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노동시장의 열기가 식고 있다는 지표가 나오는 등 경기침체 조짐이 보이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추가로 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강해졌다. 대내외 변수를 주시하고 있는 한국은행도 오는 11일 금융통화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기대도 커졌다. 1.5%p까지 벌어져 있는 한미 금리차가 부담이지만 강 달러 추세가 약화되고 있고, 우리 외환보유액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경우 목표치(2%대)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한은의 예상치에는 부합한 상황이다.
4일(현지시간) 미 노동부가 발표한 '2월 구인·이직보고서(JOLTS)' 에 따르면 2월 구인 건수는 993만개로 1월 대비 7%가량(약 60만개) 감소했다. 일자리 수치가 1천만개 밑으로 내려간 건 2021년 5월(920만개)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실업자 1명이 선택할 수 있는 일자리 갯수인 구인배율(1.67)은 2021년 11월 이후 최저치다.
'인플레이션 파이터' 미 연준이 물가를 잡기 위해 경기둔화까지 감수해가며 이어간 공격적 금리인상이 어느 정도 효과를 본 셈이다. 이를 두고 로이터통신은 "미국 노동 시장의 열기가 마침내 식고 있다"며 "금리 인상 사이클의 중단 여부를 고려하고 있는 연준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라고 분석했다.
과열된 노동시장이 식어간다면, 연준의 고금리 명분도 그만큼 사라지게 된다. 고용수요가 임금을 높여 제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진다면, 금리 인상 효과도 퇴색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연준은 그동안 통화정책에서 노동시장 지표를 중시해왔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지난달 금리인상 발표 직후 기자회견에서 "강력한 노동 수요가 임금을 상승시키면서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때문에 시장은 줄어든 2월 일자리를 '금리인상 중단 시그널'로 읽고 있다. 시장에게 구인건수 감소는 경기둔화의 가능성일 뿐 아니라 연준의 피벗(금리 인상 기조에서 동결 기조로의 태도 전환) 가능성이다. 당장 역대급으로 진행됐던 달러 강세 현상도 끝을 보이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1일부터 4일까지 외환 전문가 9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수년 간 강세를 보여온 달러화가 올해는 수세적인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됐다고 보도했다. 5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도 5.3원 내린 1310.5원에 거래를 마감하는 등 원화가치는 올라갔다.
덩달아 오는 11일 예정된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서도 기준금리를 동결(현재 3.5%)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앞서 발표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의 예상치에 부합한 수준(4.2%)이었다. 그동안 한은은 통화정책과 관련해 물가 안정을 중시해왔다.
한미 금리차가 20여 년 만에 최고치인 1.50%p로 벌어진 상태라 외국인의 투자자금 유출이 우려되지만,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안정적 수준이라는 점도 금리 동결에 무게를 싣는다. 3월말 기준 외환보유액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전월대비 7억8천만달러 증가한 4260억7천만달러, 세계 9위 수준이다.
키움증권 안예하 연구원은 보고서에 "미 연준의 긴축 경계감이 약화된만큼 한국은행의 추가 인상 부담도 낮다"며 경기 둔화와 금융 불안 역시 금리 동결의 배경으로 작용할 것이라 분석했다. BNP파리바 윤지호 이코노미스트도 보고서에서 기준금리 동결을 전망하고 "한은 기준금리가 이미 충분히 긴축적 영역에 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