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출신 변호사 붙여줄게" 성범죄 감형 쇼핑의 민낯

[성범죄, 감형을 삽니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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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檢출신 변호사 붙여줄게" 성범죄 감형 쇼핑의 민낯
(계속)

성범죄자의 형을 결정하는 것, '양형'. 엄연히 재판부의 몫이다. 하지만 시장에 성역은 없다. 사법제도 안까지 깊숙이 침투했다. '성범죄 감형 시장'은 걷잡을 수 없게 커진 상황이다.
 
법률시장에서는 성범죄자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어둠의 거래들이 활개치고 있었다. 로펌에게 '감형'은 하나의 상품이 됐고, 가해자는 소비자가 되어 각종 '성범죄 감형 패키지'를 쇼핑하고 있었다. 직접 성범죄 전담 로펌들에 찾아가 상담을 받아 보니 실제로 성범죄는 범죄가 아닌, 거래의 '기회'로 여겨질 뿐이었다.
 

'강제추행'은 '식은 죽 먹기'라는 로펌

스마트이미지 제공

CBS취재진은 성범죄 전문 로펌을 찾았다. 사촌 동생이 강제 추행으로 고소를 당해 D경찰서에서 조사를 앞두고 있다고 털어놨다. 변호사를 비롯해 경찰 출신의 위원 등 총 4명의 변호인단이 총출동해 상담을 받으러 온 기자를 맞이하면서 "이 사건은 우리한테는 난이도가 낮다"고 말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경찰 조사를 걱정하니, "우리 로펌엔 경찰관 출신만 100명 가까이 된다"라며 "D경찰서 출신 위원이 있어서 우리가 수사 기관과 소통을 할 거다. 사건 내용을 딱 심플하게 만들어주는 건 우리 수사관님들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이라며 으쓱댔다.
 
"해당 사건은 A지검으로 넘어갈 겁니다. 지금 거기 성범죄 담당이 B검사인데, 우리 로펌에 B검사 연수원 동기인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 C씨가 있습니다. C씨에게 배당해줄 거예요. 저희랑 계약하시면 B검사랑 C씨랑 만나서 얘기할 거고요. 동기끼리는 편하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전관예우라는 게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니 도움 드릴 수 있고요. 3100만 원에 그 정도면 괜찮은 거죠. C씨가 맡으면 기소 유예 받는 건 식은 죽 먹기에요."
 
기소유예. 즉, 범죄 혐의에 대한 구성이나 재판에 넘길 근거들이 있지만 검사가 피해 정도와 가해자의 전과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사실상 불기소 처분하는 것. 로펌 측은 검찰 송치를 막는 것 까진 어렵겠지만, '전관 예우'를 이용해 재판까지 가는 건 막아줄 수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늘어놓았다.
 

이들에게 누군가가 '성범죄'를 당했다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로펌의 고객은 성범죄 가해자고, 로펌은 감형을 원하는 구매자에게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감형'이라는 상품을 내놓으면 그만이었다. 로펌 측은 "이런 성범죄 사건을 정말 수천 명을 한다. 전국적으로 우리가 얼마나 많이 살려주는지 모른다"고 우쭐댔다.
 
피해자에겐 헤아리지 못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는 일련의 절차들이 이들에겐 하나의 '게임'처럼 여겨졌다. 로펌 측은 "우리 로펌엔 경찰서와 똑같은 모의 조사실이 있다. 여기서 우리가 문제지 만들어서 리허설 하고 경찰 조사에 갈 것"이라고 말한 뒤 직접 조사실을 구경시켜주기도 했다.
 
로펌 측은 취재진의 감정이나 반성 여부를 묻지도 않은 채 "양형 자료들은 서류로 안내해 줄 것"이라며 "우리가 건넨 여러 서류들을 잘 좀 만들어서 '예쁘게' 우리한테 가져다 주면 된다"고 했다. 정상 참작을 위한 반성문, 탄원서 등의 '감형 자료'는 가해자의 '반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꾸려질 예정이었다. 그저 '예쁘게'만, 반성하는 것처럼 보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이 거래에서 피해자는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 기자는 로펌에 3100만 원만 주면 전관예우를 비롯해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 '감형'을 살 수 있는 가해자 아닌 구매자가 되어 있었다.
 

