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제강제징용 배상 문제에 대해 이른바 '제3자 배상 해법'을 공식화하자 부산지역 시민·노동단체가 '피해자를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결정'이라며 거세게 비판하는 등 각계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159개 지역 시민단체로 구성된 '강제징용피해자 양금덕 할머니 부산시민 평화훈장 추진위원회'는 7일 오전 부산 동구 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추진위는 일본의 사죄와 배상 없는 강제징용 배상은 의미가 없다며 정부가 제시한 '해법'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진위는 "정부가 3·1절 기념사 때부터 계속 피해자를 무시하는 발언을 쏟아내더니, 결국 대법원 판결까지 전면 부인하는 강제징용 해법을 내놓았다"며 "일본의 사죄와 배상없이 국내 기업의 후원금을 모아 위로금을 주는 방식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의 이런 방침은 사상 최악의 굴욕적인 결정이자 대한민국의 헌법질서를 유린한 행위"라며 "한일관계 강화를 위해 과거사를 팔며 강제징용 문제를 희생양 삼는 정부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추진위는 이날 오전 7시 부산진구 서면교차로 인근 도로에서 정부를 규탄하는 내용을 담은 선전전을 벌이기도 했다. 또 오후 7시에도 정부의 방침을 규탄하며 서면 일대를 행진할 예정이다.
민주노총 부산본부 등 부산지역 노동계 역시 이날 오전 10시 같은 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에 날을 세웠다. 노동계는 정부의 이번 결정을 "한일 관계를 위해 제3자 변제'라는 이상한 논리를 내세워 민족과 국민의 아픔을 파는 행위"라고 규정했다.
김재남 민주노총 부산본부장은 "일본과 전범기업은 단 1원도 낼 수 없다는데 한국기업이 기금을 모아 배상한다는 건 일본에 면죄부를 주는 굴욕적인 해법"이라며 "정부가 일본의 파트너가 되려고 대법원 판결을 짓밟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종철 전국철도노조 부산지방본부장도 "양금덕 할머니께서도 다른 사람이 동냥하듯 주는 그런 돈은 받지 않겠다고 분명히 말했다"면서 "당사자가 거부하는데 법률적 이해관계가 없는 윤 대통령이 수치스러운 외교를 이어간다면 결국 거센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에서도 정부의 결정을 비판하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도 이날 오후 일본강제징용노동자상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 비판 대열에 합류할 예정이다. 진보당 부산시당은 전날부터 일본영사관 주변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2018년 대법원에서 확정한 배상 판결에 따라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기관인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재단'을 통해 판결금을 지급하게 한다는 '제3자 변제'안을 전날인 6일 공식화했다.
하지만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안과 관련해 정작 일본 정부의 직접 사죄와 일본 기업의 배상이 빠지자 일본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 아니냐는 비판 여론이 각계에서 일고 있다.
일제강제징용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 역시 정부의 결정이 나온 직후 "대통령이 일본을 위해서 일하는 건지, 국민을 위해서 일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면서 한국 기업의 기부금 배상에 대해서도 "굶어 죽어도 그런 돈은 받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