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으로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MA) 초안이 곧 공개된다. 유럽연합(EU)이 역내 공급망을 바탕으로 생산한 제품에만 보조금 혜택을 준다는 게 골자다.
이같은 '빗장'에 그간 EU 시장을 개척해온 국내 전기차 배터리 기업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다.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가운데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공급망 다변화 등 발빠른 조치를 더해 EU의 조치에 대응하겠다는 구상이다.
K배터리 '위기'인가, '기회'인가
EU 집행위원회는 16일(현지시간) CRMA 초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EU 역내에서 전기차 배터리에 탑재되는 핵심 원자재의 10% 이상을 공급받고, 이를 기반으로 배터리의 40% 이상을 현지 제조하는 업체에 한해 세액공제와 보조금 혜택을 주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러시아에 기대고 있는 원자재 수입 의존도를 낮추려는 취지다.
원자재의 중국 의존도가 높은 국내 배터리 기업에게 CRMA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국내 기업들이 주력하는 NCM(니켈·코발트·망간) 배터리에서 주요 원자재인 수산화리튬의 중국 수입 비중은 87.9%에 달한다. 코발트와 천연흑연의 중국산 비중도 각각 72.8%, 94%에 이른다. 핵심 광물의 처리와 가공 공정 대부분이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자 CRMA에 대응해 국내 배터리 기업들이 공급망을 근본적으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K배터리 3사의 지난해 유럽시장 점유율은 73%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유럽이야말로 버릴 수 없는 시장이다. EU의 '빗장걸기'에 공급망 다변화 등 돌파구를 마련해 어떻게든 시장 점유율을 지켜야 한다는 위기감이 번지는 이유다.
반면 위기가 기회일 수 있다는 기대감도 적지 않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배터리 제조에 들어가는 핵심 광물인 리튬과 코발트의 경우 유럽에서 채굴이 거의 불가능하다. EU도 이 부분을 고려해 당장 역내 원자재 10% 공급을 요구하지는 않을 걸로 보인다"며 "폐배터리 재활용이 관건이 될 수 있다. 폐배터리에서 핵심 광물을 추출·조달하는 시장이 크게 성장할 수밖에 없어서다. K배터리에게도 이 부분은 새로운 기회다"고 내다봤다.
"K배터리 기술력으로 위기 돌파"
공급망 다변화와 맞물려 세계 최고 수준의 K배터리 기술이 위기 돌파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많다. 무역 장벽이 높아져도 결국 압도적인 기술력으로 일정 부분 극복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15일 열린 국내 최대 배터리 산업 전시회 '인터배터리 2023'은 이같은 K배터리의 기술력을 전세계에 뽐내는 장이 됐다. 해외 16개국에서 101개의 기업과 정부가 참여했고, 그중 7개국은 정부·공공기관이 직접 부스를 설치하고 나섰다. 국내·외 기업을 모두 합하면 총 477개 기업(1400개 부스)이 참가해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관심은 단연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K배터리 3사에 쏠렸다. 행사 첫날 오전부터 이들 3사의 부스를 찾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각 부스마다 신제품과 신기술을 구경하려는 업계 관계자와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교환 스테이션'(BSS)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셀 등을 전시하며 눈길을 끌었다. BBS는 전기 이륜차용 배터리팩을 충전이 아닌 교환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다. LFP 배터리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의 수요가 늘면서 업계 주목을 받고있다.
삼성SDI는 전고체 배터리를 내세웠다.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는 고체 전해질 외에 음극재에도 새로운 소재를 적용했다. 기존 흑연 음극재 대신 실버카본층을 사용해 부피를 획기적으로 줄여 에너지 밀도와 성능을 높였다. 올해 하반기 시제품 샘플을 제작하고 전고체 배터리 개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다.
SK온은 각형 배터리 실물 모형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SK온이 만드는 각형 배터리는 빠른 충전 속도가 특징이다. 올초 미국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받은 급속충전 배터리는 18분 동안 80%까지 충전이 가능하다. SK온만의 차세대 기술을 담은 전고체 배터리도 처음 실물을 공개했다.
장영진 산업부 1차관은 이날 개막 축사에서 "역대 최대 규모의 전시회가 열린 가운데 인터배터리가 명실상부한 글로벌 전시회로 자리매김했다"며 "이번 행사의 성공을 발판삼아 앞으로 인터배터리 행사가 배터리 업계의 CES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