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 총괄의 지분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발생한 4228억 원을 포함해 25%의 지분을 추가 확보하겠다는 목표로 진행한 공개 매수 비용 등, 하이브는 이미 들였거나 앞으로 나갈 돈의 규모가 상당했다. 카카오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을 하려던 SM이사회의 결정에 법원이 '위법'하다며 제동을 걸자, 카카오는 하이브가 제시한 12만 원보다 25% 높은 15만 원을 제시해 공개 매수를 시작했다.
카카오-카카오엔터가 이 판에 본격적으로 뛰어듦에 따라, 하이브는 "경쟁 구도가 심화되고, 주식시장마저 과열 양상을 보이는 현 상황에서는 SM 인수를 위해 제시해야 할 가격이 적정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무리한 SM 인수 시도가 오히려 하이브의 주주 가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부연하긴 했으나, 사실상 '자금력 부족'을 시인한 셈이다.
경영권은 포기했으나 플랫폼에서 우위를 가져가겠다는 게 하이브의 입장이었다. 카카오와 하이브가 '대승적인 합의'에 도달했고, 양사의 플랫폼 관련 협업 방안에도 합의를 이뤘다는 설명이다. 다만 '플랫폼 협업 방안'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하이브-카카오 양사의 공식입장에 빠져 있었다. 하이브가 가진 위버스로 팬 커뮤니티 플랫폼이 일원화될 가능성이 가장 높게 점쳐지고 있다.
하이브는 왜 멈췄을까
레이블-솔루션-플랫폼이라는 세 축을 아우르는 기업. 이런 지향점을 두고 하이브는 공격적인 인수 합병으로 몸집을 불려 왔다. 올해 2월에도 유명 힙합 레이블 QC 미디어 홀딩스 지분 100%를 3140억 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 카카오와 손잡으려는 SM 현 경영진에게 이 전 총괄이 극심하게 반발해 하이브에 빠르게 본인 지분을 팔면서 새 국면에 들어섰고, 하이브에는 또 '돈 쓸 일'이 생겼다. SM 인수전에 들이는 총비용은 약 1조 원 규모로 예측됐다.하이브의 SM 인수 중단을 두고 "현명한 결정"이라고 평한 김진우 써클차트 수석연구위원은 "하이브 자체보다는 하이브 우군 쪽에서 등판하지 않겠냐 하는 관측이 있었다. 하이브 자금력에 한계가 있으니까 여기서 멈추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정민재 음악평론가는 "하이브가 한발 물러선 것도 현명한 판단이라고 본다. 카카오와 현금으로 정면 승부가 가능하지도 않고, 소위 자존심 싸움처럼 보여서 여러모로 그림이 좋지 않았는데 적당한 시점에 명분을 갖고 잘 빠져나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SM 내부는 물론 SM과 하이브 가수 팬들의 여론이 그리 좋지 않았던 점도 주효한 포인트라고 짚었다. 정 평론가는 "내부 반발이 커서 SM이 하이브에 편입되는 방식은 어떻게든 막으려는 움직임이 있을 거라고 봤고, 이런 결합은 어려울 거라고 전망했다"라며 "하이브가 공개 매수 등 각고의 노력을 했지만, 이 전 총괄과 하이브 수뇌부 소수만이 이번 인수로 인해 득을 볼 거라는 관측 때문에 대중과 SM 팬들, 하이브 팬들 반응도 좋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SM의 향후 거취를 둘러싸고 SM-카카오와 하이브의 입장차가 현격했기에 이 싸움은 '모 아니면 도'로 흐르는 모양새였다. SM의 향후 주인은 하이브이거나 카카오라는, 완전한 승자와 패자만이 존재하는 구도였다. 하지만 하이브가 경영권을 포기하되 카카오와 플랫폼 협력 합의를 이루며 양사는 SM을 가운데에 두고 기묘한 동거를 하게 될 상황에 처했다.
