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유가족도 모이면 가끔 웃어요"…연대·치유의 '분향소'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 동행기③]

'10.29 진실버스'에 함께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들이 지난 29일 전주 풍남문 분향소 앞에서 시민문화제를 마쳤다. 박희영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진실버스 오른 이태원 참사 유족들…전국 순례하며 독립조사 촉구
②"지금쯤 여행을 갔겠죠"…유가족은 왜 '진실버스'에 올랐나?
③[르포]"유가족도 모이면 가끔 웃어요"…연대·치유의 '분향소'
(계속)

충북 청주시에서 지난 28일 2일차 일정을 마친 '10.29 진실버스'가 전북 전주시 완산구 한옥마을에 도착한 때는 이미 해도 다 저문 밤 9시쯤. 이날 아침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서명운동, 기자회견, 간담회 등 빽빽한 일정을 쉴 틈 없이 소화하느라 지쳐있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을 따뜻하게 맞이한 이들은 '10.29 이태원참사 전주분향소'를 지키는 전주 지역의 또다른 유가족들이었다.

서울광장 분향소를 두고 유족과 서울시가 갈등을 빚는 동안,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에는 유일하게 이곳 전주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분향소는 유가족들 마음 치유하는 생명의 공간"

'10.29 진실버스'에 함께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들이 지난 29일 전주 풍남문 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박희영 기자

전주분향소는 지난해 12월 29일 전주 풍남문 광장에 설치돼 운영 중이다. "아이들을 기억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분향소를 마련하면 좋겠다"는 전북 유가족들의 소망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을 세월호 분향소 지킴이들이 받아들인 덕분이다. 기존 세월호참사 분향소 자리를 뒤로 물리는 대신, 그 앞에 서울광장 분향소 절반만 한 크기로 이태원참사 전주분향소를 세웠다.  

"유족들끼리 모이니까 정신적인 치료가 돼요. 유족들은 또 정서적 공감대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유족들끼리는 농담도 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웃어요. 그러니까 살아나더라고요, 사람이. 그래서 분향소는 유족들한테 앞으로 살아나갈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는 곳이고, 이런 집단 참사에서 분향소가 정말 중요하다고요"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전북지부 대표를 맡고 있는 효균 아빠가 설명한 분향소는 유가족에게 단순한 추모 공간, 그 이상을 의미했다. 그럼에도 서울시와 똑같이 전주시도 분향소를 자진철거하라는 계고장을 전달했다. 지자체 허가를 받지 않고, 점용료 등도 내지 않은 '무단 점거' 시설이라는 주장이다. 유가족은 독립조사기구가 설치될 때까지만이라도 분향소를 지키고 싶다고 호소했지만, 전주시는 아직 별다른 해법을 내놓지 않고 있다.

분향소 설치 전까지는 "영혼 없이 지냈다"는 효균 아빠는 유가족에게 이곳은 '생명의 장소'라고 말했다. 저마다 집에서만 끙끙 앓다가 분향소가 마련되자 그제서야 숨통이 틔었다는 효균 아빠는 "분향소를 만들고 나서야 유가족들이 모일 수 있었어요. 지난 구정 때 애들 설 차례상을 함께 차려주면서 정신적 치료가 됐죠. 분향소를 함부로 잘못하면(철거하면) 유족들 중에는 정말 큰일이라도 날 분이 생길 수도 있어요"라고 걱정했다.

주말이면 전국에서 한옥마을을 찾아온 관광객들이 전주분향소를 찾는다고 한다. 문씨는 분향소를 찾은 시민들 중에는 "지역에 살다 보니 서울분향소까지는 가지 못했다", "미안하다고 우시는 분도 계시다"고 전했다.

"유가족, 아이 이야기 실컷 나누는 '또 하나의 가족'"

'10.29 진실버스'에 함께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시민들이 지난 29일 전주를 찾은 뒷모습. 유가족들은 분향소에 모여 슬픔을 함께 나누며 또 하나의 '가족'이 됐다. 박희영 기자

지난 29일, 전주지역에서 '진실버스'의 3일차 일정이 이어졌다. 서울 마포구에서 온 민석 엄마는 오랜만에 만난 전주의 인영 엄마와 팔짱을 꼈다. 민석 엄마는 다른 '유가족'은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말했다.

"왜 유가족이라고 했는지를 알겠어. 우리는 그냥 말하지 않아도 '지금 어떻게 아프겠구나' 하고 서로 알아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그래서 이 가족이 혈육이 아닌데도 가족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전주분향소는 매주 일요일 오후 12시부터 6시까지 유가족 모임이 열린다. 이제 인영 엄마는 이때가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이라고 말했다.

