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LG는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울산 현대모비스를 97-88로 따돌리고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이 가능한 2위 티켓을 자력으로 따냈다.
4강 직행에 성공해 약 보름의 휴식기를 확보했지만 우려도 있다. 최종전 전반 막판 종아리 부상을 당한 아셈 마레이의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조상현 LG 감독은 31일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취재진과 만나 "창원에서 MRI 촬영을 했는데 안 좋게 나왔다. 서울에서 다시 한 번 체크하고 있다"며 "새 외국인선수를 찾아보는 최악의 상황까지 봐야 한다"고 말했다.
LG는 최종전 도중 발생한 아셈 마레이의 종아리 부상이라는 변수를 극복했다. 마레이에 가려 출전 기회가 제한됐던 단테 커닝햄이 분발해 시즌 개인 최다 30득점을 퍼부었고 이관희는 26득점 8리바운드를 기록하며 코트를 지배했다.
마레이가 4강 플레이오프 무대에 복귀한다 하더라도 100% 몸 상태가 아니라면 커닝햄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관희에게 커닝햄과 조화에 대해 물었다. 최종전에서 눈부신 호흡을 자랑했다. 이관희는 "감독님은 모르지만 제가 속공에 장점이 있다"는 말로 답변을 시작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상현 감독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이관희를 쳐다봤다. 이관희는 "감독님만 모르신다"며 재차 강조했다.
조상현 감독이 이관희의 말을 잘랐다. "이관희는 지금 수비를 잘하는 선수다. 그런데 수비를 골라서 한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안 하고 싶을 때는 안 한다. 꾸준하게 하기를 바란다"고 화제를 돌렸다.
이관희도 지지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조상현 감독을 바라보며 "저는 강강약약(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약하다)입니다"라며 웃었다.
어렵게 다시 커닝햄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관희는 "제가 속공에 강한데 잘 달려주는 선수가 한 명 더 있는 게 엄청 위력적이다. 단테 선수가 저보다 한 살 더 많다. 커닝햄을 포함한 고참 선수들이 마지막 경기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뛰었던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LG는 개막 전 약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돌풍의 주인공이 됐다. 4년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무려 9년 만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에 성공했다.
조상현 감독은 시즌 초중반 팀이 상위권을 달리고 있을 때 순위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반응으로 일관했다. 언제쯤 LG가 달라졌다는 신호를 받았을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조상현 감독은 "1라운드가 끝나고 연패에 잘 안 빠지는 모습 그리고 선수들의 수비 에너지를 보면서 플레이오프를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관희는 언제쯤 LG가 강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을까.
이관희는 "먼저 우리가 올 시즌 1점 차 승부에서 강했다. 1점 차 승부를 이기는 게 강팀으로 가는 첫 번째 길이라고 생각해서 그때 한 번 느꼈다. 두 번째는, 저와 감독님이 미팅했을 때 우리 팀의 선수층이 얇은 부분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다. 시즌 중반 LG의 선수층이 좋다는 기사가 많이 나올 때 아 이제는 강팀으로 인정받았구나, 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조상현 감독과 이관희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농구 코트에서의 모습 못지 않게 좋은 호흡을 자랑했다.
조상현 감독은 진지하게 농구 이야기를 하면서도 이관희를 향한 잔소리를 절묘하게 섞었다. 이관희는 차분한 표정으로 경청했다. 반대로 이관희에게도 사령탑을 향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이와 관련한 질문을 던지자 이관희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이관희는 "감독님께서 아직 술이 덜 깨신 것 같다"고 유쾌하게 답했고 '빵' 터진 조상현 감독은 테이블에 엎드린 채로 껄껄 웃었다.
이어 이관희가 "정규리그 때는 제가 감독님에게 혼도 많이 났다. 이제 플레이오프가 다가오는데 플레이오프는 선수 위주로 돌아가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조상현 감독은 약간 톤을 높이며 "아닌데? 아닌데?"라고 응수했다.
이관희는 말을 이어갔다.
그는 "감독님께서 정규리그 떄 저한테 미안한 감정이 있을텐데 어깨라도 한 번 주물러 주시거나 밥을 한 번 사주시면서 정규리그 때 미안했다, 플레이오프 때 좀 해달라는 부탁을 하신다면 열심히 할 의향이 있다. 쉬는 동안 감독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지켜보겠다"며 웃었다.
조상현 감독도 크게 웃었다. 어깨 마사지와 식사 대접 중 더 원하는 것을 하나만 골라달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관희는 주저없이 "어깨"라고 답했고 조상현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도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올해 봄 농구에서 조상현 감독이 이관희의 어깨를 주물러 주는 장면을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