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그리다 보면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보여."
졸리고 나른하던 어느 여름날의 수업시간, 하은은 어딘지 퉁명스러운 전학생 미소(김다미)를 향해 먼저 손을 내민다. 하은은 당당하고 자유롭게 사는 미소를 동경하면서도 단 하나뿐인 '소울메이트'를 위해 늘 같은 자리에서 그의 안식처가 되어준다.
어느덧 고등학생이 되고 새로운 친구 진우(변우석)와 함께 세 명의 우정을 쌓아가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오해와 함께 미소를 떠나보내게 된다. 제주를 쉽게 떠나지 못하는 하은은 미소를 향한 그리움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마주하게 된다.
독립영화계에서 떠오르는 신예에서 어느덧 가장 주목받는 배우가 된 전소니가 그려낸 하은은 그의 이름처럼 여름날 은하수 같은 인물이 됐다. 여름밤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 자리에서 늘 조용히 빛나고 있는 그런 인물, 전소니만의 하은을 표현해냈다. 개봉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한 카페에서 만난 전소니에게서도 하은이 느낄 수 있었다.
조금씩 더하고 더해서 만들어 간 하은
▷ '소울메이트' 출연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우리 영화가 각색된 포인트 중 그림을 메타포로 가져온 게 되게 좋았다. 감독님이 왜 극사실주의 그림을 선택했는지를 너무 공감되게 잘 설명해 주셨다. 대본을 본 후 그린다는 게 진짜 사랑의 표현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왜 그동안 한 번도 생각해 본적 없지 싶었다. 되게 로맨틱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 처음 하은이라는 캐릭터를 접했을 때 느꼈던 감정이나 첫인상이 기억나나?
하은이의 첫인상은 되게 단정하고, 적극적이지 않고, 뭔가 아무것도 멋대로 하지 않을 거 같다는 오해를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 모습에서는 미소랑 같이 있을 때 조화로우면서도 서로 다른 게 잘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전소니가 마주하고 점차 알아간 하은은 어떤 인물인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하은이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고 싶어 하는데, 그게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한다기보다 같이 있는 사람이 편안한 게 내가 편안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더 상대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런 게 자연스러운 사람이 있다. 하은은 그게 익숙하고 몸에 배어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다.
연기하면서는 확실히 글로 보고 머리로만 그렸던 것보다 미소랑 진우를 만나게 되고, 집과 학교에 있으면서 가까워지는 느낌이 있더라. 그래서 하은과 미소 둘이 테이블에 앉아 있는 장면을 찍을 때는 미소가 앉아 있는 걸 보고 나는 하은이처럼 앉아야지 한다거나 조금씩 더하고 더해서 만들어진 게 지금이 된 것 같다.
▷ 조금씩 더하고 같이 만들어진 게 지금의 하은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같이 만들어 간 장면 중 가장 만족하는 장면이 있다면 무엇일까?
만족하지 않는 장면이 없는 거 같다. 마지막 날 마지막 신으로 촬영한 게, 하은과 미소 둘이 침대에 누워서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그 신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약간은 상대에 대한 원망을 갖고 멀어져 있던 채로 지냈다가 다시 만났는데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싶었다. 가끔 그런 사람이 다시 만나게 됐을 때, 한마디로 무너지고 무의미해지고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말이 있다.
뭐라고 말해야 서로 남아있던 마음을 다시 이해하고 내 마음처럼 안아줄 수 있을까에 관해서 고민을 많이 했다. "왜 너를 미워하는지 모르고 미워했어"라는 대사에 관해 많이 이야기했다. 그 신에 대해서 셋 다 계속 의견을 냈다. 마지막 날인데도 제일 길게 이야기했다. 어렵고 조심스럽기도 해서, 그때 무슨 말을 하고 싶을지 이야기를 되게 많이 주고받으며 찍었다.
며칠이 지나도 여운이 남는 '소울메이트'가 되길
▷ 혹시 '내가 미소였다면 어땠을까'에 관해 상상해 본 적이 있을까?
내가 하은으로 지내면서 미소를 되게 많이 좋아했다. 하은이처럼 미소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 많았기에 상상을 많이 했던 거 같다. '내가 미소라면?' '하은이가 미소라면?' 진우에게 고백하는 장면에서 그 순간만큼은 '미소처럼 해보자' '망설이지 말자' 그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다미가 찍은 걸 봤는데, 미소 같이 보여서라고 말해줘서 되게 기분이 좋았다. 다미가 하은이를 했어도 충분히 잘했을 거 같다고 생각한다.
▷ 김다미와의 연기 호흡은 어땠나? 김다미는 어떤 장점을 가진 배우인가?
나는 다미의 직관적인 것도 좋고, 되게 빠르다는 느낌이 든다. 다미와 연기할 때 연기가 더 재밌어진다. 내가 뭘 주면 다미는 아까와 다른 걸 준다. 그럼 나도 이걸 받았으니 갚아야지 하게 된다. 더 좋은 걸 주고 싶고, 다음 연기에 조금이라도 더 좋은 자극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배우다.
실제로 대본에 관해 이야기할 때 관점이 비슷했다. 표현이 이렇게 가는 게 맞을지 물어볼 때 다미가 이야기해주면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다미는 연기할 때 자신이 뭘 하는지 모르고 움직이는 배우가 아니다. 우리가 계속 감독님께 반문하고 이의제기하면서 찍었기에, 엄청 의지가 되는 배우였다.
▷ 클로즈업도 많고 다양한 앵글이 등장한다. 완성된 영화를 보면서 놀랍거나 감탄했던 나의 모습이 있었을지 궁금하다.
촬영할 때부터 그랬던 거 같다. 모니터를 보면서 "오!" 했다. 되게 정말 못 봤던 앵글이 많아서, 사실 이걸 스크린으로 봤을 때 어떻게 보일까 생각했다. 촬영 감독님이 되게 예쁘게 찍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미리 이야기하셨다. 우리도 대본을 읽으면서 그 말에 너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촬영 감독님이 배우의 감정과 연기를 같이 촬영에 담는 분이시다. 익숙하게 보는 각도가 아닌 앵글이 많아서 너무 보기 싫은 얼굴이면 어쩌지 걱정도 했다. 감독님이 생각하신 대로 조금 더 공감하고 감정을 따라갈 수 있는 결과물이 되어서 좋다. 그리고 스크린으로 보니 편집 감독님이나 음악, 미술 감독님이 많은 정성을 들여서 나온 거라 좋다.(웃음)
▷ '소울메이트'만이 가진 영화로서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가 가장 모두의 이야기라고 한다. 난 '소울메이트'가 각자의 감정에 깊이 들어가 있어서 오히려 모든 분이 공감하실 수 있을 거 같다. 관객들이 극장에 오셔서 스크린으로 우리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봐주시면 좋겠다. 그리고 뭐가 됐건 그 기억이 오래 살아있으면 좋겠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에 간 후, 며칠 지나서도 여운이 남는 영화였으면 좋겠다.(웃음)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