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편향성 상처'만 남긴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 심판

헌재,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 선고. 연합뉴스

지난해 봄 정국을 강타했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수사권을 대폭 제한하겠다며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 개정을 주도했고, 가까스로 입법에 성공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지막으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그야말로 간발의 차로 만들어진 법입니다.
 
국민의힘은 이 과정에서 국회법 절차를 위반했고, 이로 인해 소속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며 전주혜·유상범 의원 명의로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습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검찰의 수사권은 헌법에 명시돼 있다며 검수완박법은 위헌이라는 취지에서 별개의 심판을 냈습니다. 정치의 사법화라는 비판 속에서 공은 헌재로 넘어갔습니다.
 
헌재가 지난 23일 내놓은 결론은 한마디로 이렇습니다. 법안 처리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고 국민의힘 의원의 심의·표결권이 침해된 것은 맞지만 무효화 할 정도로 중대한 하자는 아니었다는 것. 주목할 대목은 헌재가 '삼권분립'의 원칙을 재확인했다는 것입니다. 국회의 정치적 형성권, 즉 '입법 영역'에 대한 판단은 극도로 예외적인 경우에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민의힘 측은 헌재 재판관들의 편향성을 언급하면서 '정치재판소'라고 비난했습니다. 이번주 법정B컷에서는 헌재가 본 '검수완박' 입법 과정의 하자는 무엇이고, 헌재는 어쩌다 '정치재판소'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결론을 내렸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위장탈당'을 바라보는 헌재의 상반된 시선

국회 본회의장으로 이동하는 민형배 의원. 연합뉴스

헌재가 최종적으로 검수완박법이 유효하다고 본 첫 번째 이유는 법사위 단계에서는 심의·표결권이 일부 침해됐지만 본회의 단계에서는 나름의 절차를 지켜 입법 과정이 진행됐기 때문입니다.
 
검수완박 당시 가장 쇼킹(?)했던 부분은 안건조정위원회 위원의 사·보임 절차와 '살라미 국회(만 하루짜리 회기)'였는데요. 헌재는 일단 다수당이 잘못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위장탈당으로 이어진 사·보임 절차는 법사위 회의 단계에서, '살라미 국회'는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발휘한 꼼수였습니다.
 
안건조정위는 입장이 갈리는 여야 간의 이견을 조정하기 위해 최대 90일 동안 법안을 심리하는 기구로, 6명의 위원(제1교섭단체 3명·이외의 교섭단체 3명)으로 구성됩니다. 4명 이상이 찬성하면 숙려 기간 없이 곧바로 법사위 전체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안건조정위는 국회 의석수를 감안해 민주당 3명에, 국민의힘과 나머지 소수정당 소속 3명으로 꾸려졌습니다. 당초 민주당은 자당 출신의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야당 몫의 조정위원이 되면 별 탈 없이 상임위 문턱을 넘을 것으로 계산했습니다. 부동산 문제로 탈당했던 양 의원에게 사실상 복당을 약속했거든요.
 
양 의원이 느닷없이 양심 선언(?)을 하면서 민주당의 셈법은 빗나갔습니다. 민주당은 자당 소속 소병철 의원을 법사위에서 사임시키고, 그 자리에 민형배 의원을 투입합니다. 그 뒤 민 의원은 민주당을 탈당해 무소속 자격으로 야당 몫의 조정위원이 됩니다.

나아가 민주당은 최연장자가 안건조정위 위원장을 맡는 국회 관례를 이용해 김진표 의원(현 국회의장)까지 법사위에 보임했습니다. 이같은 민주당의 꼼수 덕분에 90일짜리 안건조정위는 불과 17분 만에 끝났고, 법안은 무사히 본회의에 상정됐습니다.
 
이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친 법사위 회의가 국회법에 위배되는지 여부에 대한 다수 의견과 소수 의견을 비교해 보겠습니다.
 
