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쇼트트랙 남자 대표팀 박지원(27·서울시청)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새로운 쇼트트랙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개인전 2관왕을 달성하며 한국 쇼트트랙의 자존심을 세웠다.
박지원은 12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2023 KB금융 ISU 세계 쇼트트랙 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남자 1000m 결승에서 1분27초741를 찍었다. 1분27초974의 스테인 데스멋(벨기에)를 제치고 1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전날 남자 1500m까지 2관왕을 일궈냈다. 박지원은 남자 5000m 계주에도 출전해 대표팀에 동메달을 보탰다.
특히 박지원은 7년 만의 국내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쇼트트랙의 위상을 지켰다. 당초 금메달이 기대됐던 쇼트트랙 여왕 최민정(25·성남시청)은 발목 부상 여파와 네덜란드 등의 견제 등으로 주종목인 1500m와 1000m에서 역주를 펼쳤지만 우승은 이루지 못했다. 여자 3000m 계주까지 최민정은 은메달만 3개를 따냈으나 여자 대표팀에서 금빛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박지원이 소중한 금메달 2개를 수확해낸 것이다.
박지원 개인으로도 첫 세계선수권 개인전 출전에서 엄청난 성과를 냈다. 박지원은 2016년 역시 서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 나섰지만 당시는 계주 멤버로만 뛰었다.
올 시즌 박지원은 ISU 월드컵 시리즈를 휩쓸면서 남자 최강으로 군림했다. 월드컵 시리즈에서 금메달만 14개를 따낸 박지원은 세계 랭킹 1위에 올랐고, 시즌을 마무리하는 세계선수권에서도 2관왕을 이루며 안방에서 새로운 쇼트트랙 황제의 대관식을 열었다.
한국 남자 대표팀은 지난해 베이징동계올림픽 에이스로 활약한 황대헌(24·강원도청)이 올 시즌 국가대표로 선발되지 못한 공백이 우려됐다. 그러나 박지원이 엄청난 활약을 펼치면서 걱정을 불식시켰다.
1000m 우승 뒤 박지원은 믹스트 존(공동취재구역) 인터뷰에서 "어제 1500m 우승한 뒤 속으로 오늘도 금메달을 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짐을 지킬 수 있어 정말 기분이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어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따고 2관왕을 이룬 곳이 한국이라 정말 좋다"면서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 지금, 이곳이 한국이라서 정말 좋다"며 벅찬 소감을 밝혔다.
특히 첫 금메달이 나온 1500m보다 1000m 우승에 더 의미를 뒀다. 박지원은 "월드컵 금메달은 있지만 세계선수권에서는 어제 1500m에서 개인전 첫 금메달을 땄다"면서 "오늘 1000m는 1500m 금메달이 운이 아니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더 신경을 썼다"고 설명했다. 이어 "1000m 금메달을 통해 내 힘을 증명할 수 있었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박지원은 야심차게 준비했던 우승 세리머니는 펼치지 못했다. 전날 1500m 우승 때 너무 정신이 없었다는 박지원은 "사실 오늘도 준비한 걸(세리머니) 못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우승 순간 침착하게 생각한 걸 하고 싶었는데 관중의 함성이 너무 커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멋쩍게 웃었다.
박지원은 준비한 세리머니에 대해 "경기장에서 표현해야 멋있게 보일 텐데 약간 귀엽게 준비를 했다"고 귀띔했다. 이어 "계주에서 더 큰 함성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세리머니를 펼칠 수 있도록 가장 먼저 들어오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박지원은 끝내 준비한 세리머니를 선보이지 못했다. 동료들과 남자 5000m 계주에 나섰지만 아쉽게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럼에도 박지원은 의연했다. 계주 뒤 박지원은 세리머니에 대한 아쉬움을 묻자 "앞으로 열심히 하다 보면 1등 할 수 있는 날은 많이 있으니까 전혀 (아쉽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저나 동료들 모두 최선을 다했기에 결과에 조금 아쉬움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고 에이스다운 소감을 밝혔다.
최고의 시즌을 보냈지만 더 발전된 다음 시즌을 생각한다. 박지원은 "개인전에선 만족스러웠다"면서도 "계주에서 아무래도 아쉬움이 남지만 그 부분은 다음 시즌에 어떻게 보완할지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는 아직 쉴 때가 아니고 계속 가야 한다"면서 "내년에는 한국, 외국 선수들의 기량이 더 올라올 수 있는데 함께 경쟁하려면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준비와 보완을 해야 이길 수 있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2018년 평창,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에 아쉽게 나서지 못했던 박지원. 그러나 대기만성을 이루며 위기의 한국 쇼트트랙에 든든한 에이스로 나타났다. 박지원은 "하나하나의 작은 목표들을 이루다 보면 언젠가 더 큰 목표를 이룰 날이 올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