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개선' 선언에도 과제 산적…"일본 '적극 조치' 필요"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16일 오후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한일 확대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며 악수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2년 만에 국가원수의 양자회담 형식으로 일본을 방문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내용에는 그동안 경색돼 있던 한일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적극적으로 표명됐다.

다만 이를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아직 산적해 있어, 공을 넘겨받은 일본의 적극적인 조치가 요구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날 윤 대통령과 기시다 총리가 발표한 내용을 종합하면 한일 정상은 서로를 방문하는 '셔틀 외교'의 복원, 한일 안보대화와 차관급 전략대화의 조기 재개,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완전 정상화 등에 합의했다. 양 정상은 양국 경제단체인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과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의 '미래기금' 창설 또한 환영한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회담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양 정상은 양국 관계 전반을 조속히 회복시키고 미래 지향적인 협력 관계를 지향한다는 정상 간의 의지를 확인하고 이를 외교·경제·문화·인적 교류 등 각 분야로 확대시켜 나가자는 데 공감했다"며 "특히 과학기술 협력, 또 금융 협력 분야에서 위기에 대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공동의 움직임을 모색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한편, 한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간에 경제안보 대화를 신설하고 외교당국 간 전략대화를 재개하기로 함으로써 외교안보 분야의 양국 간 협력의 폭과 깊이를 더욱 심화시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일간 외교 문제와 관련해 화이트리스트 배제 문제 등이 아직 남았다. 2019년 8월 일본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한 불화수소, 불화 폴리이미드, 포토레지스트 3개 품목에 대한 수출 규제 조치는 해제됐지만, 수출 절차 간소화 혜택을 주는 화이트리스트 복귀는 차후의 과제로 남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산정책연구원 최은미 연구위원은 "화이트리스트 복귀는 실무적인 절차를 해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2019년 제외 당시에도 각의 결정이 있었고 시행령을 공포하는 등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복귀시키려면) 이번에도 마찬가지이지만 오해를 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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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오사카 총영사를 지냈던 북한대학원대 조성렬 초빙교수도 "우리가 먼저 방안을 발표하고 일본이 사후 보완조치를 하는 식으로 서로 체면을 차리는 것이 아닌가 한다. 화이트리스트 복귀의 경우에는 GSOMIA와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에 차차 정상화될 것으로 본다"며 "순서상으로는 차이를 두겠지만, 한국 내 여론을 의식해 거의 바로 할 것이라고 예상된다. 즉,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이야기한 '성의 있는 호응 조치' 형식을 띠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 측에서 먼저 일정 수준의 조치가 이뤄진 만큼, 화이트리스트 복귀를 포함해 추가적인 조치를 해야 하는 공은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여기에는 이번 회담에서 일단 "1998년 10월에 발표된 일한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선언)을 포함해 역사 인식에 관한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로서 계속 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만 언급하고 넘어간, 강제동원 사실에 대한 일본 측의 진심어린 사죄와 반성 등도 포함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부터는 일본에 달린 셈으로,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일본의 '성의' 여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전망이다. 일본은 국회의원이 그대로 정부 각료가 되는 내각책임제이므로 집권 자유민주당 의원들의 '망언' 등이 나올지 등도 지켜봐야 한다.

주니가타 총영사를 지냈던 세종연구소 정미애 객원연구위원은 "전체적으로는 정상회담 전에 예상했던 정도로, 강제동원 해법과 관련해서 일본의 진심어린 사과나 우리가 기대하는 수준 정도의 사과·사죄 표명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최은미 연구위원은 "결과적으로 다음번에는 기시다 총리가 한국에 와야 하니, 그 때는 더 무거운 숙제를 지게 됐다"며 "우리가 할 것은 다 했고 일본이 할 차례인데, (일본 내에서)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서 부담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나마 여기에 긍정적 측면으로 작용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전경련과 게이단렌의 '미래기금'이다. 일본 전범기업들도 제3자 변제를 위한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의 기금에는 참여할 수 없다고 밝히면서도, 미래기금의 참여에는 여지를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렬 교수는 "기금에는 포스코 등 (청구권 협정의 수혜를 받은) 한국 기업이나 일본 전범기업들도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일본도 정치적 리스크가 있기에 상호적 조치를 하지 않을 수는 없으므로, 진보 진영에서도 신중하게 비판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지난 2019년 1월 우리 함정에 근접 비행하는 일본 초계기. 연합뉴스

다만 또다른 과제로 제3자 변제안의 구상권 문제와 함께 한일간 안보갈등의 대표적 사례로 남아 있는 2018년 12월 일본 초계기의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한 위협비행 사건 등도 남았다.

민법상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제3자 변제를 시행하고 나면 그 주체인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은 일본 기업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 시효는 10년인데, 윤석열 대통령은 공동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2018년에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됐고, 이를 방치할 것이 아니라 협정을 해석해 온 일관된 태도와 판결을 조화롭게 해석해서 제3자 변제안을 해법으로 발표했다"며 "이로 인한 구상권이 행사된다면 이것은 모든 문제를 다시 원위치로 돌려놓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는 이를 상정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조성렬 교수는 "윤석열 정부 임기가 4년 남았는데, 남은 6년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가 생긴다"며 여전히 불씨는 남아 있다고 비판했다. 최은미 연구위원은 "이번 정부 이후에 정권교체가 되고 구상권을 청구하겠다고 하면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사실상 없다"면서도 "만약에 구상권을 청구한다면 한국 외교에 손해로 작용한다. 우리가 입장을 바꾼 셈이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손해가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잖아도 정상회담 바로 전날인 지난 15일에 손해배상 확정판결 승소 원고들 가운데 일부가 미쓰비시중공업의 국내 자산에 대한 추심금 소송을 제기한 바다. 소송대리인단은 우리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거부하는 피해자들의 경우, 그들의 의사에 따라 일본 피고 기업의 국내 자산을 신속하게 현금화해 피해자들이 원하는 방식의 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에는 미쓰비시중공업의 손자회사인 국내법인 엠에이치파워시스템즈코리아 주식회사에 가지고 있는 채권이 되는데 대리인단과 지원단은 이미 이 자산을 2021년 9월 압류했고 추심명령도 받았다.

초계기 위협비행 사건은 2018년 12월 당시 어뢰와 대함미사일 등을 갖춘 해상자위대 P-1 초계기가 우리 해군 함정에 대해 공격 침로를 잡으며 근접 위협비행을 했는데, 일본 측에서 도리어 우리 해군 함정이 P-1 초계기에 STIR-180 사격통제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주장하며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자 당시 합동참모본부 서욱 작전본부장(이후 국방부 장관 역임)은 2019년 1월 브리핑을 열고 "일본 정부에 분명하게 재발 방지를 요청했음에도 또 다시 이런 저고도 근접위협비행을 한 것은 우방국 함정에 대한 명백한 도발 행위"라고 공개적으로 경고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한미일 안보협력 측면에서 한국군이 일본 자위대를 제대로 신뢰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이번 정상회담에선 이 사건이 취재진의 질문 내용 외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향후 불씨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국방부 전하규 대변인은 16일 정례브리핑에서 "강제징용 문제와 무관한 사안이지만 향후 한일간 신뢰 관계 회복을 고려해 바람직한 해결 방안을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혀 향후 국방부와 일본 방위성 사이에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를 진행할 가능성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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