱(15)군도 "원래 길거리에서 음식을 나눠 주면 잘 받아먹는데 (해당 음료수는) 공부에 도움이 된다고 하고 음료수병에 '○○제약'이라고 쓰여있으니 당연히 받아먹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학원에 다니는 재수생 김민준(18)군은 "강남 한복판에서 마약을 탄 음료수를 나눠줄 줄은 몰랐다"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됐다는데 많이 놀랐다"고 했다.
인근 고등학교에 다니는 김모(16)양은 "다 공부 열심히 하려는 학생들이다 보니 혹해서 그런 음료를 마셨을 수도 있을 텐데 처벌을 강하게 하지 않으면 재발할 수 있지 않느냐"며 "어른들이 잘 대처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치동에 사는 학부모 박모(45)씨는 강남 학원가에서 '마약 유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전했다.
박씨는 "작년에 이미 학원 홍보 전단지와 함께 마약 성분이 든 사탕을 함께 나눠준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마약 조직이 사탕, 음료수에 마약을 섞어 학생들에게 광범위하게 뿌려 '마약 예비 수요층'을 만든다고 한다는 말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남 학원가에서 마약이 학생 사이에서 이미 퍼지는 중이라고 한다"며 우려했다.
자녀를 대치동 일대 학원에 보내는 학부모들도 자녀에게 신신당부하고 있다.
13세·19세 자녀가 있는 김현(51·송파구)씨는 관련 뉴스를 보고 경악을 금치못했다고 한다. 첫째가 사건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선릉역 일대 학원에 다니기 때문이다.
김씨는 "이번 사건으로 피해를 본 아이들이 얼마나 불안과 트라우마에 시달릴지 걱정된다"며 "애들에게 '밖에서 주는 음식은 절대 먹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말했다.
최근 일곱살짜리 자녀가 대치동 영어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민모(37·강남구)씨도 "아이가 혼자 다닐 일은 아직 없지만 아이 주변에 마약 음료가 돌아다닌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불안하다"며 걱정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생활 속에 들어와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우려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구 개포동에 사는 조모(48)씨는 중학생 아들이 최근까지 이번 사건이 발생한 수학학원에 다녀 뉴스를 보고 아이와 함께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조씨는 "마약이 아니라 다른 약이 들어있었을 수도 있는 일인데 일종의 '묻지마 범죄'라는 생각이 든다"며 "이런 일을 모르고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정보가 없어 안내나 교육이 더 이뤄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서울의 다른 지역 학부모들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서울 용산구에서 7살 딸을 기르는 황모(41)씨는 "남 일 같지 않다. 학생들이 인터넷과 SNS로 쉽게 마약을 구한다고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마약 사건이 아니라 아이들이 사기·협박을 당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학원가뿐 아니라 최근 강남, 홍대의 클럽에선 자기 술병을 손에서 놓지 않고 들고 다니는 것은 '상식'으로 통할 만큼 마약에 대한 경계심이 커졌다.
박영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중독재활센터장은 "실수로 1회 투여했을 경우 병원에 가서 세척하면 중독되지는 않는다"며 "외국처럼 파티나 모임에 갈 때 자신의 컵을 준비한다든지 남이 주는 음료는 마시지 않는다는 내용의 마약 예방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약물 중독 치료·재활 전문 조성남 법무부 국립법무병원장은 "아이들이 모르고 복용한 것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신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