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8'에 놀란 尹정부…기존 저출산 정책 통·폐합 예고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8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0.78. 지난해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이변 없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압도적 '꼴찌'다. 남녀 한 쌍이 아이 둘은 낳아야 현상 유지가 가능하단 점을 고려하면, 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출생아가 '1명 미만'인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흔히 한국의 미래로 거론되는 일본도 재작년 기준 1.30명으로 우리보단 훨씬 양호하다.
 
전국에서 합계출산율이 1명 이상인 지역은 세종(1.12명)이 유일하다. 통계청은 올해 출산율이 0.73명을 찍고, 내년엔 0.7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정부는 이같은 상황을 타개하고자 지난 28일 윤석열 대통령의 주재로 올해 첫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 회의를 열었다. 저고위 김영미 부위원장과 홍석철 상임위원을 포함해 위촉직 민간위원 10여 명,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 관련부처 장관(정부위원) 7명이 모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제일 중요한 것은 국가가 우리 아이들을 확실하게 책임진다는 믿음과 신뢰를 국민께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아이를 낳고 키우는 즐거움과 자아실현의 목표가 동시에 만족될 수 있도록 과감한 대책을 마련하고 필요한 재정을 집중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고위 위원장인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한 것은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10개월여 만에 직접 나선 데엔, 지난달 말 통계청의 발표가 결정적이었다. 국정 과제인 3대 개혁, 특히 연금개혁의 경우 저출산·고령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다소 늦어진 감도 있다.
 
정부의 위기의식은 15년간 280조의 예산을 쏟고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추세'에 기인한다. 국내 합계출산율은 지난 2014년 1.21명에서 2015년 1.24명으로 소폭 반등한 이후 7년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지난해 출생아는 24만 9천 명을 기록하며 30만 명대로 하락한 지 5년 만에 25만 명의 선도 깨졌다. 작년에 결혼한 커플도 19만 2천 쌍에 불과해 올해 출생 전망도 어둡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전날 향후 정책 추진방향과 과제를 발표한 김영미 부위원장은 최근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고문을 통해 4차까지 이어진 저출산고령사회기본계획을 두고 "결과적으로 초저출산의 추세 반전에는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2018년 도입된 아동수당부터 올해 도입된 부모급여 등 양육부담을 덜기 위한 지원과 인프라는 지속적으로 확충됐지만, 수요자 입장에서 보기엔 부족함이 많았다고도 진단했다.
 
특히 '저출산 대응'으로 묶이는 정책들이 각 부처별로 흩어져 있다 보니 체감도와 효과성이 모두 떨어졌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백화점식 과제 나열'은 저고위가 자체 평가한 핵심 실패원인이기도 하다. 작년 기준 214개에 달하는 저출산 정책 중 산학연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3025억 원), 신진예술가 및 문화예술 전문인력 양성(83억 원) 등 관련성이 매우 낮은 항목이 많다 보니 돈은 돈대로 쓰고, 투입 효과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취지다.
 
정부는 4차 기본계획 중 필요성과 관련성이 낮은 정책들은 들어내고 주요 정책들엔 힘을 싣는 '개편'을 단행할 방침이다. 홍석철 상임위원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부처별 정책이 망라된 저출산·고령사회의 기본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실효성과 관련도가 높은 핵심 정책 중심으로 전환해서 선택과 집중을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간 수요가 높고 출산율과 직접적으로 연동되는 아동·가족 지원은 부족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직접 지원 성격의 '가족지출'이 GDP(국내총생산) 대비 차지하는 비중은 1.56%로 OECD 평균(2.29%)에 한참 못 미치는 게 현실이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이라는 목표도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 환경 조성'으로 보다 구체화하기로 했다. 목표의 추상성과 불명확함이 대응 범위를 부풀렸다는 문제의식이다.
 
정책 대상 범위를 재정립하는 한편, '예산 집행률' 등이 성과지표가 돼온 형식적 평가 관행도 손본다. 코로나19 대응 국면에서 '과학 방역'을 강조했던 정부는 저출산 문제에 대해서도 "조금 더 과학적인 근거를 만들어내는 평가방식"이 필요하다고 봤다.
 
앞으로는 과제 추진→평가→수정·보완이 연속적으로 이뤄지는 정책 평가·환류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다. 홍 상임위원은 "좀 더 정량적이고 그 분야의 전문성과 (신뢰도가 높은) 방법론을 이용해 심층평가를 도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저고위 내 '인구정책평가센터(가칭)'를 설치하고, 평가 결과에 따른 예산편성 의견 제시, 정부기관 평가지표 반영 등 실효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중구난방 식이었던 저출산 정책의 통·폐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간 청년세대의 가치관과 인식변화가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다며, 실 수요자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창구도 만들겠다고 했다. 사회적 공론화 과제를 논의할 '국민참여위원회'를 구성하고, 위원회 내 '미래세대자문단'을 꾸려 정책 소통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대통령실 이도윤 대변인은 전날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모든 정책을 MZ세대, 청년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MZ세대는 그 세대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여론을 주도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꼽은 저출산 5대 핵심분야는 △촘촘하고 질 높은 돌봄과 교육 △일하는 부모에게 아이와의 시간을 △가족친화적 주거 서비스 △양육비용 부담 경감 △건강한 아이, 행복한 부모 등이다.

다만, 윤 대통령이 주문했던 획기적인 '특단의 대책'은 없었다.
 
대체로는 아이돌보미서비스·시간제보육 확대, 유보통합 시행, 신혼부부 주택공급 및 자금지원 확대 등 현행 지원 규모를 키우고 강화하겠다는 내용이다. 육아휴직 등 일·육아 병행 지원 제도의 실질적 사용여건 조성 또는 육아기 단축근로제 등 '부모의 직접 돌봄'이 가능한 근로환경 개선도 비슷한 맥락이다. '재탕'이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고용노동부 김성호 고용정책실장은 "현행 규정에서도 모성보호와 관련된 부분은 근로자가 청구원을 가지고 사업주는 의무를 이행해야 하는 법적 책임이 있다. 이러한 부분이 제대로 지켜지도록 이행력을 확보하는 노력이 가장 기본"이라며 "4월 중 집중점검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가족친화적 세법 개정안'이나 '난임지원 확대' 등 가장 관심을 끌 만한 부분은 아직 검토 단계 수준이다. 기획재정부는 부부 합산소득이 4천만 원 미만인 가구에 대해 자녀 1명당 80만원을 지원하는 자녀장려금의 소득기준이 적정한지를 살펴보고 지원액도 늘리는 쪽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현재 지자체로 이양된 난임지원 사업과 관련해 "많은 지자체에서 소득기준을 철폐하고 전 소득계층에 대해 시술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런 사항을 지자체와 협의해 소득기준을 완화해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난임휴가는 연 3일(유급 1일)에서 6일(유급 2일)로 확대하고, 가임력 보존 목적으로 냉동한 난자를 이후 임신·출산에 활용할 경우, 보조생식술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한다.
 
정부는 이번 발표가 저출산 대응 정책의 완성판이 아니라 첫 걸음임을 강조했다. 분야별 세부계획과 추가과제는 향후 저고위와 관계부처 합동으로 수립해 순차적으로 공개한다. 고용부는 올 2분기 중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복지부는 교육부와 추진 중인 유보통합 방안을 3분기 내 발표할 계획이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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