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이시각 봉하마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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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신: 2009-05-27 00시 21분] "아방궁이라더니…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닷새째를 막 넘긴 27일 자정, 밤이 늦었지만 조문객들은 점점 불어나기만 하고 있음.

밤 10시쯤부터 조문객이 몰리면서 휴대전화 통화와 문자메시지에 조금씩 차질이 생길 정도. 분향소부터 줄이 2킬로미터 가량 늘어섬.

25일 하루동안 33만명이 조문했고, 26일에는 조문객 규모가 더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누적 조문객 수는 70만명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

자정께 겨우 분향소를 10미터 앞두게 된 한 조문객은 "봉하마을 입구에서부터 30여분 걸어서 분향 줄을 선지 2시간 만에 분향소가 보이는 곳까지 왔다"며, 그러나 "오히려 분향소에 가까워지면서 1분, 1분이 가는게 너무 아깝고 2시간이 아니라 20시간도 기다릴 수 있다"고 말함.



대부분의 조문객들은 생업을 마치고 집에서 출발해 봉하마을에 느즈막히 도착한 사람들. 가족단위 조문객이 많이 보임. 늦은 밤이면 한두명씩 보이던 취객도 전혀 눈에 띄지 않음. 숙연한 분위기가 계속.

조문객들은 기다림에 전혀 짜증이나 지친 기색 없이 저마다 촛불을 들고 고인을 추억하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음.

분향과 헌화를 마친 조문객들은 방명록이나 벽에 부착된 남기고 싶은 말에 각자 하고 싶은 말들을 남기거나 추모영상을 감상함.

일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기거하던 사저와 봉화산 부엉이 바위 등을 둘러보며 고인에 대한 기억을 되새김. 한 조문객은 "언론에서는 아방궁이라더니 동네와 사저가 이렇게 초라할 줄 몰랐다"라며 안타까운 말을 흘리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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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신: 2009-05-26 21시 44분] "화요일에 왔더라면" 강금원 회장 ''통한의 눈물''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기이자 오랜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26일 마침내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눈물을 뿌렸다.

노 전 대통령의 영전 앞에선 강 회장은 분향을 하고 절을 한 뒤 잠시동안 영전을 바라보며 슬픔을 삼켰다.

조문때까지 간신히 평정을 유지했던 강 회장은 조문을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말문을 트자 눈물을 참지 못했다.

"화요일날 내가 나오기를 그렇게 (기대)했는데.... 그 뒤로 아무도 안 만났다고...." 그 말과 함께 강 회장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만약 자신이 보석신청 첫 재판인 지난 19일 보석결정이 내려져 석방됐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극단적인 선택을 만류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회한의 눈물이었다.

이어 ''''대통령님이 무슨 잘못이 있느냐. 일국의 대통령을 하신 분을 그렇게 치사한 방법으로 대하냐''''며 울분을 터뜨렸다.

강금원 회장은 뇌종양 진단을 근거로 병보석 신청을 해 언론이 구속집행정지 신청을 한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 중 석방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예측했다.



당초 보석결정은 26일 오전쯤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됐지만 재판부가 요청한 강남 성모 병원과 신촌 세브란스 병원 진단서가 제때에 도착하지 않아 오후 2시 반이 되서야 보석결정이 내려졌다.

교도소를 나온 강 회장은 바로 차편으로 봉하마을로 향했고 밤 8시 40분쯤 봉하마을 노 전 대통령의 빈소에 도착했다.

대전에서 봉하마을로 오는 동안 강회장은 끊임없이 흐느꼈다고 측근이 전했다.

강 회장은 도착하자마자 조문을 마치고 안희정 최고위원 등과 함께 노 전 대통령의 사저로 이동해 권양숙 여사와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강 회장은 권 여사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상주로서 빈소를 지킬 계획이다.

[13신: 2009-05-26 19시 03분] 조문행렬에 ''국화 살리기'' 안간힘…"헌화용 국화는 재활용"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경남 봉하마을의 누적 조문객 수가 50만명이 넘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몰려드는 조문객들로 헌화용 국화를 담당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이 ''국화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봉하마을 분향소에 다다른 조문객들은 자원봉사자들이 건네주는 국화꽃을 한 송이씩 받아들고 분향을 하고 있는데, 조문용 국화의 개수가 끝없이 이어지는 조문행렬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날 하루 봉하마을로 가져온 국화꽃은 1만여 송이 정도로 조문객들에게 한 송이씩 배분하고 나면 순식간에 꽃이 동나게 된다.