"우리 엄마들이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에요. 우리 아기들 말을 제일 많이 할 수 있으니까. (이야기를) 실컷 해도 우리는 실컷 들어줄 수 있고, 안 질리거든요. 다른 사람들은 싫어하잖아. 궁금해 하지도 않고…"

이날 오전 전주분향소 앞에서 기자회견 중에도 연신 눈물을 훔치던 인영 엄마는 일정을 마치고 유가족들과 함께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이동하는 길에 처음으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분향소에 오면 저희는 제일 씩씩해져요"

옆에 있던 민석 엄마도 "우리가 또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기가 힘들지. 여기 와야 웃어. 웃을 수가 있어. (우리는) 웃을 일이 없잖아"라며 거들었다.

인영 엄마는 최근 전주분향소에 새로운 '가족'이 온 소식을 전했다.

"막내(지현이 엄마)가 들어왔어. 내가 전주 막내였는데. 엊그제 지현 엄마가 처음으로 일요일에 같이 분향소에 있었는데 '아, 여기는 모이니까 웃으시네요' 하면서 좋아하더라고요. 처음에 (아이의 죽음이) 믿겨지지 않아서 오기 힘든데, 한번 와보니까 좋은 거지"

이날 전북 김제시에서 차로 30분을 달려 진실버스를 찾아온 형주 아빠도 전주분향소에서 다른 유가족과 만나 참사 이후 처음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고 했다.

"누가 뉴스 화면을 보고 저를 봤다고 해도, 나 아니라고, 내 아들은 절대 그렇게 갈 일이 없다고, 우리 아들은 죽은 적이 없다고… 그 정도로 내가 (아들의 죽음을) 부인했어. 그런데 이제 여기(분향소에) 오면 왠지 이상하게 그냥 편해지는 거예요. 마음이 편하고. 다른 데서는 누가 이태원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오는 거예요. 눈물이 나와서 말을 못해요. 제가 슬퍼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형주 아빠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손이 떨렸다.

"지금도 우리 아들 이야기만 나오면 슬픔이 올라오고 있는데…그래도 여기 오면 우리 고향보다 나아요. (같은 유가족) 사람들하고 얘기하는 게 편하지. 김제에서 자동차로 한 30~40분씩 걸리는데도 여기 인근만 오면 차로 와요. 분향소에 누가 와 있나, 하고 잠깐 보고 가거든요. 왠지 모르게 여기가 좋아요"

옆에 있던 가영 엄마가 맞장구를 쳤다.

"맞아. 애들 얘기하러 오는 거지. 처음에 모여서 애들 얘기하다가 자식 자랑으로 끝나잖아. 아줌마들 모이면 그 재미지. 단톡방에 애들 웃기게 찍은 영상도 올리고 같이 깔깔 웃고. 누구 지인에게 지금 우리 애 영상 보면서 '막 보고 같이 웃자', 그러면 그 사람이 웃겠냐고요. '저 여자가 드디어…' 이렇게 되지. 근데 우리끼리는 너무 웃기다고 올리고"

'10.29 진실버스'에 함께한 이태원 참사 유가족·시민들이 지난 29일 전주 풍남문 분향소 앞에서 시민문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박희영 기자

유가족들이 오후 12시부터 2시까지 땡볕 아래서 서명운동과 피케팅을 한 이후 잠시 햇볕을 피해 들어온 카페에서 음악이 흘러나왔다.

음악 소리를 들은 형주 아빠는 "저도 음악을 좋아해서 USB에 아마 트로트 뽕짝이 천개는 넘게 들어있어요. 근데 우리 아들 죽고 난 뒤부터 안 들어요. 음악 다운도 안 받고. 화장실에 가면서도 울고. 밥을 못 먹어요. 혼자 있을 때는 슬퍼서"라고 털어놓았다.

이어 "여기(분향소에) 오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계속 이걸(분향소를) 유지했으면 쓰겠어요"라며 걱정스럽게 말했다.

눈시울이 불거진 채 형주 아빠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인영 아빠가 괜스레 장난스러운 말투로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 주제를 바꿨다. "태안반도 저 안 가봤어요. (가영 엄마 사는) 홍성 쪽 한번 들렸다가"라는 인영 아빠의 말에 민석 엄마도 "그리고 저기 민아 아빠네 농장 과수원에도 매실 털러 가야 돼요. 일산에 상추도 뜯으러 가야 돼요"라며 보태자, 형주 아빠도 비로소 미소를 되찾았다.

혼자 있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는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 '분향소'에서 서로를 찾아 농담을 나누고 아픈 마음을 터놓으며,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또 스스로를 치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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