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 된 이른바 창원간첩단 '자주통일 민중전위'(이하 자통) 조직원들이 미리 정해둔 수신호를 이용해가며 북한 공작원들과 '첩보영화'처럼 접선해온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나타났다.
23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유상범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통 총책 황모(60)씨 등 조직원 4명의 공소장에는 이들이 2016년부터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한 과정이 상세히 담겼다.
공소장에 따르면 황씨는 2016년 3월 캄보디아로 출국해서 한 리조트에 머무르며 북한 문화교류국 소속 공작원들과 만났다.
황씨가 투숙한 방은 두 개의 객실 사이 문이 연결돼 있어 출입이 가능한 '커넥팅 룸' 형식으로, 옆방에는 북한 공작원 2명이 이미 투숙 중이었다.
숙소 앞에서 공작원들과 수신호를 통해 서로의 정체를 확인한 뒤 각자 객실로 들어간 이들은 외부 출입도 하지 않은 채 리조트 안에만 머무르며 활동 내용을 논의했다.
황씨는 자통 경남 서부지역 책임자 정모(44)씨에게 "북한 공작원과 뜨겁게 동지적인 사랑을 나누는 것이 제일 큰 의미가 있다"며 2019년 6월 캄보디아에서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하도록 했다.
황씨는 출국 전 정씨에게 "오후 5시에 배낭을 메고 관광 지도를 손에 들고 있으면 그 주변에서 북한 공작원이 손수건으로 땀을 닦는 행동을 할 것"이라며 서로 알아보는 방법을 설명해줬다.
또 약속된 번호로 전화하라며 "이쪽은 '권'이고, 저쪽은 '박'이다. 오후 5시에 접선이 불발되면 오후 6시에 한 번 더 접선하고, 또 불발되면 바로 전화하라"고 구체적인 접선 방법을 알려줬다.
황씨는 아침에 나갈 때 전날과 전혀 다른 옷으로 갈아입을 것, 선글라스·모자를 착용해 알아보기 힘들게 할 것, 호텔 인근에 미행이 있는지 항상 확인할 것 등 보안도 강조했다.
정씨는 실제로 황씨가 알려준 방법으로 앙코르와트 부근에서 공작원들과 접선에 성공했고, 카페와 호텔에서 활동 동향 등을 보고했다.
이때 공작원들은 북한 상부에 보고·관리를 위해 정씨 사진을 찍었고, 정씨는 공작원들에게 고향, 출신 학교, 결혼 과정, 자녀, 키, 몸무게, 집 주소 등을 적어서 내거나 알려줬다. '김정은 충성결의문'도 작성해 건네고, 공작금으로 7천달러를 받았다.
정씨는 '총회장님(김정은)을 남쪽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북한 공작원 질문에 "김정은이 문재인보다 낫다", "리설주 여사나 현송월 단장이 이미지 관리를 좋게 했다", "총회장님의 육성이 호감도를 높이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작원들은 이 답변서를 보고서에 담으라고 지시했다.
조직원 성모(58)씨는 2017년 6월 캄보디아에 공작원과 만났다.
성씨는 미리 약속된 장소에서 대기 중이던 공작원과 시선 교환을 통해 서로를 알아본 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뒤따라 걷는 방식으로 식당으로 이동했다. 공작원이 식당에서 1분만에 나가자 성씨도 뒤따라 나왔고,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리조트로 이동했다.
이들이 머문 객실 역시 커넥팅룸이었고, 이곳에서 2박 3일간 남북한 정세 등에 대해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