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이 '1 미만'인 지금의 초저출산이 계속될 경우, 약 50년 뒤엔 월(月)소득의 42%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내야 한다. 현재 국민연금공단이 보험료를 매기는 기준소득월액 상한선이 553만 원인 점을 감안해도 엄청난 비중이다.
적립금이 고갈된 상황에서 당해연도 거둔 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급여를 줄 때 필요한 보험료율인 부과방식이용률을 계산한 결과다. 연금 제도가 현행 구조를 유지한다면, 연기금은 오는 2055년 소진될 예정이다.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앞서 지난 1월 27일 내놓은 시산 결과가 '인구변수 중위', '거시경제변수 중립'만을 가정한 수치였다면, 이번 추계는 기본가정 외 다양한 미래상황을 고려한 시나리오별 민감도 분석이 추가됐다.
국민연금법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5년마다 연금 재정 수지를 계산하고 향후 재정 전망과 보험료 조정, 연기금 운용 계획 등이 포함된 운영 전반 계획을 10월 말까지 국회에 제출해야 한다. 올해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인 연금개혁을 위해 꾸려진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의 요청에 따라, 1차 추계 결과가 두어 달 빨리 보고됐었다.
재정추계위는 우선 올 초 발표한 시산결과를 본 재정추계 결과로 확정했다. 국민연금 제도가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지금처럼 유지된다면, 적립기금은 2040년 최고점(1755조 원)을 찍고 이듬해 적자로 돌아서 2055년 고갈될 것으로 예측됐다. 2018년 4차 재정추계 당시보다 수지적자 시점은 1년, 기금소진은 2년 더 앞당겨졌다.
재정 추계기간은 제도의 성숙 및 가입자의 생애를 고려해 '향후 70년(2023~2093년)'으로 설정됐다.
재정추계위 전병목 위원장은 "앞으로 20여년은 지출보다 수입이 많은 구조를 유지하나, 2041년 지출이 보험료 수입과 투자 수입의 합산액을 상회하는 수지적자가 발생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5년 전 전망한 것보다 인구구조 변화나 경제상황이 더 나빠졌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있다"고 부연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급여지출은 올해 1.7%에서 2030년 2.7%→2050년 6.3%→2070년 8.8%→2080년 9.4%로 점차 올라 장기적으로 9%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재정 안정화를 위한 5가지 재정목표에 따른 필요보험료율은 17.9~23.7% 수준으로 제시됐다. 소득대체율과 가입·수급연령 등은 그대로란 가정 아래 적립금 규모에 대한 목표별로 필요한 보험료율은 4차 추계 대비 약 1.6~1.9%p 증가했다.
새롭게 추가된 민감도 분석 시나리오는 ①인구고위 ②인구저위 ③초저출산(코로나19 장기영향) ④출산율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등의 인구 변수에 ⑤낙관 ⑥비관 경제전망을 더한 6가지 조합 시나리오, ⑦기금투자수익률 ⑧임금상승률 등 개별변수 시나리오 2가지가 포함됐다.
분석 결과, '인구+경제' 변수의 변화는 비교적 단기적인 기금 소진시점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2053년 출산율을 OECD 평균치(1.61명)로 적용한 시나리오나 초저출산율(0.98명)을 적용한 시뮬레이션이나 적립금이 사라지는 연도는 똑같이 2055년으로 계산됐다.
다만, △실질경제성장률 △실질임금상승률 △실질금리 △물가상승률 등의 경제변수는 부과대상의 소득총액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낳을 것으로 기대됐다. 경제전망 낙관(중위낙관) 시, 기금 소진연도는 2056년으로 1년 늦춰졌고, 부과방식이용률도 2093년 기준 29.7%에서 27.4%로 하락할 것으로 추정됐다.
합계출산율 0.78명 등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저출산·고령화는 장기적으로 더 큰 후폭풍을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추계 상 기금 소진 이후인 2070년 기본가정(중위중립) 시나리오의 부과방식이용률은 33.4%로 나타났지만, 초저출산율을 적용한 시나리오에선 42.0%에 달했다. 합계출산율이 1명 미만인 상황이 계속될 경우, 2093년에도 보험료 부과 소득의 42.1%를 내야 한다.
OECD 평균 출산율을 전제한 시나리오에서는 2070년 31.1%, 2093년 25.3%로 추계돼 10%p 이상의 격차가 벌어졌다. 반면 인구고위의 경우 부과방식이용률이 29.7%에서 25.2%로 하락했다.
생산인구인 18~64세 대비 65세 이상 인구비율을 계산한 노인부양비도 2070년 기준 중위중립 시나리오는 104.4%, OECD 평균 출산율은 96.5%였지만, 초저출산율 상정 시엔 129.1%로 치솟았다. 그만큼 청장년층의 부양부담이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구고위 시 노인부양비는 92.8%에서 82.2%로 경감됐다.
문제는 인구 절벽 관련 '최악'을 가정한 시나리오조차도 지금보다는 출산율이 반등할 거란 전망을 깔고 있다는 점이다. 기본가정은 2040년의 합계출산율을 1.19명으로 내다봤고, 초저출산율 시나리오도 0.89명으로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복지부 이스란 연금정책국장은 "(만약) 올해 출산율이 오른다 해도 이때 태어난 아기들이 실제로 가입자가 되려면 20년 이상이 지나야 한다. 그럼 2043년인데 (추계 상 기금은) 이미 2년 전 적자 전환된 상태"라며 "그래서 소진시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단 거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차를 두고 부과방식이용률 등에 영향을 주게 돼있다"고 설명했다.
상황을 반전시킬 요인은 연기금 운용 수익률이다. 기금투자수익률만 0.5%p 범위에서 변화시켰을 때 연기금 소진은 2년 늦춰지거나 1년 앞당겨지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수익률이 1%p 상승하면 기금 고갈은 5년 연장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보험료율 2%p 인상'과 같은 효과라는 게 추계위의 설명이다.
기본적으로는 기간평균 4.5%의 수익률을 가정한 결과로, 역대 최악이었던 지난해 운용 수익률(-8.22%·손실금 79조 6천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스란 국장은 "지금까지 20여년 이상 기금을 운영해온 평균 수익률은 5.11%"라고 언급했다.
복지부는 기금 운용 수익률을 실질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방안도 도출할 방침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일 "국민연금이 국민의 소중한 노후자금을 잘 지킬 수 있도록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이 국장은 "기금 운용 수익률은 보험료 인상부담을 완화하는 중요한 변수고, 연금개혁의 주요 과제다. 이를 높이기 위한 방안도 전문가 토론회 등을 거쳐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금번 재정추계 결과를 교차 검증하기 위해 외부 통계·수리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연금수리전문위원회(가칭)'도 꾸리기로 했다. 가정변수와 추계모형 등을 점검하고 윤 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온 '과학적 근거'를 확실히 다지기 위한 절차라고 복지부는 전했다.
전 위원장은 "출산율 제고에 의한 인구구조 개선 및 경제상황 개선이 장기적 재정안정화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며 "기금의 역할 강화 역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