장례위원회 측은 꽃이 부족해지자 기존에 사용했던 국화를 재활용하고 있다. 조문용 꽃을 담당하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는 아마 ''한 송이가 100번은 재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용된 국화는 영정에 놓여진 뒤 재활용 절차를 거치게 되는데, 조금이라도 더 생생하게 하기 위해 분향소에 나오자마자 얼음물을 채운 양동이로 향하게 된다. 국화를 거꾸로 놓은 채 가지에 얼음물을 부어주면 생생함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간다고.

또 조문객들이 국화를 오래 들고 있으면 빨리 시들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은 분향소 바로 앞에 와서야 국화를 받아들 수 있다.

또 경남 김해지역의 국화가 동이 나고 상품 국화가격이 상승하는 등의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재활용을 한다고는 하지만 국화철이 아닌 5월에 급히 대량의 국화를 구하다보니 김해지역의 최상품 국화는 거의 동이나다시피했다.

김해의 한 화원에 전화해 조화용 흰 국화 값을 묻자 "흰 국화가 없다"는 짤막한 말이 돌아왔다. 또 영남 화훼공판장은 "이날 상품 대국 20송이 1단은 6천 원에서 7천 원 정도"라며, "평소보다 1천 원에서 2천 원 정도 가격이 올랐다"고 말했다.

최상품 흰 국화를 구하기는 어렵게 됐지만 그래도 봉하마을에서는 국화 걱정을 하지는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이 헌신적으로 국화를 돌보고 있어 생생함이 오래 유지되는데다, 어떻게 알았는지 이곳저곳에서 뜻있는 사람들이 매일 생생한 국화를 조달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12신: 2009-05-26 15시 59분] 한승헌 전 사법개혁 위원장 "검찰, 자기성찰하라"참여정부 당시 사법개혁추진위원장을 맡았던 한승헌 변호사가 최근 검찰의 수사가 편향된 인상을 줬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계기로 검찰이 자기성찰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한승헌 변호사는 26일 오후 박원순 변호사와 함께 봉하마을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자리에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87년 6월 항쟁 후에 거제 사건으로 구속되셨을때 제가 해운대경찰서에 가서 변호인으로 접견했고, 재임중에는 대통령 탄핵사건때 대통령측 변호사를 맡아 어려울때 괴로움을 함께 했다"고 노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지난 2005년 사법개혁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사법개혁에 매진해온 그는 최근 검찰수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근자 들어서는 검찰이 뭔가 지나치고, 조금은 의문스럽으러우며 뭔가 편향된 그런 인상을 줬는데 이 점은 퍽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검찰이) 이런 엄청난 비극을 겪으면서, 검찰도 여러가지로 자기성찰을 했으면 한다"고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나타냈다.

이날 봉하마을에는 한승헌 변호사를 비롯해 박원순, 이용훈 대법원장 등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들의 조문이 잇따랐다.

[11신: 2009-05-26 15시 59분] "''노간지''로 유명한 봉하쉼터는 지금... "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한 뒤 소탈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밀짚모자를 쓰고 음료수를 먹는 모습, 손녀와 자전거를 타고 논두렁을 건너는 모습, 봉하마을을 방문한 여대생들과 함께 찍은 사진 등...

그 중에 점퍼차림으로 구멍가게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은 노 전 대통령에게 ''노간지''라는 별명이 붙여지게 된 인상적인 사진 중에 하나다.

''노간지''는 ''폼이 난다''는 일본에서 건너온 말과 노 전 대통령의 성을 딴 언어로, 네이버 신조어 사전에 올라와 있을 만큼 누리꾼들에게 널리 퍼져 있다.

일명 ''노간지 담배'' 사진은 장소는 노 전 대통령의 사저에서 50m 정도 떨어진''봉하쉼터''로 사저에서 가장 가까운 슈퍼이다.

약 30 제곱미터 규모의 봉하쉼터에는 음료수, 과자, 잔치 국수 등을 판매하는 작은 슈퍼로 주로 마을 주민들과 봉하마을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쉬어가는 곳이다.

주인인 백승택(52)씨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가게문을 걸어 잠갔다.

생전 노 전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에서 하루종일 울기를 꼬박 하루.

