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에는 해수욕장으로 쓰이는 경북 포항 화진리 해안. 모래사장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의 카메라에 멀리서 굉음을 내며 날아오던 공군 C-130 수송기와 MUH-1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미군의 MV-22 오스프리 틸트로터기 등이 포착됐다. 미 해군 강습상륙함(경항공모함) 마킨 아일랜드함에서 발진한 미 해병대 F-35B 스텔스 전투기도 적진을 정찰하고 공대지 무기를 이용해 화력을 투사한다. 항공기를 통해 전력을 미리 침투시켜, 적진을 교란하는 교두보를 만드는 '공중돌격' 과정이다.
이어서 본격적인 상륙부대 차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을지 실루엣만 겨우 보이는 상륙함에서 한국형 상륙돌격장갑차(KAAV) 여러 대가 조금씩 다가오더니 모래사장에서 뒤쪽 램프도어를 열고 해병대원들이 뛰어내린다. 우리 해병대원들이 모래사장을 헤쳐 나가며 해안 근처의 숲 등을 점령하자 미 해군의 공기부양정(LCAC)이 따라오고, 여기에서 내린 미 해병대의 LAV-25 수륙양용 장갑차가 기관포를 쏘며 화력을 지원해 준다.
한미 해군과 해병대는 3월 20일부터 오는 4월 3일까지, 북미 비핵화 협상을 위해 2018년을 마지막으로 중단했던 '쌍룡' 연합상륙훈련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29일에 열리는 훈련의 백미인 '결정적 행동', 즉 대규모 상륙부대의 해안 상륙 현장을 국내외 언론에 공개했다.
북미협상 위해 2018년 이후 중단…한국 정권교체 뒤 5년만에 대규모 훈련 부활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11월 타라와 환초에 상륙을 감행한 미 해병대는 첫날에만 1500명 남짓한 사상자를 내는 등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상륙작전이 방어가 유리하고 공격이 불리하다는 것은 상식이지만 이를 감안해도 큰 희생을 치른 셈이다. 80년이 흐른 2023년 현재 항공전력 등 활용 방법이 많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륙작전은 여전히 위험해, '맨땅에 헤딩'이라는 말이 딱 알맞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해병대를 정예부대로 여기는 이유다.
경북 포항과 경기도 김포에 각각 주둔하는 해병대 1·2사단은 유사시 적지 상륙을 주 임무로 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북한 동해와 서해 모처에 상륙, 뒤통수를 치고 후방을 교란하며 북진하는 육군 부대와 합류해 작전을 펼치게 된다. 물론 전시에는 한미연합군이 함께 싸우는 만큼 미군은 포항에 주한 미 해병대 기지 '캠프 무적'을 두고 평소에도 KMEP과 같은 소규모 연합훈련을 수시로 진행하고 있다. 한미 해병대는 전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는 한미연합사령부 예하의 연합해병구성군사령부(CMCC)를 구성하는데, 구성군사령관은 우리 해병대사령관 김계환 중장이 맡는다.
다만 KMEP은 보통 대대급 이하 규모로 진행되는데, 실제 상륙작전은 여단 또는 사단 규모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 이에 대비한 훈련도 필요하다. 그래서 전구급 한미연합훈련과 연계해 실시하던 훈련이 바로 쌍룡훈련이다. 상륙작전을 주 임무로 하는 해병대라는 군종 특성상 공세적 성향을 띠기 쉬운 만큼 북미 비핵화 협상을 위해 2018년 초를 마지막으로 중단됐다. 하지만 한국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컴퓨터 시뮬레이션(CPX)으로 진행되던 전구급 한미연합훈련 때 '전사의 방패(WS)' 연합기동훈련(FTX)이 같이 시행되면서 5년만에 함께 부활했다.
이번 훈련에는 우리 해군의 독도급 대형수송함인 독도함, 미 해군의 와스프급 강습상륙함 마킨 아일랜드함 등 함정 30여척, 마킨 아일랜드함에 탑재된 미 해병대 F-35B 1개 비행대대와 MV-22 오스프리 틸트로터기, 우리 육군의 AH-64E 아파치 공격헬기와 해병대 마린온 상륙기동헬기 등 70여대의 항공기가 참가했다. 물론 대규모 병력을 바다에서 데려올 상륙돌격장갑차(KAAV) 50여대도 함께 동원됐다.
훈련에 참가한 해병대 3여단장 유창훈 대령은 "해병대는 결전태세를 확립한 가운데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즉각 응징할 수 있는 연합방위태세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결정적 행동'을 마친 한미 해병대는 오는 4월 3일까지 전투력 통합과 상호운용성 향상을 위한 과제를 숙달하고 쌍룡훈련을 마무리한다.
한국에선 대규모 상륙, 중국 상대론 역할과 편제 개편…미 해병대는 바뀌는데, 우리 군은?
이번 훈련에 참여한 13해병원정대(MEU)는 1985년 창설돼 걸프전과 소말리아, 이라크전 등에 참가했던 부대로, 쌍룡훈련 때 보통 오곤 하는 일본 오키나와 주둔 3해병원정군(III Marine Expeditionary Force) 소속이 아니다. 미국 본토 캘리포니아 주 캠프 펜들턴에 있는 1해병원정군 소속이다.
이들은 지난달부터 태국에서 열린 '코브라 골드' 다국적 해군·해병대 연합훈련에도 참가한 뒤 한반도로 왔다. 그러므로 이번 훈련은 유사시 미국 본토 또는 다른 나라에 있던 병력이 한반도로 증원되는 과정을 훈련한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또한 코브라 골드 자체는 정례적으로 하는 훈련이지만, 미 해병대가 최근 미래전 대비 개편계획인 'Force Design 2030'을 적용해 나가고 있기에 그에 따라 바뀐 편제와 교리를 훈련에도 적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미 올해 1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미일 '2+2 회담' 이후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해병대 12연대를 회계연도 2025년까지 '연안연대(MLR)'로 재구성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는데, 이는 지상·해상·공중·우주·사이버/전자전 등 모든 '영역'을 활용해 해군과 함께 원정전방기지작전(EABO)을 벌이는 성격이다.
기본 개념은 빠르게 기동할 수 있는 해병대 병력을 섬 등지에 공격적으로 침투시켜 다연장로켓과 무인기 등을 활용해 거점을 확보하고, 다시 똑같은 방식으로 다른 섬으로 옮겨다니며 아군이 운신할 수 있는 폭을 넓혀 나간다는 것이다. 미 해병대가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면서 지상전에만 몰두했고, 현재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중국 연안의 군도에서 전투를 벌이려면 더 효과적인 방법이 필요하다는 반성에서 시작됐다. 지난해 환태평양훈련(RIMPAC)에서 이 작전개념을 처음 시험했는데,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고 있다.
다만 한국군의 경우 전시 작전계획상 대규모 부대를 북한에 상륙시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있는 만큼 미 해병대의 이러한 교리를 곧바로 따라가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새 작계가 만들어지면 변화가 생길 수는 있지만, 우리 군은 북한과의 전면전을 주로 준비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역할에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편 이렇게 5년만에 부활한 대규모 상륙훈련에 대한 북한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하듯, 미 13해병원정대 부지휘관 에릭 올슨 중령은 "이번 훈련은 한반도 연합방위를 위해 시행되고 있으며 지역의 안정과 함께 한미 해군·해병대가 상호작용을 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고 기자들에게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