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형사소송법 개정을 둘러싼 권한쟁의 심판사건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이 일부 침해되긴 했지만 입법 자체가 무효는 아니라는 결정이 나왔다.
법무부장관과 현직 검사들이 국회를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사건도 검사의 헌법상 권리인 영장신청권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의 의견이 4대 4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이미선 재판관이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면서 인용-기각, 각하-인용이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의회독재를 멈추게 하는 자정적 기능을 방기한 비겁한 결정"이라고 반발했다.
헌재는 23일 국민의힘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과 국회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사건에서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법사위원장이 국민의힘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결정했다.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이미선 재판관이 인용 의견을 내면서 권한침해 확인청구가 인용됐다.
권한쟁의 심판은 헌법상의 국가기관 사이에 권한의 존재 여부나 범위를 놓고 다툼이 생기면 헌재가 유권 판단을 내리는 절차다. 재판관 9명 전원이 심리하고 과반(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인용·기각·각하 결정을 할 수 있다.
헌재는 다만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한 무효확인 청구,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권한침해 확인청구 및 무효확인 청구는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기각했다.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등 4인의 재판관은 역시 인용 의견을 냈지만 이미선 재판관이 기각 의견을 내면서 기각이 과반을 넘었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은 모든 청구에서 기각 의견을 유지했다.
헌재는 "법사위 위원장은 안건조정위원회의 의결정족수를 충족시킬 의도로 민주당을 탈당한 민형배 의원을 비교섭단체 몫의 조정위원으로 선임해 실질적인 조정심사 없이 조정안이 가결되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침해된 법률 심의·표결권을 회복시키려는 노력 대신 오히려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그대로 표결에 부쳐 가결 선포한 행위는 국회법 규정과 헌법상 다수결원칙 등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이날 한동훈 법무부장관과 검사 6명이 국회를 상대로 제기한 권한쟁의 심판사건도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각하했다.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재판관이 각하 의견을 낸 가운데 이미선 재판관이 또 캐스팅보트가 됐다.
헌재는 우선 "검수완박 입법은 검사의 권한을 일부 제한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으므로, 수사권·소추권을 직접적으로 행사하지 않는 법무부장관은 청구인 적격이 없다"면서 한 장관의 청구를 각하했다.
이어 검사들의 청구에 대해서도 "국회가 입법사항인 수사권 및 소추권의 일부를 행정부에 속하는 국가기관 사이에서 조정·배분하도록 법률을 개정한 것으로, 검사들의 헌법상 권한인 영장 신청권 침해 가능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 각하했다.
반면 이선애, 이은애, 이종석, 이영진 등 4인의 재판관은 반대 의견을 냈다. 이들 재판관은 "검수완박 입법은 절차 및 내용 모두에 있어 청구인들 중 검사들의 헌법상 소추권 및 수사권과 법무부장관의 검사에 관한 관장 사무에 대한 권한을 각각 침해했다"고 인정했다.
특히 이들 재판관은 "검수완박 입법의 법적 효력을 제거해 청구인들의 침해된 권한을 즉시 회복할 필요가 인정된다"는 이유를 들어 법률 개정 자체를 취소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결정에 대해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한 국민의힘은 거세게 반발했다. 청구인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한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의회독재를 멈추게 하는 자정적 기능을 헌재가 해야 하는데 스스로 그런 기능을 방기하고 비겁한 결정을 했다"고 비난했다.
전 의원은 "편향적 시각을 가진 5명의 재판관이 법치주의나 민주주의보다 자신들의 시각에 따라 결정했다"며 "앞으로 이뤄질 헌재 재판관 구성은 매우 중립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무부의 청구사건을 대리한 강일원 전 재판관은 "네 분의 재판관이 저희 의견을 전부 받아들여주셔서 경의를 표한다"며 "나머지 다섯분이 형식적 사유로 각하한 것은 아쉽지만 헌재 결정은 최종적이므로 존중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