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배고픈 사회, 함께 우는 사람들③]
군포 기운차림식당, 한끼가 단돈 '천원'
"당당하게 식사 했으면…" 천원의 이유
전날 재료 준비해 당일 정성 담아 조리
배고픈 이들에게는 밥도, 반찬도 많이
거동 불편한 이들 위한 포장 서비스도
쌀, 식재료 기부 덕분에 식당 운영 가능
수익 쌓이면 독거노인 식사 배달, 특식 마련
"배고프면 부담없이 식당 찾아 식사하기를"

군포 기운차림식당. 이준석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새벽엔 국자 들고, 낮에는 공구함…19년째 '따뜻한 이중생활'
②[르포]"밥이 생명"…굶주린 노숙인들의 '한끼 원정'
③배고픈 이들에게 '천원의 한끼'…행복 나누는 '기운차림식당'
(계속)

"드시는 분들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천원을 받고 있습니다. 부담 느끼지 말고 누구나 오셔서 배부르게 먹고 가면 좋겠습니다."
 
30일 오전 10시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산본시장 인근 한 식당.
 
식당 문이 열리자 7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힌 천원짜리 지폐를 꺼냈다.
 
배식대 앞에 놓인 통에 천원을 넣고 기다리자 직원들이 갓 지은 밥과 김치, 무나물, 오이볶음, 어묵, 시금치, 우거지배춧국을 그릇에 가득 담아줬다.
 
식사를 마친 박모(73)씨는 "식당에 가면 공기밥이 천원인데 밥과 반찬, 국까지 천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이 어디있겠냐"며 "저렴하게 한끼를 해결할 수 있어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곳은 기운차림봉사단이 운영하는 '기운차림식당'으로, 지난 2009년부터 14년 간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한끼를 단돈 '천원'에 제공하는 곳이다.
 

"부담느끼지 말고 오세요" 정성 담긴 천원의 식사


 
밥과 반찬. 이준석 기자

기운차림식당이 천원을 받는 이유는 식당을 찾는 이들이 당당하게 식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면 먹는 이들이 미안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원짜리 식사라고 허투루 만들진 않는다.
 
식당에서 일하는 봉사자 2명은 전날 산본시장에서 신선한 재료를 구매해 아침 일찍부터 식사를 준비한다.
 
이들이 하루에 만드는 반찬은 평균 70인분. 허기짐을 해결하는 데 밥만한 게 없기에 밥은 100인분을 준비한다.
 
식당의 정식 오픈 시간은 오전 11시 30분이지만, 아침부터 거르는 이들을 위해 오전 10시까지 모든 준비를 마친다.
 
몇 시간만에 대량의 식사를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봉사자들은 이제는 전문가가 됐다.
 
봉사자 최진철(66) 실장은 "평소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지만, 이렇게 많은 양을 만드는 건 2021년 처음 봉사활동을 했을 때가 처음이었다"라며 "처음에는 힘들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생활이 돼 익숙해졌다"고 웃어 넘겼다.
 

더 배고픈 사람에게는 아낌 없이 '조금 더'


동네 어르신들이 천원짜리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준석 기자

오전 11시가 되자 빈자리가 조금씩 채워져 나갔다.
 
배식 중이던 봉사자는 허리가 굽은 70대 여성이 식당으로 들어오자 그릇 대부분을 밥으로 채웠다. 얼핏 봐도 공기밥 6~7개 분량은 돼 보였다.
 
최 실장은 "항상 오실 때마다 밥을 많이 드시는 분"이라며 "자주 오시는 분들은 식성을 알기 때문에 맞춤 배식을 한다"고 말했다.
 
왜소한 체격의 여성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밥을 비웠다. 최 실장이 "밥좀 더 드릴까요"라고 물으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에 받은 밥의 반 정도를 더 비운 뒤 여성은 만족했다는 표정을 짓고서는 조용히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식당을 나갔다.
 
또 다른 여성은 천원을 내고서는 가방에서 반찬통 3개를 꺼냈다. 최 실장은 일반적으로 배식하는 양의 배 이상의 밥과 국, 반찬을 반찬통에 담았다.
 
보통 정해진 그릇에 식사를 담아주지만, 요청할 경우 손님이 준비한 용기에 식사를 담아주기도 한다. 거동이 불편한 가족이 있거나 식당이 문을 닫은 뒤 식사를 하는 이들을 위한 배려다.
 
최 실장은 "돈을 남기려면 정량 배식을 하겠지만, 우리는 장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봉사자"라며 "어르신들이 배부르게 먹고 만족한 모습만 봐도 충분하다"고 했다.
 

따뜻한 도움의 손길이 있기에 가능한 일


기운차림식당 소식판. 이준석 기자

오후 1시 준비한 재료가 동이 나자 식당이 조용해졌다.
 
이날 식당을 찾은 이들은 모두 61명, 매상은 6만1천원. 식재료에 전기수도료까지 고려하면 턱없이 모자란 금액이었다.
 
그럼에도 식당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도움의 손길 덕분이다.
 
과거 복지 업무를 담당했던 한 군포시 공무원은 식당의 사연을 듣고 매달 쌀 20㎏을 보냈다. 지금은 부서를 옮겼지만, 쌀은 어김없이 매달 배달온다.
 
이처럼 매년 누군가가 쌀과 고기, 식재료를 보내고 있다.공무원처럼 자신의 신분을 밝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이 정체를 숨긴 익명의 기부자다.
 
또 상인들은 이따금 채소나 야채 등을 무료로 식당에 준다. 대부분 팔고 남은 물건들이지만, 식당 입장에서는 소중한 식재료가 된다.
 
윤혜주 기운차림봉사단장은 "매년 식당을 도와주는 분들이 있기에 배고픈 이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제공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천원의 행복 전파…어려운 이들에게 위로를


도움의 손길 덕분에 조금이라도 수익이 발생하면 봉사단을 이를 모아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한다.
 
지자체의 추천을 받아 독거노인 등에 매달 2~4회 밥과 반찬을 전달하는 '무료 배달 봉사'도 이중 하나다.
 
또 명절, 어버이날, 봉사단 창립 기념일 등 특별한 날에는 떡, 잡채, 고기 반찬 등 특식을 무료로 제공한다.
 
윤 단장은 "매번 좋은 반찬과 음식을 대접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라며 "하지만 따뜻한 한끼가 필요할 때 '기운차림식당' 간판이 보이면 부담없이 들어와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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