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고요. 아파서가 아니라 굶어 죽어요. 그 몇 푼 안 되는 돈 가지고 저희 월세도 못 내고 직원들 월급도 못 줘요. 그럼 일이라도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제발 살게 좀 해주세요. 어차피 2~3년 지나면 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리는 거잖아요. (유행) 초반이라고 또 셧다운(shutdown) 2주씩 걸어버리면 저희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먹고 살라고요."
2027년 3월 27일. 서울 강동구 길동에서 식당을 운영 중인 전재준(25·남)씨가 돌연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그는 이달 초 최초로 보고된 '코로나27'에 감염됐다. 8년 전 중국 우한에서 발생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19의 아류가 아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란 점에서 방역당국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다.
'침착해야 돼…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들어가자.' 확진자 인터뷰 차 '삼송병원'으로 출동한 질병관리청의 초짜 역학조사관 이은지씨는 전씨의 오열을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모르는 질병에 걸리셔서 걱정되시고 불안하신 부분도 크실 텐데요. 절대 저희가 그런 염려를 가중시키려 나온 게 아니라 선생님과 선생님 주변 분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자 조사하러 나온 것임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역학조사 사실을 고지하기 무섭게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냐', '몇 년 전처럼 2주씩 갇혀 있어야 되냐', '가게는 폐쇄해야 되는 거냐' 등의 질문이 쏟아졌다. 코로나27은 코로나19와 달리 기침·인후통 등 호흡기증상뿐 아니라 확진자의 30%가 구토증상을 보이고 있다. 국내 확진자는 불과 23명(전 세계 2238명 확진)이지만 치명률은 17.4%(사망 4명)에 달한다.
전파력과 중증도 데이터가 충분치 않은 가운데 격리 필요성을 설득하고 협조를 끌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름과 거주지 등 기본적 인적사항은 물론 임신 중인 아내와 생후 40개월 된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만 꼬박 20분이 걸렸다. 설상가상 확진 직후 초기 조사에서 '증상이 없다'고 했던 전씨는 "그저께 그냥 몸이 안 좋고 속이 좀 메슥거려서 이튿날 보건소에 갔다"고 말을 바꿨다.
밀접접촉자를 파악하고자 최근 대면 만남을 가진 이들의 정보를 묻자 냅다 스마트폰을 거칠게 던졌다. "아까 동의서 다 적었으니까 알아서 보세요." 이씨와 함께 나온 동료 역학조사관은 추가전파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부득이한 조치임을 설명했다. "지금 한 달도 안 된 상황에서 재수 없게 저희 업장이 걸린 거잖아요. 뉴스에 안 난다는 보장이 있어요?" 조사관들은 애써 평정을 유지하며 외부로의 정보 유출은 절대 없을 것임을 강조했다.
다행히 이 상황은 질병관리청에서 가정한 '가상 시나리오'다. 지난 27일 충북 오송 질병청사에서 열린 '감염병 예방관리 아카데미'에 참여한 기자들은 실제 역학조사관의 커리큘럼을 따른 인터뷰 실습을 수행했다.
역학조사관의 면담기법을 강의한 박신영 질병청 역학조사관은 "역학조사의 인터뷰 스킬과 기자의 인터뷰 소통기술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차이가 있다면 기자님들은 저널리즘에 입각한 사실을 취재하는 것이고 저희는 아픈 환자를 대상으로 감염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과연 누가 위험한 것인지를 찾는 게 주된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학조사는 단 한 번의 인터뷰로 끝나지 않는다. 수차례 반복 시행될 수 있고, 대부분 첫 조사는 일단 환자와의 라포를 형성하는 시간"이라고 부연했다. 그는 "우리도 아플 때 누가 말을 시키면 짜증나지 않나. 환자 분들이 응대를 잘해주실 거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라며 "'네가 뭔데', '경찰이냐' 등 화를 내시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역학조사는 전염병의 발생 원인과 양상, 전파 경로 등의 역학적 특성을 밝혀내기 위한 조사를 이른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확진자가 발견된 뒤 만 3년 넘게 진행 중인 코로나19 사태에서 'K-방역'의 핵심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다.
