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B조 체코와 일본의 경기에서 아찔한 장면이 연출됐다.
일본 선발투수 사사키 로키가 4회초 1사에서 던진 공이 체코 외야수 윌리 에스칼라의 오른쪽 다리에 세게 맞았기 때문이다.
사사키 로키는 일본프로야구의 간판 '파이어볼러'로 WBC 대회에 앞서 열린 평가전에서 시속 165km의 강속구를 던져 화제를 모았던 투수다.
에스칼라가 맞은 공의 속도는 시속 162.4km인 것으로 나타났다.
에스칼라는 공에 맞자마자 쓰러져 한동안 일어서지 못하고 고통을 호소했다. 하지만 교체되지 않았다. 그는 1루로 걸어나갔고 남은 경기뿐만 아니라 잔여 경기를 정상적으로 소화했다. 12일 한국전에도 정상 출전했다.
에스칼라의 강인한 모습에 사사키 로키도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
WBC 홈페이지에 따르면 사사키 로키는 13일 에스칼라를 찾아갔다. 호주전을 앞둔 체코의 선수단 버스가 호텔을 떠나기 전 그를 만나 몸 맞은 공에 대한 사과의 뜻을 전했다.
사사키 로키는 에스칼라에게 사인공을 건넸고 큰 봉지에 일본 사탕을 가득 담아 선물했다.
에스칼라는 "그를 만나 무릎의 멍 자국을 보여줄 수 있어 기뻤다"면서도 "경기 도중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인데 사사키는 품격있는 행동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체코의 주장 페트르 지마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엄청난 리스펙트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야구 강국 쿠바의 반등과 야구 변방 이탈리아의 약진으로 정리된 A조에서는 이색적인 장면이 포착돼 SNS를 뜨겁게 달궜다.
지난 11일 이탈리아와 대만의 경기에서 이탈리아의 덕아웃 구석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배치돼 있는 장면이 TV 중계화면에 잡힌 것이다.
덕아웃에서 커피를 마시며 야구를 즐기는 이탈리아 선수단의 모습은 화제를 불러모았다.
1990년대 LA 다저스의 간판 포수로서 '코리안특급' 박찬호와 호흡을 맞췄던 마이크 피아자 이탈리아 감독은 WBC 홈페이지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커피는 물과 같다"며 만약 주최 측이 허락했다면 덕아웃에 바리스타를 데려오고 싶었다는 농담도 전했다.
WBC를 통해 '인생역전'을 해낸 선수도 등장했다.
야구 변방으로 알려진 니카과라의 만 21세 젊은 투수 두케 헤베르트가 그 주인공이다.
헤베르트는 14일 우승후보 도미니카 공화국과 D조 경기에 등판했다. 니카과라가 1-6으로 뒤진 9회초 마운드에 올랐다.
사실상 승패가 결정됐지만 헤베르트에게는 야구 인생에 다시 없을 도전이었다. 후안 소토, 훌리오 로드리게스, 매니 마차도, 라파엘 데버스 등 메이저리그 최정상급 타자들이 타석에서 대기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올스타 4명의 2023시즌 몸값은 약 1100억원이 넘는다.
프로 무대를 경험한 적 없는 헤베르트는 '괴물' 타자들을 상대로 놀라운 결과를 만들었다. 소토와 로드리게스를 연속 삼진으로 처리했다. 마차도에게 2루타를 맞았지만 데버스를 삼진으로 처리하며 이닝을 끝냈다.
니카과라는 1-6으로 졌지만 헤베르트는 이날 경기의 진정한 승자였다.
경기가 끝난 뒤 메이저리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스카우트가 헤베르트를 찾아갔고 즉석에서 마이너리그 계약을 제안했다. 헤베르트는 이를 수락했고 니카과라 선수단 버스 안에서 계약 사실이 공식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