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삼일절 기념사><강제동원 배상안>은 일본 극우들의 망언·망동에 뒤지지 않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굴종, 굴신으로 겨레에게 굴욕과 수모를 안긴 죄가 너무나 무겁다. 오늘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한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20일 오후 7시 전북 전주시 풍남문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 미사를 열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이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시국미사가 열린 풍남문 광장 한복판에는 "매판매국 굴욕굴종 검찰독재 윤석열, 퇴진을 멸령한다"라고 쓴 대형 펼침막이 걸려 있었다.
이 광장을 가득 메운 많은 시민, 신부는 '윤석열 퇴진', '윤석열을 타도하자', '일본 영업사원 1호 윤석열 탄핵'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박수를 치며 구호를 외쳤고 개인 인터넷 방송자들이 실시간으로 현장 상황을 공유했다.
강론(설론)은 천주교 전주교구 김진화 신부가 맡았다. 김 신부는 "광화문 촛불 혁명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끌어내리며 더 이상 이렇게 만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렇게 만나게 되어 마음이 착잡하다"며 "윤석열 대통령은 삼일절 기념사에서 식민지배 정당성을 주장하며 또다시 일본에 굽신거리며 사과를 구걸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청사에 길이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했고, 이태원 참사로 퇴진 목소리가 드높아졌을 때도 기대를 접지 않았지만, 오늘 대통령의 용퇴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제단이 윤 정권이 헌법을 위반하고 민주주의를 후퇴시켰다고 주장하는 주된 용퇴의 사유에 대해 일본과 체결한 <강제동원 배상안>을 문제 삼았다.
"세 가지 팔을 꺾다"
사제단은 "그(윤석열 대통령)는 대법원이 거듭 타당하다고 판단한 일본 전범기업들이 강제노역 피해자들에게 배상토록 확정했던 판결을 무효화했다"며 "삼권분립을 무참히 파괴하고, 역대 어떤 행정부 수반이 사법부의 판결 이행을 가로막았던가. 더욱이 그는 징용 배상판결을 고의로 '지연'시켰다는 이유로 대법원장을 구속했던 검사였으면서 대통령이 돼서는 최고법원의 역사적 판결을 무위로 돌렸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이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팔을 비튼 죄'로 규정했다. 이어 "끌려가서 강제노역에 시달렸고, 돌아와서는 손해배상청구권이라는 지당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해서 평생 한을 품어야 했던 노인들의 팔을 꺾었다"며 "대통령의 통치권에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할 권능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 아무 상관도 책임도 없는 우리 기업들이 배상금과 지연 이자를 물도록 하느라 팔을 비틀었다"며 "헌법은 대통령에게 마구잡이로 기업에 막대한 손해를 지정할 권한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는 배임을 강요했고, 이는 있을 수 없는 직권남용"이라고 말했다.
"속으면 안 된다"
"한국, 징용배상 조치 착실히 실행할 것으로 기대한다", "강제동원은 없었다. 이미 끝난 문제", "가장 가까운 동맹국간 협력의 획기적인 장이 열렸다"
이른바 '제3자 변제안'에 대한 일본과 미국 측의 반응에 사제단은 "대한제국의 대신들로서 매국의 대명사가 된 을사오적도 국권을 넘기면서 비슷한 말을 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한일협정이 만들어낸 '한미일 공조체제'에서 우리는 안보의 성장이라는 득과 함께 한반도의 분단과 미일 의존체계를 영속화하는 실도 겪었다"며 "문제는 언제까지 그래야 하느냐 하는 것인데 전임자들이 애써 이룩한 화해와 교류협력의 성과를 비웃는 대통령은 한사코 일본에 기대고, 미국에 업혀 지내려 하고 있다. 미래를 외치지만 친일과 반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슬픈 과거로 우리를 잡아끄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에게 실격을 자신에게 삼일정신을"
"그는 헌법 준수와 국가 보위, 평화적 통일과 자유, 복리, 민족문화 창달을 위해 노력한다는 약속을 심하게 어겼다. 역사적 퇴장을 명령한다"는 사제단은 그를 지칭하며 이렇게 표현했다.
"가혹한 강자독식을 더 나은 미래로 믿으며 서민 생존권을 무시, 노동자들을 적으로 대하고 파업을 '북한 핵 위협'처럼 여기며 4·19이래 수많은 사람이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를 경시하며, 검찰의 권능을 악용해서 정적 제거에 몰두하고 편중인사로 일명 '검찰 공화국'을 수립하며, 이태원 참사에서 보았듯이 공권력을 일신의 안위를 위해 오남용하며, 사죄도 사과도 하지 않고 사사건건 진실을 감추고 남을 탓하며, 7·5남북공동성명이라는 원칙을 깨고 전쟁불사에다 핵무장까지 주장함으로써 불안감 긴장을 고조시키며, 극소수의 특권 유지 확대를 위해 남녀노소 각계각층을 벼랑으로 내몰려, 탄소중립이라는 인류공동의 과제를 외면하고 한사코 원전강국으로 재도약하자는 시대착오적인 사람."
사제단은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점진적인 성취로 이룩되며 심각한 중단이나 퇴보는 언제든 있게 마련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분단기득권 세력의 기사회생, 재집권으로 역사가 후퇴하고 있다"며 "6·15공동선언, 10·4선언으로 전진하다가도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정체와 역진이 있었고 촛불들의 뜨거운 참여와 수고로 판문점 선언, 9월 평양선언이 가능했다"고 말했다.
사제단은 "양심을 지닌 시민이라면 진영을 막론하고 힘을 합치자"며 지킬 것을 지키고, 고칠 것을 고쳐서 이룰 것을 이루는 역사의 현장에서 모두 만날 것을 촉구했다.
천주교 정의구현 전국사제단은 이날 전북 전주를 시작으로 교구별 시국 미사를 봉헌할 예정으로, 구체적인 순서와 방법에 대해서는 비상시국회의를 통해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