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전은 예상대로 변수가 많았다. 일본의 전력이 한수위라는 평가가 우세했고 한국은 호주전 패배의 충격을 이겨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도쿄돔 무대를 밟았지만 초반 우세는 한국의 몫이었다.
베테랑 김광현은 2회까지 아웃카운트 6개 중 5개를 삼진으로 잡았다. 일본의 간판 스타 오타니 쇼헤이를 상대로 강한 슬라이더로 던져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한 장면에 도쿄돔은 침묵에 잠겼다.
반대로 뚜껑을 열어보니 다르빗슈 유는 해볼만한 상대였다.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였다. 강백호의 2루타, 양의지의 투런포가 다르빗슈의 자존심을 꺾었고 일본답지 않은 내야 실책으로 잡은 기회를 이정후가 적시타로 살렸다.
이강철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 대표팀은 10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제5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일본과 2차전에서 이처럼 초반 흐름 싸움을 주도했다.
하지만 일본 야구와 비교해 넘기 힘든 큰 차이가 존재했다. 바로 마운드의 전반적인 실력 그리고 선수층의 깊이였다.
한국은 3회초 양의지의 투런포와 이정후의 적시타로 먼저 3점을 뽑았다. 2회까지 강한 투구로 일본 타선을 압도한 김광현은 3회말 들어 갑자기 흔들렸다. 두 타자에게 연속 볼넷을 내줬다. 이후 라스 늣바에 적시타를, 곤도 겐스케에게 중월 2루타를 맞았다.
원태인이 등판했다. 2-3으로 쫓긴 1사 만루에서 요시다 마사타카에게 역전 2타점 적시타를 맞았다. 그래도 추가 실점을 막았다. 그나마 잘 버텼다.
일본은 4회초 왼손투수 이마나가 쇼타를 투입했다. 시속 150km가 넘는 빠른 공에 빈틈없는 제구력을 자랑했다. 한국 타선은 고전했다.
원태인이 5회말 곤도 겐스케에게 솔로홈런을 맞았다. 이후 본격적인 불펜 가동이 시작됐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곽빈이 등판해 1실점 했다. 6회말은 한국에게 참혹한 시간이었다. 정철원, 김윤식, 김원중, 정우영이 이어 던진 6회말에 안타 4개, 사사구 3개를 내주고 5실점 했다.
김윤식은 스트라이크 구사율이 떨어졌다. 김원중이 잘 던진 공은 오타니 쇼헤이가 어렵지 않게 받아쳤다. 공의 위력을 떠나 제구력이 크게 떨어졌다. 일본 마운드와는 너무 큰 차이였다.
다르빗슈는 3이닝 3피안타 3실점(2자책)을 기록했다. 한국 타선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에이스를 상대로 할만큼 했다. 박건우는 6회초 이마나가를 상대로 솔로홈런을 쳤다. 이때 스코어는 4-6으로 좁혀졌다. 하지만 마운드가 무너지면서 희망도 사라졌다.
7회말에는 한국 야구의 미래로 여겨지는 구창모와 이의리마저 흔들렸다. 이의리 역시 공을 스트라이크존 안으로 잘 밀어넣지 못했다. 폭투와 밀어내기 볼넷 2개로 3점을 더 내줬다.
스코어는 4-13.
한국은 14년 만의 한일전에서 14년 만의 콜드게임 패배가 재현되는 것을 걱정해야 했다.
기세가 꺾인 한국은 구위와 제구력의 조화가 돋보인 일본 마운드를 상대로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했다. 약속의 8회도 없었다.
호주전 7-8 패배로 사실상 벼랑 끝에 몰렸던 한국은 14년 만에 열린 WBC 한일전에서 4-11로 크게 졌다. B조 전적 2패로 5개 나라 중 1,2위 팀에게 주어지는 8강 진출의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
한국은 김광현, 원태인, 곽빈, 정철원, 김윤식, 김원중, 정우영, 구창모, 이의리, 박세웅 등 투수 10명을 마운드에 올렸다. 실점 혹은 승계주자 실점이 없었던 투수는 박세웅이 유일했다. 참혹한 결과였다.
한국은 무려 8개의 볼넷을 내줬다. KBO 리그를 대표하는 투수들이 만들어낸 결과다. 볼넷 숫자만으로 제구력을 평가하기는 어려운 경기였다. 일본 타자가 잘 친 공도 많았지만 치기 좋게 들어온 공도 적잖았다. 반면, 일본 마운드는 단 1개의 볼넷도 내주지 않았다.
한국은 2009년 WBC 아시아라운드 일본과 첫 경기에서 일본에 2-14로 7회 콜드게임 패배를 당했다. 선발 김광현이 초반 8실점하며 무너진 차이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당시 일본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일전을 지배한 김광현을 극복하기 위해 현미경 분석으로 철저히 대비한 결과였다.
14년 만에 다시 열린 WBC 한일전 패배가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 마운드 전체의 패배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너무 강했다. 안타깝지만, 수준이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