확진자의 감염원과 추가 전파고리를 추적해(tracking) 끊어낸다는 점에서 3T(Test·Trace·Treatment) 전략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백신과 치료제가 확보되지 않았던 초기 유행 국면에선 방역 상 역할이 더 절대적이었다.
영어로는 EIS(Epidemic Investigation Officer)로 불리는 역학조사관의 별명은 '질병 탐정(Disease detective)'이다. 기원은 1951년 한국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반도의 전쟁이 생물학전 양상으로 번지지 않을까 두려워한 미국이 22명의 의사와 엔지니어 등을 교육시켜 우리나라로 파견했던 게 시초다. 지금은 독일, 일본 등부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세계적으로 보편화됐다.
국내에선 1997년부터 외국의 지원 없이 시작됐는데, 초창기는 공중보건의 중심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조사관을 나타내는 상징이 '구멍 난 신발'이라는 점은 역학조사가 우아한 사무직이 아니라 간이 화장실과 하수도 등 가장 궂은 곳들을 발로 뛰어야 하는 직책이란 사실을 역설한다.
질병청 이상원 위기대응분석관은 역학조사관 한 사람을 키우는 데 최소 2년(기본교육)이 걸린다고 밝혔다. 학술이론과 인터뷰 스킬 실습이 정규 과정에 포함되는데, 역학조사 실습교육에선 학부 연극영화과 학생이 대역환자를 맡아 실감나는 연기를 펼친다.
이 분석관은 "(실습 시 배우는) '이런 상태고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란 감정을 부여받는다. (실제 현장에 나가보면) 화내거나 우는 등 별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교육을 어렵게 마쳐도 역학조사 후 스코퍼스(Scopus) 또는 SCIE급 논문 1편과 유행보고서 2편, 감시보고서 2편, 보도·홍보자료 2편 등을 써내야 졸업 요건을 충족할 수 있다. 개인 일기가 아니라 정확한 근거(evidence)를 갖춰야 하는 만큼 녹록치 않은 작업이다. 일각에선 진입 장벽을 낮추자는 제언도 있었지만,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다루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응당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게 이 분석관의 생각이다.
앞서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2016년 콜레라,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건, 2018년 평창올림픽 노로바이러스 사태, 2019년 A형간염 대규모 발생 등의 뒤엔 늘 역학조사관들의 땀과 눈물이 있었다. 이 분석관은 평창올림픽 당시 물을 채취해 바이러스를 농축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평창이 고도가 높아 상수도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인데, 이런 쪽이 오염되다 보니 일이 어려웠던 것"이라고 돌아봤다.
박영준 전 역학조사분석담당관은 영화 <컨테이젼(Contagion)>의 대사 "Don't talk to anyone. Don't touch anyone(아무와도 말하지 말고, 접촉하지도 말아라)"를 인용하며 신속하고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했다. 박 과장은 "(접촉자를 포함해) 관공서, 공무원 등에게 감염병의 위험을 알리고 어떻게 대처해야 될지 설득하며 어르고 달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감염병 발생을 화재에 비유하면, 불을 무조건 끄는 게 능사가 아니란다. 현장 소식만 듣고 당장 진화가 어려운 상황도 많다는 것이다. 정확한 상황 파악을 토대로, 확산 차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역학조사의 최우선 과제라고도 했다.
박 과장은 "역학조사는 '감시'라기보다는 보호를 위한 모니터링"이라고 밝혔다. 또 예측 불가한 감염병의 특성상 조사는 다방면에 걸친 연속적 과정으로, 오류 사항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은 불가피하다며 기자단의 양해를 구했다.
이따금은 관련 데이터를 수집·정리하느라 1주일 내내 모니터만 쳐다볼 때도 있고 환자 보호자로부터 폭언을 듣기도 하지만, 고단함을 이기는 보람도 있다.
입사 7년차라는 류보영 역학조사관은 "메르스 때 신설된 위기대응총괄과에서 정은경 전 청장님과 함께 의심환자가 신고되면 그 시점부터 격리해제되기까지 매일 모든 환자를 리뷰했었다"며 "소개팅을 나가서도 집중하지 못했을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19가 터지고 며칠 만에 (방역당국의) 첫 지침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응체제에 바로 돌입할 수 있었던 건 (메르스 이후) 4년간 부단히 노력한 결과"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