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6~17일 방일에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물론 일본 여야 정계 등을 두루 만났다. 그 과정에서 한일 관계 개선에 대한 환담이 이어졌고 뒷얘기들도 다수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16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진행한 한일 확대 정상회담에서 기시다 총리에게 "도쿄에 도착해보니 벚꽃이 만개하진 않았지만 일주일이면 활짝 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에 기시다 총리는 "올해는 예년보다 이례적으로 벚꽃이 빨리 피고 있다"며 "윤 대통령을 환영하기 위해 올해는 조금 벚꽃들이 무리하게 개화한거 같다"고 화답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 것으로 전해졌다.
17일 도쿄의 한 호텔에서 윤 대통령을 접견한 연립 여당 야마구치 나쓰오 공명당 대표는 손목에 '윤석열 시계'를 차고 나왔다. 야마구치 대표는 지난해 12월말 방한해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 대통령을 접견했는데, 당시 선물로 이 시계를 받았다. 그는 환담 중에 "윤 대통령께서 시간이 늦으신건 아닌지요"라며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여줬다고 한다.
야마구치 대표는 또 "양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겠다는 윤 대통령의 대승적인 결단과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다"며 양국 의회 차원에서도 한일관계 개선을 위한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날 진행된 윤 대통령과 일한 의원연맹 접견에서는 '김대중-오부치 선언'의 주인공인 오부치 전 총리의 딸 오부치 유코 의원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한일 간 문제가 생기면 김대중-오부치 선언을 되새기며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친구가 싸울 수 있지만 그렇다고 만나지 않으면 사이가 더 멀어진다. 갈등이 있어도 자꾸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오부치 의원은 두손을 모으고 윤 대통령에게 인사한 뒤 "김대중-오부치 정신을 계승하는 윤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며 "저도 앞으로 한일 관계 개선 강화에 더 노력하겠다"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과 일한 협력 협의회 접견에서는 현재 회장을 맡고 있는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참석했다. 아소 다로 전 총리는 "윤 대통령이 중요한 결단을 했다"고 공식 발언을 한 뒤 "그건 그렇고 오므라이스 맛은 어땠냐"고 물었다고 한다. 두 정상이 회담 후 2차 만찬을 위해 방문한 경양식집 '렌가테이'(煉瓦亭)의 오므라이스에 대한 평가를 물은 것이다. 렌가테이는 1895년 창업해 128년 역사를 자랑하며 포크커틀릿에 양배추를 곁들인 일본식 '돈가스'와 오므라이스의 발상지로 알려진 곳이다.
윤 대통령은 "이전에 먹은 것과 비교하면 라이스 맛은 그대로인데 계란 두께가 옛날보다는 얇아진거 같다"고 했고 아소 다로 전 총리는 "그 이전 셰프는 돌아가시고 새로운 요리사가 이 식당을 이어가고 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윤 대통령은 "일본 오므라이스는 계란을 두껍게 하고 한국은 얇게 하는데 한국에서 왔기에 요리사가 일부러 그렇게 한 줄 알았는데 요리사가 바뀐건 몰랐다"고 말한 뒤 아소 다로 전 총리가 지난해 11월 방한할 때 사왔던 '양갱'을 언급하며 "그 집도 수백년 이어오는데 그런게 어떤 일본 산업의 기초를 탄탄하게 만들어주는 기반 아니겠느냐"고 한일 경제 분야에서도 협력 중요하다는 대화로 이어갔다고 한다.
한편 렌가테이에서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는 넥타이를 풀고 생맥주와 양국 소주를 마시며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가 평소 고독한 미식가 주인공을 보고 "저렇게 많이 먹으면서도 살이 안 찐다"며 궁금해 한다는 얘기가 나왔고, 오고가던 식당 주인은 "주인공이 이 식당에 왔었는데 많이 먹는 건 사실이지만 살을 빼기 위해서 엄청나게 노력한다"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의 17일 게이오대 연설 때는 1학년 일본 학생이 "저도 한일 관계 개선의 역할 하고 싶다"며 "제가 뭘 할지 알려주시기 바란다"는 질문이 나왔다고 한다. 이에 윤 대통령은 "가장 중요한건 서로 만나는 것"이라며 "학생도 한국 방문해 달라. 제가 대통령이 되어서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가장 처음 취한 조치도 김포-하네다 공항 노선을 재개 한 것"이라고 답했다.
이밖에 윤 대통령이 16일 오전 숙소인 도쿄의 한 호텔에 도착했을 때 로비에 있던 일본인들이 박수를 쳤다고 한다. 이후 17일 윤 대통령 일행이 숙소를 떠나서 공항을 갈 때도 호텔의 모든 직원이 도열해서 박수를 쳤다. 대통령실 이도운 대변인은 19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가진 브리핑에서 "일본에선 굉장히 흔치 않은 일"이라며 "호텔 직원이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공항에서 이륙할 때 공항 직원들도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 정도면 일본인들의 마음을 여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지 않나 생각한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