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으로 숨통 튼 조선업계…"'불법체류'숙련공 구제도 시급"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 전경. HD현대 제공

극단으로 치닫던 조선업계 인력난이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정부의 관련 제도 개선으로 외국인 기능 인력 입국이 속도를 내고 있어서다.

다만 이렇게 유입된 신규 외국인 인력은 대형 조선사 협력업체를 선호하는 상황이어서 중소 조선사들까지 이런 변화를 체감하기에는 제한적인 상황이다. 이에 정부가 비자 심사에 좀 더 속도를 내고, 불법 체류 숙련공 등에 대한 구제 방안 등을 더 고민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인 인력 충원 기간, 4개월+α→1개월 단축…인력난 현장 숨통

27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최근 정부가 조선업 비자 신속 심사 제도를 시행하는 제도 개선 이후 외국인 인력이 속속 충원되며 현장에 숨통이 트이고 있다. 기존에는 외국인 인력 충원을 위한 행정절차에만 4개월 이상 걸렸지만 정부가 외국인 인력 비자 심사 인력을 늘리고 심사에 필요한 경력증명서의 제출을 일정 기간 면제하는 등 제도 개선에 나서며 비자 심사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조선업계에서 약 1만4천명의 인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조선업종 외국인 용접공의 2년 경력 조건을 삭제하고 외국인 입국 절차를 단축시키고 기업별 외국인력 도입 허용 비율도 확대하기로 했다. 아울러 비전문 취업비자(E-9)를 받아 입국한 외국인 인력 중 5천명을 조선업에 우선 배치하고 '조선업 전용 외국인 인력 쿼터'를 한시적으로 만드는 조치에도 나섰다.

인력난에 시달리던 업계는 제도 개선 이후 현장에 숨통이 트였다고 평가하고 있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HD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조선 빅3사 협력사에 들어온 외국인 인력은 2000명을 육박한다. 제조업 분야는 상시근로자가 300인 미만이거나 자본금이 80억원 이하인 중소 제조업체만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기 때문에 빅3사의 직접 고용이 아닌 협력사를 통한 인력 충원만 가능하다. HD현대중공업 한영석 부회장은 "외국인 인력을 최대 2800명까지 늘릴 계획"이라며 올해 2천명 규모의 추가 외국인 인력 충원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업계도 외국인 인력 유치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빅3 조선사는 외국인 인력에 대해 △기숙사 제공 △현지식 메뉴 제공 △전문 통역사 배치 △안전 교육 영상 및 교재 자국어로 제작 등을 지원하며 외국인 인력의 정착을 돕고 있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국내 인력이든 외국 인력이든 조선업이 거칠고 위험한 업무를 하는데 금전적 보상은 적다는 부정적인 인식은 공통적이기 때문에 제도 개선이 이뤄지더라도 조선업의 인력난이 단기간에 드라마틱하게 개선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최근 외국인 인력 수급으로 최악의 상황은 넘긴 것으로 보고 있고 정부와 기업 모두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점점 나아질 것으로 기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비자 심사 속도 더 내야"…"'기능공'불법체류자 구제, 임금 규제 개선도"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전경. 삼성중공업 제공
외국인 인력으로 인력난에 숨통은 트였지만 현장에서는 추가적인 제도 보완과 제도 정착을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한 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인력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한 사람이 하루라도 더 빨리 현장에 들어와야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가 관련 제도를 개선한 뒤 이전보다 외국인 인력을 들여올 때 행정 절차에 필요한 시간이 단축됐지만 일부 국가의 경우 현지 대사관의 업무 처리 역량이나 속도가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최근 일부 조선사에서 일하는 외국인 인력의 마약 문제(본국에서 마약을 접한 뒤 한국에 들어온 후에도 마약을 투약한 사실이 경찰 등에 적발)가 생겨서 논란이 됐었는데 기업들 사이에서는 '이런 것(본국에서의 범죄 이력 등)까지 기업에서 확인을 해야 하느냐'는 푸념이 나왔었다"며 "인력을 받아서 현장에 투입하기에도 바쁜 상황인데 정부가 이런 내용들을 확인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외국인 인력 임금 관련 제도개선 요구도 나왔다. 또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인력의 임금이 부담스러운 수준"이라며 "외국인 인력의 기본급 또는 통상임금을 내국인 GNI(국민총소득)의 70~80%로 맞추라고 명문화된 규정이 있는데, GNI는 내국인 인력의 잔업 등을 포함한 임금이어서 외국인 인력에게 기본급을 GNI의 70%로 맞춰주고 잔업수당까지 주게 되면 이들이 내국인보다 월급을 더 많이 받는 '역차별 상황'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지나치게 적은 임금을 주고 외국인 인력을 데려오지 말라는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협력업체나 중소업체 입장에서는 (이런 규정에 따라 지급되는 임금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인 만큼 '외국인 인력에 대해 GNI의 70~80%의 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관련 문구를 수정해 잔업을 포함한 임금을 이런 수준으로 맞추는 형태로 제도 개선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중소 조선사 인력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불법 체류자에 대한 구제 대책에 대한 요구도 있다. 한 중소 조선업체 대표는 "소업체 인력 중 상당 수는 불법체류자들인데 10년 이상 일한 숙련공들로 현장 소장과 팀장 역할을 하고 있고, 이들이 빠진다면 그 자리는 내국인들로 채울 수 없는 상황"이라며 "장기간 성실하게 일했지만 불법체류자 신분인 이들에 대해 국가 차원의 구제 방안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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