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멋지다, 동은아!" 모두가 바랐던 대로 학교 폭력 피해자 문동은은 박연진을 비롯한 모든 가해자에게 복수를 선사했다. '인과응보'라는 말처럼 가해자들은 모두 징벌받고 나락으로 추락했고, 피해자들은 서로를 구원하고 또 스스로를 구원했다. 그 끝에 존재하는 건 대부분 '영광'이지만, 분명 불명예도 남겼다는 점에서 '더 글로리'를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10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극본 김은숙, 감독 안길호) 파트 2에서는 극야(極夜)의 시간을 견딘 동은(송혜교)은 박연진(임지연)을 비롯해 전재준(박성훈), 이사라(김히어라), 최혜정(차주영), 손명오(김건우) 등 학폭 당사자 5인방과 동은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선생 김종문(박윤희), 동은에게 또 다른 지옥을 선사했던 엄마 정미희(박지아)를 향한 복수에 성공했다.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이 보여준 복수는 존엄과 연대를 지킨 '진짜' 복수였다. 백마 탄 왕자의 도움은 있었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동은은 스스로 해냈고 그렇게 스스로를 구원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포기한 이들 사이에서도 동은은 존엄을 잃지 않았다. 그리고 피해자와의 연대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동은의 복수는 '진짜'였고, 완벽하게 마무리됐다.
무엇보다 문동은은 이미 스스로를 구원했다. 누군가의 표현대로 동은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갔음에도 끝까지 잃지 않은 게 있다.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다.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고 여전히 부를 누리며 사는 가해자들은 애초에 인간으로서의 도덕과 양심을 저버린 채, 즉 타락한 채 살아왔다.
그와 달리 동은은 비록 학교 폭력으로 인해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었지만 스스로가 '인간'임을 잊지 않았다. 어른으로 성장하는 길목에서 가정 폭력과 학교 폭력을 동시에 겪으면서도 동은은 정신적으로 무너지지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은 채 성장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진짜 용기고, 진짜 복수이고, 진짜 인간으로서의 증명이다.
동은은 '복수'를 향해 전력 질주할지언정, 복수에 눈이 멀어 인간성을 저버린다거나 스스로가 '피해자'이기에 어떠한 복수의 방식도 용인된다는 비틀린 논리를 펼치지도 않았다. 또한 어릴 적 자신은 받지 못했던 구원의 손길을 타인에게 내밀며 그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전했다. 존엄을 짓밟혔음에도 스스로는 그 존엄을 잃지 않고 살아왔다는 점 자체가 이미 동은이 스스로를 구원했음을 보여준다.
여기엔 동은과 달리 가해자들의 관계에는 '폭력'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폭력을 바탕으로 엮인 가해자들의 관계는 견고하지 못했고, 모래성처럼 쉽게 무너졌다. 이와 달리 동은은 자신의 조력자, 또 다른 피해자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바탕으로 믿음을 쌓아오며 견고한 관계를 맺었다. 피해자들은 '연대'했고, 그 연대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며 가해자에 대한 '징벌'로 이어졌다.
그 과정에서 피해자, 특히 여성의 연대를 그려내며 서로가 서로를, 그리고 스스로를 구원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가정 폭력이라는 또 다른 폭력의 피해자인 강현남(염혜란)의 경우 흔히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을 부각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때때로 피해자에게는 웃음도, 행복도 없을 거라 상상한다. 이러한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는 때로 피해자들에게도 당연하게 존재하는 웃음과 행복, 일상이 당연하지 않다는 인식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그런 측면에서 '더 글로리'는 '가정 폭력 피해자' 강현남 역시 자신만의 일상이 있고 웃을 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주며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물론 부유하고 능력 있는 남자주인공인 주여정(이도현)이 등장하고 그런 남주는 여전히 백마 탄 왕자님의 위치에 있다. 그러나 문동은의 조력자로 존재하지 그 존재 자체가 문동은의 구원은 아니다. 여정은 스스로를 문동은의 도구, 즉 망나니로 표현하며 기꺼이 칼춤을 추겠다고 한다.
또한 동은의 완벽한 복수와 달리 여정은 자신이 지닌 재력이나 사회적 위치를 복수에 제대로 이용하지는 못한다. 그런 여정에게 동은은 백마 탄 기사가 되고, 여정을 위한 복수극의 설계자가 되어 앞장선다. 이러한 여성 주인공의 역할 변화는 긍정적인 부분이다. 스스로의 작품 세계에서 탈피해서 진보한 모습을 보여준 작가의 노력과 성과는 새로운 '김은숙 월드'를 꿈꾸게 했다.
그러나 학폭 피해자의 복수를 다룬 드라마를 연출한 안길호 감독이 실제 학폭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사건은 '더 글로리'의 아이러니는 불명예로 남게 됐다. 극 중 피해자를 기억하지 못하는 가해자의 모습이 결국 현실 반영이었음을 연출자가 스스로 입증한 셈이 됐다.
여성 가해자들이 얼마나 나쁜 존재인지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는 여성들을 성적으로 문란하게 그린다. 여성 캐릭터의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아무렇지 않게 노출이 이뤄진다. 그러나 남성 가해자들은 다르다. 문란한 남성 가해자들은 이에 대해서는 손가락질받지 않는다.
'육체적 죽음'이라는 방식으로만 징벌이 가해지는 남성 가해자들과 달리 여성 가해자들은 불법 촬영물 유포 등 여성 혐오적이고 사회적인 방식으로 단죄된다. 여성은 현실에서도 드라마에서도 혐오 속에 놓여있고, 그로 인해 사회적으로도 죽어간다. 이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 남아 있는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 여성 혐오 범죄에 대한 현실이 묻어나는 것 같아 아쉽고 씁쓸한 지점이기도 하다.
이러한 여성 혐오적인 드라마의 재현은 아직도 대중문화가, 미디어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증명이기에 더욱더 안타깝다.
'더 글로리'가 남긴 영광도 분명히 존재하기에 '불명예'라는 잔재 역시 더욱 또렷하게 두드러진다. '용두용미'의 결말만큼, 동은이 보여준 빛나는 존엄만큼, 복수극의 뒷맛이 보다 깔끔했으면 어땠을까. 가해자에 대한 피해자의 성공적인 복수가 드라마였기에 가능했다면, 다른 면에서도 '드라마'이기에 가능할 수 있는 지점을 만나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