2023.3.23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 전부 기각의견
피청구인 법사위원장이 조정위원을 선임할 당시 민형배 위원은 이미 민주당을 탈당하여 무소속 법사위 위원이었으므로, 제1교섭단체(다수당)에 속하지 않은 조정위원으로 선임되는 데 국회법상 아무런 제한이 없었다. 민 위원의 탈당은 의원 개인의 정치적 판단에 따른 자율적인 결정으로… (중략) 국회법상 조정위원회 구성 직전 탈당한 의원의 조정위원 선임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규정이 없는 이상 국회법 제57조의2 제4항을 명백히 위반하였다고 볼 수 없다.

기각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국회법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을 때 민 의원의 사·보임은 정치적 선택의 결과일 뿐 법 위반이 아니라는 해석을 냈습니다. 다른 재판관 4명은 민 의원의 탈당과 조정위원 선임을 둘러싼 정치적 배경까지 고려한 인용 의견을 냈는데, 직접 읽어보시죠.

2023.3.23 이선애·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 전부 인용의견
민형배 위원은 법사위에서 조정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비교섭단체(소수당)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되어 민주당 소속 조정위원들과 함께 조정위원회의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킬 의도로 민주당과 협의하여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중략) 법사위원장은 이러한 사정을 알고도 검사의 수사권을 폐지 또는 축소하는 내용의 입법이 민주당의 당론에 따라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민형배 위원을 조정위원으로 선임한 것임을 합리적으로 추단할 수 있다… (중략) 법사위원장은 위와 같이 회의의 주재자로서의 중립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그 위원회 활동의 일부인 조정위원회에 관하여 미리 가결의 조건을 만들어 두었고…
 
이번에는 진보와 보수, 성향에 따라 팽팽하게 맞선 4대 4 구도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한 이미선 재판관의 시각을 살펴보겠습니다.
 
2023.3.23 이미선 재판관 일부 인용의견
민형배 위원은 개정법률안 원안들의 4월 임시국회 처리를 위하여 양향자 위원 대신 비교섭단체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될 목적으로 민주당을 탈당하였고, 법사위원장은 민 위원의 탈당 경위를 충분히 알 수 있었음에도 그를 비교섭단체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하였음을 인정할 수 있다.

'살라미 국회'를 열어 국민의힘 측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24시간으로 사실상 제한한 것에 대해서도, 양측의 시각은 엇갈렸습니다. 국회법이 회기의 하한을 정해두지 않았기 때문에 '살라미 국회'에 법 위반이라는 딱지를 붙일 수 없다는 의견과 실질적 토론의 기회를 빼앗았다는 점에서 잘못됐다는 의견이 맞섰습니다.
 

헌재는 국회 싸움에 낄 수 없어요

그런데도 어떻게 검수완박법은 살아남았을까요? ①상임위 회의는 본회의 절차를 위한 보조적 단계이고 ②삼권분립 원칙에 따라 국회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헌재는 제한적으로만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 캐스팅 보트였던 이미선 재판관의 답변입니다.
 
2023.3.23 재판관 이미선의 일부 인용의견
헌법재판소로서는 피청구인(법사위원장)의 정치적 형성권을 존중하여야 하므로 원칙적으로 처분의 권한 침해만을 확인하고 권한 침해로 야기된 위헌‧위법 상태의 시정은 피청구인에게 맡겨두는 것이 바람직하며, 재량적 판단에 의한 무효확인 또는 취소를 통하여 피청구인의 처분의 효력을 직접 결정하는 것은 권한질서의 회복을 위하여 헌법적으로 요청되는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되어야 한다.
 
특히 국회의원이 국회에서의 입법관련 처분의 하자로 인하여 심의‧표결권을 침해받았음을 다투는 권한쟁의심판의 경우, 사법기관으로서 사법본질상의 한계에 구속되는 헌법재판소는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헌법질서 아래에서 국민의 대표기관이자 정치적 헌법기관인 국회가 가지는 자율권과 정치적 형성권을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
 
…(중략) 또한 국회법이 위원회 중심주의를 택하고 있으나, 위원회의 역할은 국회의 예비적 심사기관으로서 본회의에 판단자료를 제공하는 데 있으므로, 헌법재판소가 위원회 단계에서 이루어진 의결의 하자만을 기준으로 국회의 정치적 형성권을 존중할 필요가 없다거나 다른 정치적 형성방법을 기대할 수 없다고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아니하다.
 