"피해자 돈 없을수록 좋아"

스마트이미지 제공

앞선 로펌보다는 규모가 작은 성범죄 전담 로펌에도 찾아가봤다. 동생이 준강간미수로 고소를 당했는데, 대학 동기인 피해자가 합의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나 이들에게도 피해자의 의사는 안중에 없었다. 로펌 측은 "우리가 사과문을 전달을 할 거다. 사과문 전달을 계속 할 것. 받아줄 때까지, 사과문을 계속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 역시 2차 가해라는 걸 인지하지 못한 눈치였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아예 합의 의사가 없다 그러면 이건 사실 엄청 골치 아픈 경우"라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더니 피해자의 경제 상황을 아느냐고 물었다. 모르겠다고 하니, "피해자가 경제적 상황이 안 좋아야 우리 입장에선 편하다"며 "피해자가 돈이 많으면 문제"라고 걱정을 표했다. 돈이 없는 피해자에게 감형을 쉽게 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기자가 초조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로펌 측은 최대한 실형을 막아보자며 "기본적으로 사람이 화가 가라앉는 데는 사실 시간만한 게 없다. 되도록이면 사건 진행을 천천히 하겠다"며 "명문대생이니 학창시절 생활기록부도 좋았을 거고, 그것도 제출하면 좋다"고 안심 시켰다. 앞선 로펌과 마찬가지로 경찰 조사를 함께 준비할 것이고, 이후 사과문과 탄원서는 샘플을 보내줄테니 준비하자고 안내했다.

이곳에서 성범죄 감형은 단돈 9백만 원이었다.
 

"표창장 준비하면 된다"…난무하는 '감형' 꿀팁


로펌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감형'은 절찬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성범죄 감형 패키지를 판매하는 한 심리교육센터에 '감형자료를 사고 싶다'고 상담을 요청했다.
 
1분 만에 이들은 65만 원짜리 '프리미엄 감형 자료 패키지'를 제안했다. 재범방지교육수료증 1부, 준법정신강화교육 수료증 1부, 심리상담사 의견서, 반성문 5부, 탄원서 3부, 캠페인활동증명서 1부, 심리교육 수료 소감문 1부, 캠페인 활동 소감문 1부가 포함된 구성이었다.
 
피켓과 전단지 제작 비용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성범죄 예방 캠페인'을 위한 피켓과 전단지를 제작해 직접 길거리에서 캠페인을 벌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실제로 캠페인을 벌인 한 가해자의 사진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러한 감형 패키지가 유명해진 건 온라인 커뮤니티 덕분이다. 회원수가 약 13만 명에 이르는 한 커뮤니티에서는 감형을 위한 각종 팁이 서슴없이 공유되고 있었다. 해당 커뮤니티는 성범죄 전문 로펌에서 운영하는 커뮤니티로, 성범죄로 고소를 당한 회원들이 서로 감형을 위해서 어떤 자료가 필요한지 노하우를 전수해주고 있었다.

'성범죄'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 갈무리.

기소유예로 불법촬영 사건을 마무리 지었다며 경험담을 올린 한 회원은 "성적우수상, 대학성적표, 군대 표창장을 비롯한 각종 상장, 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자료, 봉사 및 기부 내역"을 양형 자료로 제출했다는 팁을 전수했다. 심지어는 가족사진과 인생일대기 및 인생계획서까지 제출했다는 노하우를 전했다. 댓글엔 '고생하셨습니다, 부럽습니다, 감사합니다'와 같은 댓글들이 수십 개 달렸다.
 
커뮤니티엔 직장 내 표창장을 제출했다는 회원도, '기부는 소액이고 적은 시간이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되어 준비했다'는 회원도 있었다.
 
감형 시장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한 변호사는 "심지어 성범죄 불기소 처분을 받아주고, 불기소 처분이 나면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소하고 손해배상 청구까지 함께 해주겠다는 패키지까지 등장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호황 맞은 성범죄 '감형' 시장…뿌리 뽑을 수 있을까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에 따르면, 성범죄의 경우 감경요소로 '진지한 반성'이나 '사회적 유대관계'가 인정된다. 그렇기에 자신의 반성 여부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기부 내역부터 온갖 상장, 심지어는 가족사진까지 양형자료로 동원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자료들이 과연 피해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기여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피해 회복에 기여할 수 없을뿐더러, 오히려 피해자들에게 2차 가해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백소윤 변호사는 "사실 (그러한 감형 자료들이) 해당 범죄 사실이나 피해자, 혹은 피해 회복하고도 연관성이 전혀 없지 않냐"며 "전혀 무관한 것들을 범죄의 죄질이나 사건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데 활용한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원에서 이런 부분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지 않고 굉장히 수용적인 태도로 이 자료들을 활용하기 때문에 점점 더 이런 (양형)자료를 제출하는 게 당연한 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라며 "제출되는 양형 자료들에 대한 성인지 관점이 객관적으로 문제가 없는지에 대한 (법원의) 내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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