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이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해 케빈 매카시 하원의장을 만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 측이 군사적 행동을 경고하고 나서는 등 대만해협을 둘러싼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중앙아프리카 2개국 순방을 위해 대만을 출발한 차이 총통이 2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만 교민들의 환대를 받으며 도착한 차이 총통은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 주최 행사 등에 참석한다.
차이 총통은 뉴욕에서 48시간 동안 머문 뒤 순방국인 과테말라와 벨리즈를 각각 방문하고 다시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들를 예정이다. 차이 총통은 취임 첫해인 지난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매년 이렇게 경유 형식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그런데 올해 유독 그의 방미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귀국길인 5일 미국을 다시 방문해 미국 권력서열 3위인 매카시 하원의장과 회동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매카시 의장은 취임 이후 바로 대만 방문설이 나오는가 하면 '미국과 중국공산당 간 전략 경쟁에 관한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대중공세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이다.
대만 총통의 미국 방문 자체만으로도 심기가 불편한 중국 입장에서는 심지어 반중 인사인 매카시 하원의장까지 만나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주펑리엔 국무원 대만사무판공실 대변인은 29일 "(두 사람이 만난다면) 이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중국의 주권과 영토 보전을 훼손하고 대만 해협의 평화와 안정을 훼손하는 도발이 될 것"이라며 "우리는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마오닝 외교부 대변인 역시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중국이 과잉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이 '대만 독립' 분리주의 세력을 맹목적으로 묵인하고 지지하는 것"이라며 "미국과 대만의 어떠한 형태의 공식적인 교류도 중단해야 하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공허하게 만드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관영매체들도 일제히 차이 총통의 방미 사실을 보도하며 미국 측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침해하고 있다고 여론전을 펴고 있다. 특히, 관영매체들은 군사 전문가의 의견을 인용해 중국 측이 대규모 군사행동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 군사전문가 푸첸사오는 글로벌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8월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군이 대만섬을 완전히 봉쇄하는 대규모 군사훈련으로 대응했던 사실을 언급하며 "(차이 총통이) 매카시를 만나면 인민해방군이 대응 조치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만 국방부에 따르면 차이 총통의 방미를 즈음한 지난 27일부터 28일 오전까지 중국군 항공기 16대와 함정 4척이 대만 섬 주변에서 활동하는 것이 감지됐다. 당시 H-6 폭격기를 포함해 항공기 11대가 대만섬의 남서쪽 방공식별구역에 진입하기도 했다.
중국 측의 강한 반발과 압박에도 불구하고 차이 총통은 매카시 의장과의 회동을 강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순방 출발 전 담화를 통해 "외부의 압력은 대만의 의지를 방해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는 차분하고 자신감이 있으며, 굴복하지도, 도발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측도 중국 측의 군사적 도발을 경계하며 자제를 촉구하고 나섰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차이 총통의 이번 방미 일정은 관례적인 미국 경유의 일환"이라며 "중국은 이를 구실로 대만해협 주변에서 공격적인 활동을 강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중국은 지난 27일 중국을 찾은 친중 성향의 마잉주 전 대만 총통은 극진히 대접하며 대만 민심에 호소하는 투트랙 전략을 펴고 있다. 이는 내년 실시되는 대만 총통 선거에서 친중 성향의 국민당으로의 정권 교체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