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선거제도 개편을 위한 전원위원회를 구성했다. 2003~2004년 이라크 파병 및 연장 동의안 등을 논의한 이후 약 20년 만에 열리는 전원위다. 국회의원 전원이 오는 4월 10일부터 본회의장에 모여 선거제 개편안을 두고 난상 토론을 벌이고, 이는 생중계된다. 정당 득표율에 관계없이 기성 거대 정당들이 의석을 독과점 해왔던 '불비례성'을 해결할 개혁안이 나올지 관건이다.
'위성정당 꼼수' 없었다면 최소 23석은 소수정당에 돌아갔다
2020년 4월 15일 시행된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는 민심을 그대로 반영하겠다며 '준연동형' 선거제도가 도입됐다. 비례대표 의석 중 일부를 지역구 의석수와 연동해 정당 득표율 만큼 의석을 얻지 못한 정당에 보충해 주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실제 선거는 이 같은 취지를 무시한 채 치러졌다. 매번 정당 득표율보다 더 많은 지역구 의석을 차지해 온 거대 양당이 비례 의석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 우려되자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를 부렸기 때문이다.
결국 실제 득표와 의석수의 비례 정도를 나타내는 '불비례성'은 21대 총선 결과 더욱 높아졌다. 원래 취지대로 선거가 치러졌다면 약 23석이 다른 소수 정당에 돌아갔을텐데, 꼼수로 인해 거대 양당에게 넘어갔다.
한국정당학회가 작성한 '국회의원선거 비례대표제의 합리적 대안 연구'에 따르면 위성정당과 연동형 비례 의석수를 제한한 부칙까지 없었다고 가정하면 정의당이 10석 많은 16석을, 국민의당이 7석 많은 10석을, 열린민주당이 6석 많은 9석을 각각 차지할 수 있었다.
위성정당 꼼수의 폐해가 심하자 이후 정치권은 이를 막자는 내용의 선거제 개혁안을 주로 논의해 왔다. 다만 법으로 이를 금지할 경우 '정치활동의 자유'를 침해하는 등 위헌 요소가 있기 때문에 위성정당 창당 유인을 막자는 차원의 보완책이 거론됐다.
대표적으로 지역구 공천 정당은 비례 후보를 의무적으로 추천하도록 하는 안(무소속 민형배 의원 발의)이나 지역구 또는 비례 중 한 곳에만 후보를 추천할 경우 기호와 정당명을 표시하는 안(민주당 강민정 의원 발의) 등이 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위성정당 창당을 어렵게 할 뿐 완전히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너무 복잡해 유권자 혼란 등의 우려가 있다.
실험 결과 민주당이 영남에서, 국힘이 호남에서 의석 차지
이 같은 상황에서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는 "특정 지역에서 밀집된 지지를 바탕으로 승자독식의 정치문화와 관행을 유도하는 현행 구도에서는 정책경쟁 중심의 정당체계를 형성하기 어렵다는 데 이해를 같이한다"며 3가지 선거제 개선안을 내놓았다.
1안은 '도농복합 중대선거구제 +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인구가 적지만 면적은 넓은 농촌 지역은 지역구당 의원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를,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의 경우 몇 개 지역구를 합쳐 의원 3~5명을 뽑자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의힘이 지난 총선에서 12석 전부를 싹쓸이 한 대구시를 동·서 두 개의 거대 선거구로 만든 뒤 각각 6등까지 당선되게 한다면 1~2명쯤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수 있다. 이는 사표를 방지해 민심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을뿐더러 지역주의 완화에 기여한다.
권역별·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전국을 6개 또는 17개 권역으로 나눠 정당 선거를 한 뒤, 각 권역 내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를 나눠주는 것이다. 현행 전국 단위 비례대표제를 권역별로 쪼개는 셈이다. 이 또한 한 정당의 지역 독점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2안은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 +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다. 여러 지역구를 하나의 선거구로 합친 뒤 의원 4~7명을 뽑되, 정당의 후보자들도 함께 투표용지에 적어서 유권자가 정당에 1표, 후보자에 1표를 각각 선택하는 방식이다. A정당 득표율과 해당 선거구의 의석 정수를 곱해 A정당이 갖는 의석수를 산출한 뒤, 그 범위 내에서 후보자가 받은 득표 순위에 따라 당선인이 결정되는 식이다.
중대선거구제와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지역구가 너무 넓어 의원들의 책임성이 약해지고 선거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또 같은 국회의원이지만 1위와 7위의 득표 차가 클 수 있다는 점과 오히려 거대 양당이 싹쓸이해서 양당제가 더욱 고착화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전국·병립형 비례대표제는 전국 단위로 정당 득표를 한 뒤 지역구 의석수에 상관없이 득표율에 따라 비례 의석을 나눠주는 방식이다. 정당 득표율이 20%면 비례 의석 47석 중 20%인 9.4석(반올림해서 9석)을 가져간다.
'소선거구제 + 권역별·준연동형 비례대표제'인 3안은 현행대로 하나의 선거구에서 1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하되, 비례대표 배분을 달리한다. 6개 권역으로 나눠 권역별 인구수 또는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비례 의석수를 나눠주고, 그 안에서 권역별 정당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눠주는 식이다.
3안의 경우 민주당은 영남권에서, 국민의힘은 호남권에서 소수나마 비례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 한국정당학회 모의 실험 결과 21대 총선 때 대구·경북 0석이었던 민주당이 비례 의석 2석을 얻고,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도 호남·제주 지역에서 1석을 얻게 된다. 정의당도 현재 얻은 비례 의석 5석에서 최대 14석까지 늘어나게 된다.
여야 '유불리' 따라 셈법 제각각…"4월말 처리 목표"
'지역주의 완화', '비례성 확대'라는 선거제 개혁 취지에 비춰볼 때 지역구는 중대선거구제로 치러지는 게 가장 알맞다. 다만 전국을 중대선거구제로 할 경우 농촌은 초대형 선거구가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 인구 분포 현실을 감안하면 1안과 같이 농촌은 소선거구, 도시는 중대선거구로 하는 도농복합형이 적합하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도농복합형은 민주당에 불리하다. 21대 총선 기준, 영남권이 총 65석, 호남·제주권이 총 31석으로 의석수에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30석 이상 차이로 이기는 등 승부를 봐야 한다. 인구 밀도가 높은 수도권은 전부 중대선거구가 될텐데, 양당 간 득표율이 별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국민의힘과 의원수를 반반 나눠 가질 확률이 높다. 민주당으로선 지는 게임이 되는 셈이다.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의 또한 내년 총선에서 반드시 과반 이상 의석수를 확보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기 때문에 여러 개편안을 두고 주판알을 튕겨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비례 의석을 소수당에 내어줄 경우 또다시 '여소야대' 국면이 되면서 국정 운영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전원위를 통해 정개특위가 제안한 3개 안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토론이 진행됨에 따라 이 외의 안이 도출될 가능성도 있다. 의원 정수 확대 또는 의원 정수는 기존대로 유지한 채 지역구 의원을 줄이고 비례대표를 늘리는 등의 안도 거론될 수 있다. 국회 김진표 의장은 4월 말 본회의에서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전원위를 통해 여야 합의안을 도출해 내겠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