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쯤 여행을 갔겠죠"…유가족은 왜 '진실버스'에 올랐나?

[이태원 참사 '진실버스' 동행기②]

이태원 참사 150일째를 맞은 27일, 희생자 유가족들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국민동의청원 참여를 호소하도록 전국을 순례할 '10.29 진실버스'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박희영 기자
▶ 글 싣는 순서
①'진실버스 오른 이태원 참사 유족들…전국 순례하며 독립조사 촉구
②"지금쯤 여행을 갔겠죠"…유가족은 왜 '진실버스'에 올랐나?
(계속)

"세월호 참사 때는 우리도 몰랐어요.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근데 우리 사회가 이런 참사에 대한 체계가 안 잡힌다면 누구나 그 (희생자) 대열에서 같이 참사를 겪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시는 다른 누구도 이런 아픔 겪지 않길 바라요."

이태원 참사 이후 어느덧 150일째를 맞은 지난 27일, 희생자 고(故) 정주희씨의 어머니 이효숙씨는 생업도 제쳐두고 '10.29 진실버스'의 첫날에 몸을 맡겼다.

서울광장 분향소를 떠난 '진실버스'가 이날 처음 방문했던 인천의 체감온도는 3도, 바람까지 불어 제법 쌀쌀했다. 아직은 억센 날씨를 뚫고 드문드문 피어난 봄꽃을 볼 때마다 이씨는 딸을 떠올렸다.

"원래는 지금쯤이면 여행을 갔겠죠. 우리 딸이 여행을 좋아하니까. 같이 여행 가기로 했었던 거니까."

오후 1시 20분쯤 인천터미널 사거리에서 여전히 익숙치 않을 첫 서명운동을 준비하는 이씨에게 다가가 유가족이 알고 싶은 진실규명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씨는 딸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 상황을 아직도 전혀 알 수 없는 상황이 답답하고 가슴 아프다고 호소했다.

"그날 우리가 (결론은) 압사라는 걸 알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순간적으로 숨을 못 쉬거나 충격으로 기절할 수가 있어요. 아이들이 쓰러지니까 건물 안이나 바닥에 눕혀놓은 상태에서 시간이 흘렀잖아요. 그런데 숨이 붙어있었어도 그 추운 바닥에 눕혀놓으면 저체온증으로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왜 그때 구급차로 병원에 바로 이송 안 하고 용산 체육관이나 빈 점포로 무조건 옮겼는지 진상규명해야 하고…"

서울에 사는 이씨는 딸의 시신이 경기도 평택의 한 병원까지 보내져 안치됐다는 연락을 받고 직접 시신을 찾아 다시 서울로 운구해야 했다. 이씨는 풀리지 않은 의문이 한둘이 아니라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진실을 밝혀달라는 거죠. 왜 그 추운데 옷을 다 벗겼는지. 무엇을 검사하고 조사하려고 옷을 벗겨야 했는지. 정부에서 아무런 설명을 한 게 없어요. 국정감사도 해봤지만 다들 몰랐다고 변명이나 하지. 그 당시 이야기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없잖아요."

'압사'라는 최종 결론 외에는, 실제 희생자들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숨을 거두었는지에 대한 더 이상의 설명이 없다는 것. 희생자들의 죽음을 앞두고도 국민의 생명을 보호했어야 할 국가는 얼마나 책임을 다했는지 최소한의 소명조차 없었던 것. 유가족들이 말하는 '진상규명'이 필요한 지점이다.


"세월호 참사 때는 몰랐어요. 이게 내 일이 될지"


이태원 참사 150일째를 맞은 27일, 희생자 유가족들이 독립적 진상조사기구를 설치하는 내용 등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 인천터미널 앞 사거리에서 국민동의청원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박희영 기자

이씨는 자신이 억울하다는 이유만으로 '진실버스'에 오른 것이 아니라, 여전히 '안전하지 않은' 우리 사회에 다른 시민들도 경각심을 갖기를 바라는 마음에 나섰다고 거듭 강조했다.

"우리나라도 경제적인 선진국이잖아요. 시민의 안전을 제대로 지켜줘야 하는데 그게 너무 안 돼 있어서 우리 유가족들이 이렇게 시민들한테 알리려는 거예요. 우리 모두의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세월호를 겪었잖아요. 그때는 우리도 몰랐잖아요. 그게 내 일이 될 줄은."

꽃샘추위 속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길거리를 지나는 낯선 시민들을 한 명 한 명 붙잡으며 서명을 권유하기를 마친 때는 오후 8시 30분쯤, 날이 추워 힘들지 않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故) 최유진씨의 아버지 최정주씨는 "몸 편하게 하자고 했으면 이렇게 나와서 얘기하겠나"고 답했다.

"아이들의 마지막 (순간)을 모른다. 진상이 규명돼야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거고, 가슴 아픈 국민이 더 이상 없을 거고, 나중에 아이들 볼 때 떳떳할 것 같다"고 최씨는 덧붙였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유가족들마다 마음 한편에서, 답을 알면서도 끊임없이 던질 수밖에 없는 질문이다.

"수많은 재난과 참사를 겪었던 다른 유가족들을 만나 뵙는데 그분들도 똑같은 말씀을 하세요. 대구지하철 참사가 2003년 2월 18일에 있었잖아요. 7살 난 딸과 아내를 잃으셨던 분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20년이 지나도 똑같다고."

최씨는 다른 재난 참사에서 자신처럼 가족을 잃은 이를 만나면 이제는 "죄송하다"는 말부터 나온다고 털어놓았다.

"그때는 그분들의 아픔이 얼마나 컸는지, 얼마나 힘든지 몰랐습니다. 안다고 착각하고, 안다고 흉내만 냈는데. 제가 겪어보니 죄송하다는 말밖에 안 나오더라고요. 그런 마음입니다."

유가족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지금은 나(유가족)의 일이지만 제대로 정비가 안 되면 또 누구에게나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참사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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