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당이 발행하는 해방일보 1946년 5월 4일자 사설은 ''5.4운동을 기념하며 민주와 자유를 위한 투쟁을 철저히 실행하자''는 제목으로 "국민당의 통치지역에서는 학술과 독서 출판과 발행의 자유가 잔혹하게 짓밟히고 있다. 교육과 학술의 존엄은 땅에 떨어졌다"고 주장하며 언론 출판 집회 결사 사상의 자유를 촉구했다.
공산당의 이같은 주장에 학생과 지식인들이 대거 국민당 정권에 등을 돌리면서 부패한 국민당 정권은 압도적인 무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무력하게 무너졌다.
그러나 신중국 설립 이후 권력을 장악한 중국공산당은 언론과 출판사는 물론 서점까지 모두 국유화하고 언론사와 출판사를 국영화했다. 문인들의 동호인 잡지나 지방의 민영언론조차도 모두 불법화됐다.
1980년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서도 민간 출판과 민간 언론사가 출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됐다. 그러나 덩샤오핑은 1981년 국무원이 발표한 <불법간행물의 처리에 대한 지시>에서 일체의 민간출판물과 민간조직을 불법으로 선포하고 이를 추진하는 핵심 관계자들을 제거했다.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는 당시 결사법과 출판법을 제정해 집회와 출판의 자유를 허용하려다 보수파에 밀려 권력에서 쫓겨났다. 1989년 4월 15일 후야오방이 서거한 직후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인 학생들의 요구 사항은 언론 출판 결사 집회 시위의 권리 보장과 부패부패 척결이었다.
많은 지식인들과 시민들이 학생들의 요구에 동참했다. 그러나 중국공산당의 기관지인 인민일보는 1989년 4월 26일자 사설 ''동란에 반대하는 기치를 선명하게 올리자''에서 시민 학생들의 애국 민주운동을 체제를 전복시키려는 ''동란''으로 규정했고 인민해방군까지 동원해 잔인하게 유혈진압을 강행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 진상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20년동안 감춰놓았던 진실의 일부가 드러나기 시작하고 있다.
올초에는 당시 유혈진압에 참여했던 퇴역군인이 양심선언을 하며 진상을 밝힐 것을 촉구하고 나섰고 최근에는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회고록과 텐안먼 사태 발생 당시 신화사 국내뉴스부 주임으로 재직했던 장완수(張萬舒)씨가 취재기록을 담은 서적을 홍콩에서 출간했다.
당국의 철저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중국 내에서도 톈안먼 사태의 진상을 규명하고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공산당 내 인사들 가운데도 이같은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홍콩 명보는 최근 정치국 상무위원 가운데 한 사람이 공개석상에서 영향력있는 지식인 3명을 거론하며 이들을 강력히 비판하고 ''교화''하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름이 거명된 사람은 유명한 극작가인 샤예신(沙葉新)과 사회과학원 쉬여우위(徐友漁)연구원, 문화부 산하 중국문화원구원 류쥔닝(劉軍寧) 연구원 등 세명으로 이들은 중국 문예계와 학계에서도 손꼽히는 인물들이다.
지난 10일 베이징에서는 톈안먼 사태 20주년을 기념하는 비공개 학술토론회가 열렸다고 한다. "2009 베이징 6.4민주운동연구토론회"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론회에는 베이징대 교수와 사회과학원 연구원, 문인 등 수십명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이 톈안먼 사태와 관련한 일체의 기념활동을 금지한 상황에서 매우 이례적인 모임이었다.
이날 발표된 한 논문은 ''톈안먼 사태를 중국 공산당의 통치의 합법성에 의문을 던진 중국사의 분수령''이라고 주장하고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공산당은 통치의 합법성, 정통성보다는 효율성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민의 견제와 감시가 약화되면서 부패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모임에서 "미완성의 역사 임무"라는 주제발표를 한 베이징대 쳰리췬(錢理群)교수는 자신이 모임에 참석한 이유를 교육자로서의 양심과 학자로서의 양심 때문이라고 말했다.
20년 전 수많은 학생이 민주화를 요구하며 희생될 당시 스승으로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책임감과 적어도 정치적으로 복권은 되지 않더라도 학자로서 역사는 바로 써야 한다는 양심때문이라는 것이다.
저명한 문화평론가이기도 한 베이징 영화학원(電影學院) 추이웨이핑(崔衛平)교수는 "20년간의 침묵과 은폐가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 민족정신과 도덕에 어떤 악영향이 있었는가, 자문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톈안먼 사태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 당국은 언론에 대한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인터넷에서는 톈안먼 사태가 검색금지단어가 돼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같은 통제를 피해 톈안먼 사태를 말한다.
인터넷 시대에 당국의 언론통제 사상통제는 사실상 불가능해지고 있다. 당국이 망각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집단적 침묵을 지켰을 뿐이고 이제는 말하기 시작한다.
일부 포털사이트에는 광주민주화 운동의 발생에서부터 학살, 그리고 ''폭도''로 매도됐던 역사가 민주화운동으로 재정립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한 글들도 눈에 띈다.
사람들이 망각하지 않는 한 톈안먼 사태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은 시간문제일 뿐이다. 톈안먼 사태 기념일을 앞두고 중국의 지식인들은 또다시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자유를 말하고 부패의 척결을 요구한다.
지금 중국공산당은 어찌보면 1940년대말 자신들이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던 국민당과 같은 전철을 걷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