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같은 거 하나 개발하려고 그러면 정말 한 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주 100시간, 한 20시간 일해야 된다는 거야. 그리고 한 2주 바짝 하고 그다음에 노는 거지"
윤석열 대통령이 제20대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7월 19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시간 노동 국가를 오명을 쓴 대한민국 노동 현실을 철저히 도외시한 유력 대선 후보의 '주120시간 노동' 발언은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일으켰다.
윤석열 후보 지지층에서조차 '실언'으로 치부되면서 이른바 '부정식품 발언' 등과 맞물려 파문이 계속 확산됐다.
그러자 윤 후보는 주120시간 노동 발언 보름 만인 같은 해 8월 3일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은데 앞으로 유의할 생각"이라며 파문 수습에 나섰다.
대선 승리 이후에는 윤석열 대통령과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 간 입장이 뒤바뀐 듯한 희한한 상황이 연출됐다.
지난해 6월 23일 이정식 장관이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기존 '주'에서 '월'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시간 제도 등 개편 방향을 밝히자 윤 대통령은 바로 다음 날 이를 일축했다.
대통령실 출근길에 취재진에서 관련 질문이 나오자 "보고받지 않은 내용이 언론에 나왔다"며 중대 현안 관련 노동부 장관 발표를 "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깎아내린 것이다.
그리고 지난 6일 드디어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이 정부 공식 입장으로 확정·발표됐다.
이미 8개월여 전에 이정식 장관이 밝힌 방향대로 연장근로 관리단위를 월, 분기, 반기, 연으로 확대해 52시간으로 못 박혀 있는 주당 근로시간을 최대 주69시간으로 대폭 늘리는 내용이다.
특히, 주당 근로시간이 1일 8시간, 1주 40시간 한도인 '법정근로시간'에 연장근로 최장 24시간을 포함해 64시간 이하면 근로일과 다음 근로일 간 11시간 연속휴식 부여 의무를 면제했다.
근로기준법상 4시간 근로시간마다 30분 휴게시간 부여 의무만 지킨다면 1주 연장근로 한도 24시간을 몰아 쓸 경우 이틀 연속 밤샘 근무 후 정시 출근이라는 초고강도 노동도 가능하게 됐다.
"주120시간 바짝 일하고 그다음에 노는 거"라는 후보 시절 윤 대통령 발언과 일맥상통한다.
당시는 "앞으로 유의할 생각"이라고 몸을 낮췄고 이후 주무 장관과 엇박자 행보도 노출했지만, 이번 개편방안은 윤 대통령의 주120시간 발언이 결코 헛말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경총을 비롯한 사용자 단체들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아 온 낡은 법 제도를 개선하는 노동개혁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며 이번 개편방안을 크게 환영하고 나섰다.
심지어 중소기업중앙회는 "업무량 폭증에 대비할 수 있도록 미국처럼 연장근로 한도를 규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쏟아냈다.
노동계가 '반노동, 친기업'이라 비난하는 윤석열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이 '주69시간'이나 '이틀 연속 밤샘 후 정시 출근' 수준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