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종영한 tvN 토일드라마 '일타 스캔들'에서는 등장인물 중 거의 유일하게 웃음기 없는 장서진 역을 맡았다. 발랄하고 산뜻한 로맨틱 코미디로서 사랑받았지만, 은근히 많은 시청자를 '일타 스캔들'로 끌어들인 장면 중 하나는 장서진과 '엄마들 무리'에서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수아(강나언) 엄마 조수희(김선영)가 대립하는 장면이었다. 언성을 높여 험한 말을 해도 대꾸하지 않고 포도 씨를 툭 뱉는 것으로 응수하는 장서진의 태연함이 오히려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앤드마크 사옥에서 열린 라운드 인터뷰에서 장영남은 "포도 씨 뱉을 때 엄청 떨었다"라고 고백했다. 평소 정말 좋아하던 배우 전도연, 김선영과 같이 연기하게 돼 두근거리는 한편 기뻤다고도 전했다.
장영남은 "사실 저는 이 작품 하기 전부터 전도연 선배님, 김선영씨 두 분 되게 좋아했다. 내가 사실 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나이대도 비슷한 사람들이 영화나 드라마에 우르르 나올 리가 없지 않나. 50대가 있으면 40대, 30대를 캐스팅하니까 만날 일이 없을 거야 하고 동경했던 배우들이다. 전도연 선배님은 말할 것도 없다. 너무 위대한 업적 갖고 계신 분이고, 지금도 잘 가시는 분이다. 이견이 없지 않나. 선영씨도 연기하는 모습 보면 좋더라"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전도연과 김선영이 출연하는 작품이라니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고. 장영남은 "진짜 너무 좋아했던 배우들인데 안 할 이유가 없다. 현장 갔을 때 그분들하고 처음 찍을 때 '도찐개찐이 아니라 도긴개긴이에요' 하는 장면에서 너무 떨렸다. 너무 좋고 (실제로) 만난다는 흥분도 있지만 (연기를) 잘해야 하는데 이게 떨려서 대사가 말리더라"라고 웃었다.
조수희와 장서진의 살 떨리는 대립 장면도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장영남은 "포도 씨 뱉을 때도 엄청 떨었다. 여기(심장)가 막 쿵쿵쿵 뛰었다. 다른 어떤 분들 만났을 때보다 이 두 배우 만났을 때 이렇게 떨릴 수가 없더라. 그분들이 아우라가 대단하시긴 했다"라고 전했다. 앞선 인터뷰에서 전도연이 이 장면을 찍을 때 장영남이 털털하고 편한 사람이라는 느꼈다고 한 것을 언급하자, 장영남은 "좋아했던 마음, 만나보고 싶었던 마음이 통한 게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드라마 안에서 모자 연기를 했던 이희재 역 김태정, 이선재 역 이채민과의 호흡에 관한 질문이 나왔다. 장영남은 "사실 저는 어떤 배우를 만나도 '불편해서 못 하겠어요'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다른 작품에서도. 사람이 다 다르고 처음 만나서 하는 거니 알아가는 과정이지 않나. 내가 내 것만 한다고 해서 잘하는 것도 아니고 희재랑 선재보다 훨씬 나이가 많다. 내가 나이가 많고 싶어서 많은 게 아니라 단지 먼저 태어나서 본의 아니게 내가 선배가 된 것"이라고 말문을 열었다.
이채민에 관해서는 "선재는 밝고 건강하게 잘 자라온 아이다. 자신감도 있고 자존감도 있고 요즘 딱 젊은 친구들 같다"라며 "요즘 친구들은 자기가 할 거 다 한다. 젊은 친구들이 너무 좋더라. 저희 때만 해도 (선배) 눈치 보고 그랬는데, (이채민은) 열정적으로 자기가 괜찮은지 물어보기도 하고 저도 선재한테 '나 이거 이상했어?'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서로 불편함 없이 했다. 늘 촬영장 가면 '미안해, 선재야. 못되게 해 가지고'라고 했다"라며 웃었다.
희재 역 김태정을 두고는 "사실 희재는 캐릭터가 어렵다. 이만한 에너지를 가지고 한마디 없이 몇 부를 끌고 가야 하는데, 전사가 없어서 표정이나 숨소리, 호흡으로 표현하는 게 쉽지 않은 캐릭터다. 나도 사실 희재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더라. 본인이 많은 스토리를 짜지 않으면 얼마나 어려운 캐릭터였겠나. 저는 희재랑은 대화를 많이 나누지 않았다. 거리감이 있으면 있을수록 (극 전개상) 좋을 거란 생각도 들었고, 촬영장에 왔을 때 본인 스스로 굉장히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하고 멋있어 보였다. 자기 몫을 충실히 해내려고 엄청 애쓰고 노력하는 점을 높이 평가한다"라고 말했다.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데뷔한 오랜 시간 공연 무대에 올라,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대한민국 연극대상 여자연기상, 골든티켓어워즈 연극 여자배우상 등 여러 상을 받았다. 이런 무대 연기 경험이 자신에게 어떤 자양분이 되었는지 묻자, 그는 "연극이 사실 가장 기본이라고 하더라. 무대 위에서 관객을 만나니 전신 연기다. 카메라는 숨길 수 있는데 한 번 무대에 나가면 전신으로 다 표현해야 한다"라고 답했다.
장영남은 "모든 직업이 버텨야 얻어지는 게 있다.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걸 저는 되게 행복하게 생각했고 지금도 변함이 없다. 옛날하고 달라진 거 없는지 누가 물어도, 아직도 잘해보고 싶고 좋아하는 것은 똑같다. 할 줄 아는 게 연기뿐이고 그래도 잘해보고 싶은 게 연기다. 다른 기술이 없으니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만큼 버틸 뿐이다"라고 밝혔다.
오랫동안 '연기'라는 한 우물을 팠고, 연기력에 관해서는 의심의 여지 없이 좋은 평을 들어왔는데도 장영남은 여전히 자기를 의심한다고 고백했다. 최대 고비는 40대에 왔다. '내 연기가 잘못됐다'고까지 생각하며 뾰족한 해결책 없이 "계속 바닥으로 떨어져 있어서 남 눈치 보고 자신감도 없"는 시기를 보냈다. 어느 날은 현장 가서 연기하고 집에 돌아와서 울기도 했다. 그는 "미친 것 같았다. 연기했던 걸 다 까먹은 느낌? 번아웃인진 모르겠지만 그런 순간이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워낙 다양한 작품에서 여러 가지 배역을 맡아왔기에 때때로 '도대체 내 정체성은 뭐지?' '나는 무슨 사람이지?' 하는 생각이 피어오른다는 장영남은, "일단 저한테 주어진 걸 성실히 해내야 하고, 아이와 가정이 있으니 취미 생활에까지 에너지를 분산시키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돌아봤다. 힐링하는 순간도 연기할 때란다.
"힐링 포인트가 연기예요. 연기하면서 힐링해요. 내가 좋은 캐릭터를 즐겁게 작업하는 것, 이런 데서 힐링돼요. 연기하면서 상처도 받지만 힐링이 되니까 다른 취미 생활이 없는 거예요. (웃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