이에 대한 정치권의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당장 청구인이었던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헌재 결정이 나온 뒤 기자들에게 "의회독재를 멈추게 하는 자정적 기능을 헌재가 해야 하는데 오히려 방기하고 비겁한 결정을 했다"고 맹비난했습니다. 같은당 김기현 대표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음주하고 운전했는데 음주운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다. 정치재판소"라고까지 했구요.

반면 민주당은 "입법 취지를 존중한 결정"이라며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했던 한동훈 법무부장관에 대해 역공에 나서는 모습이었습니다. 일각에서는 한 장관의 사퇴를 넘어 탄핵까지 거론하기도 했습니다.
 

재판관 출신 논란 속…"국회 권한 존중해야" vs "독수독과"

연합뉴스

헌재 재판관이나 대법관들의 정치 성향 문제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닙니다. 판사 출신인 전 의원은 "국회의장 손을 들어준 5명의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민변 출신의 편파적 인사"라고 지적했습니다.  

앞서 역시 판사 출신인 주호영 의원은 2020년 원내대표 시절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유남석 헌재소장! 이석태, 김기영, 이미선, 문형배 헌법재판관! 이분들도 같은 출신들 아니냐"며 "이미 중립성을 의심받고 있는 판관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유남석 소장과 문형배 재판관은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김기영 재판관과 이미선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습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출신이고요.
 
반면 권한침해 확인청구와 무효 확인청구 모두에 인용 의견을 낸 이종석, 이영진, 이선애 재판관은 보수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참, 이들과 뜻을 같이한 이은애 재판관은 오히려 김명수 대법원장 지명으로 임명됐고요. 즉,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한 재판관들이 같은 생각을 한 셈입니다.

오히려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톡톡히 한 이미선 재판관이 주식 거래 논란에도 민주당의 비호를 받아 재판관이 됐죠. 국민의힘 주장대로 재판관 이전 과거 이력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지만, 100% 그렇다고 할 수 있을까요.
 
법조계의 평가는 좀더 복잡합니다.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된 결과"라는 의견도 나왔지만, 법 위반의 중대성을 따지는 것은 "법적 판단의 기본"이라고 하는 교수들도 있었습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절차적 하자와 그로 인해 만들어진 법의 효력 문제는 별개로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국회 의사절차는 가장 정치적인 맥락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기본적으로 국회의 권한"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헌재가 이같은 권한을 존중하는 것이 좋다"면서 "상임위에서 하자가 있더라도 본회의에서 정상적으로 처리됐다면 (그 하자는) 정치적으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고 헌재가 제재할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반면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절차에 위법이 있었다면 그 결과도 무효라고 보는 것이 원칙"이라며 독수독과 이론(위법하게 얻은 증거나 진술은 인정할 수 없음)을 언급했습니다.
 
삼권분립 원칙을 내세운 이미선 재판관의 논리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상임위를 패싱해도 괜찮은 것이냐"고 반문했죠.
 
검수완박법은 국회 본회의는 물론 정부 국무회의까지 통과한 만큼 헌재가 법률을 무효화한다면 헌재가 입법부와 행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비판도 가능했습니다. 헌재 재판관은 행정부와 입법부의 지명, 입법부의 청문 절차를 거쳐 구성이 되는 만큼, 무시하기 어려운 비판입니다. 권력분립의 요체는 '견제'뿐만이 아니라 '균형'을 맞추는 것에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번 헌재의 결정이 민주당에 대한 면죄부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민 의원의 탈당과 그를 조정위원으로 선임한 위원장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다수의 재판관은 위법하다고 봤습니다. 다만 이를 헌재에서 단죄할 수는 없다는 결론이 나왔을 뿐입니다.
 
한 법대 교수는 "헌재 결정이 나왔으니 최소한 민주당에서는 대국민사과를 하거나 관련자를 문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법적 재갈에서 풀려난 민주당은 민 의원의 복당을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검수완박 본회의 직전 소속 의원들의 단체 텔레그램방에서 한 의원이 강경파 의원들에게 던진 질문을 다시 꺼내 봅니다. "누추해진 민주주의와 빈곤한 신뢰 위에 그 어떤 개혁이 바로 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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