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금리 역전폭 1.5%포인트…22년여만에 최대치

美 연준, 베이비스텝 밟으며 기준금리 상단 5%까지 높여
인플레이션 대응과 금융불안 해소 '두 마리 토끼'
지난달 한국은행 1년 5개월만에 금리 동결
4월 금통위 3주 앞으로 '성큼'
투자금 유출→환율 상승→수입물가 상승→물가 불안 '악순환'

기자회견서 발언하는 제롬 파월 美 연준 의장. 연합뉴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22일(현지시간)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했다.

이달 초 예상됐던 0.5%포인트보다는 인상 폭이 다소 줄었지만, 인플레이션 대응은 이어간다는 정책 판단으로 풀이된다.

한미 금리차는 22년여 만에 최대폭으로 확대됐다.

실리콘밸리·시그니처은행 파산 금융불안 감안


미 연준은 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 금리를 현재보다 0.25%포인트 높은 연 4.75~5.00%로 인상했다.

이에 따라 한미 금리차는 1.5%포인트로 확대됐는데, 이는 지난 2000년 10월 이후 22년여 만에 최대 역전 폭이다.

미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대응하기 위해 지난해 3월 0.25% 수준이었던 기준금리를 단 1년간 5.00%로 4.75%포인트나 급격히 올렸다.

당초 3월 FOMC에서도 '빅스텝(한꺼번에 금리를 0.5%포인트 인상)'을 밟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실리콘밸리은행(SVB) 로고. 연합뉴스

하지만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과 시그니처은행 파산 사태로 금융 불안이 계속되자 '베이비스텝(한꺼번에 금리를 0.25% 포인트 인상)'으로 한 박자 숨고르기에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아직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에도 대응해야 하고, 금융 불안도 해소해야 하는 연준 입장에서는 두 가지 목표를 절묘하게 절충하는 '고육지책'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된다.  

안갯 속에 자동차 멈추겠다는 한은 총재


문제는 한미 금리차 확대다. 이날 미 연준의 기준금리 추가 인상으로 한미 금리차는 1.50%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년 5개월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한은 금통위는 물가 불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지난 2021년 8월 연 0.5% 수준이었던 기준금리를 0.75%로 올렸다.

이후 1년 5개월간 기준금리를 3.5%까지 3.0%포인트나 인상했는데, 공격적인 기조를 일단 멈춘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안경을 조정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지난달 금통위 직후 이창용 한은 총재는 '안개'를 예로 들며 국내 경기침체 우려 수준, 대외 여건 등을 지켜본 뒤 향후 통화정책 방향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이 총재는 "자동차 운전하는데 안개가 가득하다. 어떻게 하겠나. 일단 차를 세우고 안개가 사라질 때까지 본 다음에 또 갈지 말지를 봐야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다.

미국의 금리 인상 수준, 글로벌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국제 원자재 가격 추이, 코로나19 이후 중국의 경제 리오프닝 강도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향후 국내 통화정책에 반영하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이날 새벽 미 연준이 FOMC를 통해 기준금리 상단을 5%까지 높이면서 한미 금리차는 1.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지난 2000년 이후 22년여 만에 최대 역전 폭인데, 한미 금리차가 확대되면 달러 강세로 외국인의 국내 투자금 유출이 가속화된다.

이럴 경우 원달러 환율이 상승하게 되고, 이에 따른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가 다시 오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교역조건 악화, 최악의 무역수지 '산넘어 산'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류영주 기자

'고물가의 고착화'를 가장 경계하는 한은 입장에서는 난처한 처지에 몰리게 됐다.

특히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른 수출 부진으로 상품수지가 4개월 연속 적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점도 부담이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올해 1월 국제수지(잠정)에 따르면, 우리나라 1월 경상수지는 45억2천만 달러 적자로 집계됐다.

이는 관련통계를 작성한 1980년 이후 사상 최대치인 것은 물론 1년 전과 비교해도 67억6천만 달러나 줄은 액수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수출이 급감하면서 상품수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데다, 코로나19 방역 완화로 해외여행이 급격히 늘면서 서비스수지도 적자폭 역시 4년 만에 가장 크게 확대된 영향을 받았다.

무역적자는 이미 지난해 적자폭의 절반을 넘어섰다.

지난 21일 관세청이 발표한 수출입현황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20일까지 누적 무역적자는 241억300만 달러로 지난해 무역적자(478억 달러)의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무역수지는 지난해 3월부터 12개월 연속 적자 행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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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금리차 확대는 이를 더욱 부추킬 수 있다.

한국은행 입장에서는 그동안의 공격적인 금리 인상에 따른 국내 경기침체 우려로 기준금리를 마냥 올릴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미 금리차 확대를 손 놓고 마냥 지켜볼 수 만도 없어 다음달 13일 열리는 4월 금통위를 앞두고 고민이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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