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맨은 아내도 '슈퍼우먼'인가 보다. 프로당구(PBA) 조재호(43·NH농협카드)가 아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마침내 왕중왕에 등극했다.
조재호는 12일 경기도 고양시 JTBC 스튜디오 일산에서 마무리된 'SK렌터카 PBA-LPBA 월드챔피언십 2023' 남자부 결승에서 다비드 마르티네스(크라운해태)를 눌렀다. 11일 오후 10시 시작해 12일 오전 2시께까지 이어진 대접전 끝에 5 대 4(12-15 15-12 7-15 15-8 9-15 15-12 15-7 11-15 15-8) 신승을 거뒀다.
국내 선수로는 첫 왕중왕전 챔피언에 올랐다. 우승 상금 2억 원을 거머쥔 조재호는 역시 국내 선수로는 처음으로 시즌 상금 랭킹 1위(4억2250만 원)를 달성했다. 지금까지 왕중왕전과 시즌 상금 랭킹 1위는 외국 선수의 몫이었다.
조재호는 올 시즌 PBA를 자신의 시즌으로 만들었다. 지난해 6월 시즌 개막전인 블루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첫 PBA 정상에 오른 조재호는 지난달 정규 시즌 마지막 대회인 크라운해태 챔피언십을 제패하더니 시즌 왕중왕전까지 석권했다. 올 시즌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 셈이었다.
1박 2일 동안 이어진 경기를 누구보다 가슴을 졸이며 지켜본 사람이 있다. 바로 조재호의 아내 유수경 씨(41)다. 유 씨는 조재호가 마르티네스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는 동안 관중석에서 남편을 열렬히 응원했다. 조재호의 공격이 성공하면 박수를 보냈고, 실패하면 안타까운 눈빛으로 탄식했다. 결국 남편이 자랑스럽게 우승을 일궈내자 마음껏 환호했다.
경기 후 조재호는 중계 방송 인터뷰에서 벅찬 소감을 밝히면서 "이석용 NH농협은행장님, 윤상운 NH농협카드 대표님, 장한섭 스포츠단 단장님과 당구단 동료들에게 너무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타이틀 스폰서인 SK렌터카와 PBA 공식 마케팅 대행사인 와우매니지먼트그룹 대표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프로 선수로서 어쩌면 의무일 수도 있는 수순.
이후 조재호는 진짜 고마웠던 이를 찾았다. 조재호는 아내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갑자기 유 씨를 경기장으로 불렀다. 이어 "마누라, 너의 민낯을 공개해주마. 사람들이 궁금해 하더라"라며 유 씨가 마스크를 벗으라고 강권했다.
관중석에서 내려와 눈물을 훔치던 유 씨는 주저하다 마스크를 벗고 남편 곁으로 다가왔다. 중계 방송 인터뷰용 마이크를 건네받은 유 씨는 "남편을 응원해주셔서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인사하면서 "앞으로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살겠다"고 수줍지만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이에 조재호는 아내의 입술에 열정적인 키스를 퍼부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장내 아니운서가 "이제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였다.
이후 기자 회견에서 조재호는 아내를 중계 인터뷰에 부른 데 대해 "화면에 항상 마스크를 쓰고 응원하는 아내를 보고 '이쁘냐, 어쩌냐' 댓글이 달리더라"면서 "그래서 마스크를 벗으라 했는데 아내가 못 벗는다고 해서 우승한 김에 즉흥적으로 나온 말"이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조재호는 "아내 인물이 괜찮지 않느냐"고 취재진에게 반문하며 팔불출(?)의 면모를 보였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조재호는 뜻깊은 선행을 했다. 지난달 27일 한국구세군을 통해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 돕기에 성금 1000만 원을 쾌척한 것. 당시 조재호는 "튀르키예 지진 소식 들었을 때 크라운해태 챔피언십 결과는 물론 금액과 관계 없이 기부하겠다는 생각을 했다"면서 "때마침 우승을 해서 많지 않은 금액이지만 전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이를 적극 권유한 사람이 아내 유 씨였다. 조재호는 "기부를 혼자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오히려 본인이 더욱 열정적으로 나섰다"고 귀띔했다. 조재호는 PBA 진출 이전인 2020년 자신의 애장 큐 자선 경매에서 낙찰된 1150만 원에, 후원사인 유니버설코리아가 850만 원을 더해 2000만 원을 초록우산재단에 기부한 바 있다.
조재호는 "아내가 처음에는 기부에 OK만 했는데 이제는 더 기부할 곳을 찾아보자고 한다"면서 "그래서 기부하는 데 마음이 편하다"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나도 그렇지만 당구에 대한 이미지 좋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부하는 면도 있다"면서 "PBA가 잘 됐으면 하는 마음"이라며 간판 선수로서 책임감도 드러냈다.
대한당구연맹(KBF) 시절 국내 최강자에서 마침내 PBA까지 정복한 조재호. 슈퍼맨의 아내다운 든든한 내조가 고공 비행의 비결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