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018년 우리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확정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을 통해 판결금과 지연이자를 지급하겠다는 '제3자 변제'안을 공식화하고 6일 이를 발표했다.
하지만 가해자인 일본 기업의 참여가 강제되지 않는 등 대법원 판결 취지를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으며 피해자들도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제정 이후 설립된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강제징용 피해자·유족 지원 및 피해구제의 일환으로 2018년 대법원의 3건의 확정판결(2013다61381(구 일본제철), 2013다67587(미쓰비시중공업), 2015다45420(미쓰비시중공업) 원고분들께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 장관은 "재단의 재원과 관련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며 "재단은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기억하여 미래 세대에 발전적으로 계승해 나가기 위해, 피해자 추모 및 교육·조사·연구 사업 등을 더욱 내실화하고 확대해 나가기 위한 방안을 적극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관련해서 취재진이 '반쪽짜리 합의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질문하자 박 장관은 "이번 해법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또 국위에 걸맞은 우리의 주도적인 그리고 대승적인 결단이다"며 "문제 해결의 끝이 아닌 진정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엄중한 국제 정세와 글로벌 복합 위기 속에서 외교, 경제, 안보 모든 분야에서 한국과 일본 간의 협력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장기간 경색된 이런 한일, 경색된 관계를 방치하지 않고 국익 차원에서 국민을 위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반쪽짜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물컵에 비유하면 물컵에 물이 절반 이상은 찼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 이어질 일본의 성의 있는 호응에 따라서 그 물컵은 더 채워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박 장관은 "정부는 한일 양국이 1998년 10월에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을 발전적으로 계승하여,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 지향적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를 바란다"고도 말했다.
또 "정부는 최근 엄중한 한반도 및 지역 국제정세 속에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가장 가까운 이웃인 일본과 함께 한일 양국의 공동이익과 지역 및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다만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물론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의 '전후 50년 담화',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전후 60년 담화', 2015년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에도 식민지배 자체가 아니라 강제동원이라는 개별적 만행에 대한 직접적 언급과 사죄, 그리고 반성은 담겨 있지 않다.
박 장관은 이에 대해 "경색된 한일관계의 개선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우리 정부의 그런 대승적인 결단에 대해서 일본 측이 일본 정부의 포괄적인 사죄 그리고 일본 기업의 자발적인 기여로 호응해 오기를 기대한다"며 "과거사에 대해서 일본으로부터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이 기존에 공식적으로 표명한 반성과 사죄의 담화를 일관되고, 또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일본 집권 자유민주당 의원들이 1993년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위안부 관계 조사결과 발표에 관한 담화' 등을 포함, 일본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밝혔던 입장을 부인하는 '망언' 등을 할지 여부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특히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집권당 의원들이 그대로 각료가 되는 내각책임제 국가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날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민당 사토 마사히사 의원의 한일 관계에 대한 질문에 "역사 인식에 관해서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해 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라며 "이런 정부의 입장을 앞으로도 적절하게 표현하고 발신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도 한국 정부의 '해법' 발표에 맞춰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곧 발표할 예정이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우리 산업통상자원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이 협의를 거쳐 별도로 발표를 할 것이고, 수출규제 조치가 취해지기 전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노력이 시작될 것"이라며 "해법과 관련해서 당시 취한 조치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발표를 전후해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소송대리인단, 지원단체들은 가해 기업이 직접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의 내용을 거스른다고 주장하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임지영 활동가는 6일 외교부 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일본군 성노예제('위안부') 피해자와 함께 일본 정부 사죄를 요구하며 수요시위를 했었는데, 한일 '위안부' 합의 직후 국민적 분노가 일었던 것이 기억난다"며 "일본군 성노예제 피해자 할머니 얼굴과 양금덕 할머니 얼굴이 겹쳐 보인다. 법적 배상은 배제된 채 한국 기업에서 돈을 걷어 피해자에게 주고, 한국 정부가 오히려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줬다"고 비판했다.
이번 '해법' 발표를 앞두고 문제를 조속히 마무리하려는 대통령실의 입김이 작용했는지를 묻는 질문과 관련해 박 장관은 "국익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외교부와 대통령실은 원팀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