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일 프로농구 미디어데이가 열렸다. 10개 구단 감독들에게 소속팀을 제외하고 우승 후보를 예상해달라는 질문이 주어졌다. 대부분 '디펜딩 챔피언' 서울 SK와 컵 대회 우승팀 수원 KT를 언급했다. 전 시즌 준우승팀 안양 KGC인삼공사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유가 있었다. 승부사 김승기 감독과 KBL 최고의 슈터 전성현이 시즌을 앞두고 나란히 고양 캐롯 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간판 외국인 선수 오마리 스펠맨이 남았고 오세근, 양희종, 문성곤, 변준형 등 주축 선수들이 건재했지만 전 시즌보다는 전력이 약해질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김상식 전 남자농구 국가대표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KGC인삼공사는 모두의 예상을 무너뜨렸다.
KGC인삼공사는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정규리그를 4연승으로 시작했다. 개막 첫 날부터 순위표 가장 높은 곳에 올랐던 KGC인삼공사를 그 어느 팀도 아래로 끌어내리지 못했다.
1997년 출범한 프로농구 역대 세 번째로 '와이어-투-와이어(wire-to-wire)' 챔피언이 탄생했다.
2위 창원 LG가 26일 오후 창원에서 열린 서울 SK와 2-3위 맞대결에서 69-74로 패하면서 KGC인삼공사는 어부지리로 매직넘버 1을 지우고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LG와 SK의 경기는 이날 오후 5시에 시작했다. KGC인삼공사는 오후 7시 원주 DB와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김상식 감독은 경기 전 LG의 승패를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궁금하기는 합니다"라고 웃으며 인정하면서도 "선수들에게 우리가 이겨서 우승하자고 말했습니다"라고 밝혔다.
DB와 경기 시작을 앞두고 홈팀 KGC인삼공사의 주전 라인업이 화려하게 소개됄 때 창원 경기의 결과가 나왔다. 스마트폰을 통해 타구장 소식을 접했을 홈 팬들은 더욱 큰 함성으로 KGC인삼공사 선수들의 등장을 환영했다.
이날 은퇴식을 거행하는 양희종의 아들이 시구를 할 때 선수들은 창원 소식을 접했는지 벤치에서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감격을 미리 나눴다. 보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정규리그 마지막 홈 경기에 나설 수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시즌 초반부터 압도적인 전력을 발휘하며 도전자들과 격차를 크게 벌려놓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KGC인삼공사의 정규리그 제패 원동력은 끈끈한 팀워크와 부드러운 리더십에서 비롯됐다.
전성현의 공백은 분명 컸다. 하지만 팀은 약해지지 않았다. KGC인삼공사는 보다 자유로운 공격 농구로 리그를 지배했다. 김승기 전 감독 시절부터 자리잡은 공격적인 색깔에 모두가 팀의 주역이 될 수 있다는 분위기가 더해졌다.
날렵해진 스펠맨은 더 강력해졌다. 변준형은 리그 MVP급 가드로 성장했다. 오세근은 건강하게 골밑을 지켰다. 문성곤은 변함없이 리그 최고의 수비수로 군림했다. 박지훈은 4쿼터 해결사로 나섰고 '덩크왕' 렌즈 아반도는 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배병준, 정준원, 한승희 등 벤치 멤버들도 늘 제 몫을 했다.
2007년부터 안양 프랜차이즈를 이끌어 온 양희종의 역할도 컸다. 출전시간은 평균 10분 남짓으로 줄었지만 코트에 섰을 때는 여전히 강한 수비력과 영향력을 발휘했다. 또 올 시즌을 마지막으로 은퇴하는 안양의 레전드를 위해 선수들의 집중력도 더욱 커졌다.
KGC인삼공사는 시즌 도중 펼쳐진 동아시아슈퍼리그(EASL)에서 우승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후 주축 선수들의 부상과 슬럼프가 찾아왔다. 그럼에도 선두 자리를 끝까지 빼앗기지 않는 저력을 발휘했다.
이날 경기 전까지 36승16패를 기록한 KGC인삼공사는 LG의 패배로 2위 그룹과 격차가 1.5경기로 벌어져 정규리그 제패를 확정했다. 김승기 전 감독 체제 아래 통합 우승을 달성했던 2016-2017시즌 이후 처음이자 구단 역사상 두 번째로 정규리그 우승이다. 플레이오프 전체 톱 시드로 4강 플레이오프에 직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