향후 하이브-카카오의 관계에 관해 이 연구원은 "지분 처분 문제나 플랫폼 협력 관계 세부 조율이 필요하기에 상당 기간 전략적 긴장 관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훗날 대립하게 될 경쟁 상대와의 장기적 외교전으로 활용하거나, 연대를 통한 시장 지배력 강화와 성장의 파트너 관계를 설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기에, 하이브로서 마다할 필요 없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는 SM을 둘러싼 각축전을 '시장의 재편'으로 읽었다. 이 이사는 "하이브-SM-카카오 3사 구도는 좋게 얘기하면 K팝 시장의 재도약이자 재편을 보여준다고 본다. 예전에는 기획자 중심의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주력이었다면, 지금은 플랫폼이 주도하는 방향으로 K팝 음악 산업도 바뀌게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한 지붕 코앞에 둔 SM-카카오 전망은
이를 통해 카카오가 얻는 것은 견고하고 다채로운 SM의 IP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정 평론가는 "사실 SM은 음악 회사로 출발했지만 현재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여러 가지 제작 분야에서도 자리 잡았다. IP 확보가 카카오에게는 가장 큰 강점일 것"이라며 "카카오는 늘 엔터 분야를 잘 키우고 싶어 했다. SM과 함께함으로써 엔터 분야의 주요 플레이어가 되고자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윤하 음악평론가도 "현재 배우부터 웹소설까지 문화계 다방면 라인업을 채우는 데 전력을 다하는 카카오로서는 자사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치트 키로 SM이라는 유서 깊은 음악 레이블을 택하지 않았나 싶다. 수익 구조도 탄탄한 것으로 알려져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다면) 명분과 실리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관측했다.
이 연구원은 '카카오 그늘 아래 SM'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질 시, 카카오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나는 유통 중심 제작 기능 강화고, 다른 하나는 문화 가치 사슬의 영향력 확대를 통한 수익성 다각화 및 유통 플랫폼의 연계다.
이 연구원은 "아이돌은 수익성 강화라는 목적에 따라 자본의 유연화가 가능하다. 플랫폼을 통한 수익성을 바탕으로 아이돌을 데뷔시키는 전략이 가능해진다. 기존 콘텐츠 제작 역량과 지배력, 자본력을 바탕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우위에 서면 문화 산업의 가장 어려운 부분인 '불확실성'이라는 원천에 관한 통제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그렇다면 SM은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정 평론가는 "이 전 총괄은 몇 년 안에 은퇴를 생각하고 있었으니 대주주의 지분이 어딘가로 흘러가긴 해야 했다"라며 "SM 입장에서는 좀 더 안정적인 파트너가 필요했을 것이다. 카카오 소속이 되더라도 SM이라는 타이틀과 레거시를 보존하는 방향으로 갈 거라고 밝혔기에, SM에서도 '안정적인 경영이 가능하다'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게 아닐까"라고 분석했다.
정 평론가는 "SM이 지금까지 이수만이라는 1인 프로듀서 체제로 잘 왔다"라면서도 "아이돌 그룹이 늘어나고 수명도 길어지는데 늘 (이 전 총괄에게) 컨펌받아야 하니 일정이 지연되고 가끔은 비슷한 결과물이 나왔다. 이수만-유영진 등 회사에 오래 있던 이들의 입김이 강해서 어떤 '사풍'이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를 좋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계이기도 해서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된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SM 3.0'을 통해 멀티 프로듀싱 체제를 갖추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겠지만, 잘 자리 잡는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가수들의 연간) 공연 횟수 제한이 있을 만큼 SM 소속 가수들은 가진 역량에 비해 활동량이 적고, 외부와의 교류도 적었다. '3.0'이 안착하면 이런 문제가 해소되지 않을까"라고 전했다.
장밋빛 전망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김 위원은 "카카오는 1위 유통사로서 음원을 유통하는 동시에, (음원 사이트인) 멜론을 보유하고 있다"라며 "유통도 유통이지만, 제가 지적하고 싶은 건 '수직계열화'가 더 공고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카카오가 스타쉽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해 다수 기획사의 음원을 유통하면서, 유통된 음원의 인기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는 음원 플랫폼까지 보유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SM이 줄기차게 밀어 온 '광야'(KWANGYA)라는 세계관 선두에 다름 아닌 이 전 총괄이 있었는데, 경영권 분쟁 때문에 SM과 이 전 총괄이 '오늘의 적'이 된 상황에서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연구원은 "이 전 총괄과의 분쟁이 가시화된 후, 기존의 (광야) 세계관이 손상된 건 사실이다. 이전처럼 세계관을 사용하기에는 제한이 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한다는 카카오의 계획에, 이 이사는 "카카오가 SM의 색을 유지한다고 공표했지만 (실제로 그럴지는) 지켜봐야 할 문제"라고 판단을 유보했다. 이어 "오히려 독점적인 위치에서 SM의 슈퍼 IP만 활용해 더 상업적으로 나아갈 가능성도 있다. 카카오가 경영에 참여하게 되면 투자한 만큼의 성과(아웃풋)가 더 빨리 나오길 원할 수도 있다"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