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자 학교 폭력 인정으로 얼룩진 '더 글로리' 영광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연출자 안길호 감독. 넷플릭스 제공
학교 폭력 피해자의 복수를 그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연출자 안길호 감독이 학폭 사실을 인정하며 '더 글로리'의 영광이 얼룩지게 됐다.
 
지난 10일 공개된 '더 글로리' 파트 2는 공개 하루 만에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 전 세계 톱(TOP) 3위(플랙스 패트롤 집계 기준)에 올랐다.
 
한국을 비롯해 일본, 홍콩, 대만, 태국, 필리핀, 베트남,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볼리비아, 칠레, 멕시코, 페루,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 26개 국가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전 세계적인 화제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더 글로리'의 영광은 정작 연출자의 학교 폭력 사실 인정으로 인해 퇴색됐다. 안길호 감독은 처음 학폭을 부인했던 것과 달리 지난 12일 법률대리를 맡은 법무법인 지평을 통해 입장을 내고 사실을 인정했다.
 
입장문에 따르면 안길호 감독은 1996년 필리핀 유학 당시 교제를 시작한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본인으로 인해 학교에서 놀림거리가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순간적으로 감정이 격해져 타인에게 지우지 못할 상처를 줬다는 것이다.
 
앞서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더 글로리 드라마 PD 학폭 가해자'라는 제목으로 안길호 감독이 학폭 가해자였다는 글이 올라왔다.
 
A씨는 1996년 필리핀 유학 시절에 있었던 일이라며 당시 로컬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안 감독이 여자 동급생을 놀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다른 열댓 명 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자신을 포함한 친구를 구타했다고 주장했다.
 
안 감독은 당시 다른 사람들에게 칼을 가져오라는 둥 협박을 하기도 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또한 이후로도 안 감독의 지시로 학교 선배들에게 맞는 일도 빈번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 2 메인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이와 관련해 안 감독은 "이 일을 통해 상처받으신 분들께 마음속 깊이 용서를 구한다"며 "기회가 주어진다면 직접 뵙거나 유선을 통해서라도 사죄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이어 "좋지 않은 일로 물의를 일으킨 점 송구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 감독의 학폭 인정으로 인해 전 세계적인 인기는 물론 공개 이후 영향력이 현실 세계에까지 이어졌다. '더 글로리' 속에 등장하는 실제 학폭 사건이 재조명되는 등 학폭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다시 높아진 것은 태국에서는 학폭 가해자였던 스타들의 사과가 이어졌다.
 
이처럼 단순히 오락적인 측면에서 그치지 않고 학폭에 제대로 대처해야 한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등 사회적인 담론의 장을 만들어낸 '더 글로리'가 정작 연출자의 학폭 인정으로 인해 그 의미마저 퇴색될 위기에 처했다.
 
학폭 재조명과 사회적 담론 형성 외에도 '더 글로리' 자체가 가진 의미와 진정성 또한 컸으나 시리즈의 주역인 연출자의 학폭 사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무색하게 만들게 됐다.
 
극본을 쓴 김은숙 작가는 넷플릭스와의 인터뷰에서 "이 작품을 준비하며 학교 폭력과 관련해서 피해자분들의 글들을 많이 읽게 됐는데, 그들이 바라는 건 현실적인 보상이 아닌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였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다는 걸 어떻게 표현할까, 왜 현실적인 보상이 아닌 사과를 받고 싶을까 고민하다가 폭력의 순간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과 명예, 영광을 되찾고 싶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게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목을 '더 글로리'라고 지었고 이것은 이 세상에 있는 동은, 여정, 현남에게 드리는 나의 응원"이라며 '더 글로리'가 가진 의미를 전한 바 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 파트 2 스틸컷. 넷플릭스 제공
이번 사태로 학폭 피해자는 물론 극과 현실 속 학폭 피해자를 응원하고 가해자에 대한 통쾌한 응징을 바랐던 시청자들 역시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안 감독의 학폭을 주장한 A씨는 "이런 일을 저지른 사람이 어떻게 뻔뻔하게 학교 폭력물을 다룬 드라마 PD가 될 수 있는지"라며 "가해자들은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이 진짜인지. 너무 어이가 없어 이 글을 올린다"고 말했다.
 
인터넷이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는 학폭 가해자가 학폭을 다룬 드라마를 연출한 데 대한 충격부터 다시는 '더 글로리'를 보지 못하겠다는 반응은 물론 "이 세상 모든 문동은(극 중 학폭 피해자)에 대한 조롱"이라는 일침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연출자의 학폭 사실로 인해 시청자의 몰입이 떨어질 우려까지 제기된다. 그러나 감독의 영향력이 큰 영화와 달리 작가의 영향력이 더 큰 드라마이기에 영화만큼의 여파는 없을 거라는 의견이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CBS노컷뉴스에 "연출자가 학폭 가해자이면서 학폭 문제를 고발하는 드라마를 만들었다고 하면 시청자가 드라마 볼 때 몰입도 깨질 수 있고, 드라마에 대한 불신이 생길 수 있다"면서도 "다만 연출자의 학폭의 내용에 따라서 사람이 느끼는 부정적인 영향이 달라질 수 있고, 드라마는 작가 역량이 굉장히 크다 보니 부정적인 여파는 제한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넷플릭스는 13일 CBS노컷뉴스에 "크레딧에서 안길호 감독의 이름을 삭제한다거나 '더 글로리'를 내리는 등의 내용은 논의된 바가 없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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