지난 일요일부터는 조문객들이 남긴 그릇을 씻고, 자원봉사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면서 24시간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아직 영정사진은 ''승택아, 밥 먹었나?''하고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앞에 상영되는 영상 속에는 아직도 목소리가 쩌렁쩌렁한데... 모든것이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루종일 뙤약볕에서 그릇을 날라서인지 얼굴이 까맣게 그을린 백씨는 오랫동안 상념에 잠겨 있다가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인터넷에 담배피는 사진이 떴다고 사람들이 그래서, 한번 봤는데, 그 모습 그대롭니더, 그분은 진짜 소탈하고, 동네 사람들 만나면 먼저 손을 흔들어 주시면서 ''00야~ 잘 있나?'' 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더"

노 전 대통령은 오다가다 가게에 들러 친환경농법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께서는 ''봉하마을 만이라도 오리를 이용한 친환경농법으로 농사를 지어야 한다''고 자주 말씀하셨습니더. 당장은 손해볼 지 몰라도, 앞으로는 그게 농촌을 살리는 길이라고, 저한테도 농사일 게을리 하지 말라고 일러 주셨습니더"

노 전 대통령은 평소 점퍼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논밭에서 산책하는 것을 즐겼으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면 ''귀한 일 하십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며 먼저 일상적인 인사를 건냈다고 한다.

"가끔 들러서 손녀들 아이스크림도 사주시고...그 사진이 찍혔을 당시에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 오랜만에 들르셔서 ''요즘 뭐 좋은 담배 있나?''라고 물으셔서, 이것 저것 소개해 드렸습니더. 그중에 하나를 고르셔서 드렸는데, 한 두 모금 태우시다가 그냥 끄셨습니다."

백씨의 깊게 팬 주름에 눈물이 쉼 없이 고였다.

"그분은 그랬습니더. 길거리에 떨어진 쓰레기를 보면 주저없이 바로 줍는 소탈하시고 욕심없는 분이셨습니더. 이곳에서 손녀와 아이스크림을 드시던 그 모습 그대로...그때보다 더 행복하게 편히 잠드셨으면...더 이상 바랄게 없습니다...."

이제 노 전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에는 뽀얀 먼지가 쌓였고, 가게 밖에는 전국에서 몰린 조문객들이 노 전 대통령을 추억하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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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신: 2009-05-26 13시 40분] "도와주세요"…봉하마을 자원봉사 턱없이 부족

"내 가족의 장례처럼 손님들을 웃음으로 맞이하고 있지만, 일손이 부족해 도움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나흘째인 26일, 전국 각지에서 쉴틈없이 몰려드는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자원봉사자들은 잠깐의 쉴틈도 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예상치 못한 조문객 수에 반해 자원봉사자가 턱없이 부족하다보니 몸이 열개라도 부족한 형편이다.

이들은 분향소 입구에서부터 생수지원, 음식지원, 방명록작성 지원, 청소, 안내 등 많은 일을 자기가족의 장례마냥 해내고 있다.

26일 오전 봉하마을 입구에서 흐르는 땀을 훔칠 틈도없이 조문객들을 위해 생수 지원에 나선 노사모 회원인 김모(55)씨. 더 시원한 생수를 달라는 조문객들의 짜증날법한 요청에도 인상 한번 찌푸리지 않고 맞이하고 있다.

김 씨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난 다음 날 슬픔을 감추지 못한 채 가게 문까지 닫아버리고 거제도에서 한걸음으로 달려왔다.

조문만 하고 갈 생각이었지만 김 씨는 봉하마을을 떠나지 못했다. 이곳저곳에서 도와달라는 노사모 측의 간절한 목소리를 외면하기가 힘들었다.

사흘 동안 쉴틈없이 손이 필요한 곳마다 자진해서 일을 했다는 김 씨는 "낮이고 밤이고 몰려드는 조문객들을 보면 정말 내가 믿었던 대통령이었던 것을 다시 확신할 수 있었기에 자원봉사를 선뜻 하게 됐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내가 빠져버리면 자원봉사자들이 더 힘들어질까봐 사흘 동안 집에 가지 못하고 있다"면서 "사흘 내내 서 있었더니 발이 퉁퉁 부어 붕대로 감싸고 있을 정도"라며 시커멓게 때가 탄 붕대를 가리켰다.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김 씨는 "여러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지만, 사실상 이들이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허드렛일 같은 힘든 일을 도와주는 자원봉사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거 직후 서울에서 내려 온 이모(34)씨는 "자원봉사자들도 많이 지쳐있다"며 "자원봉사자들이 많아져서 교대로 돌아가면서 일을 하면 좋을텐데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이 씨는 "이 일 하다보면 또 다른 곳에서 와 달라고 아우성이다"라며 "조문도 좋지만 자원봉사에 많이들 동참해 줬음 좋겠다"고 말했다.

방명록 지원에 나선 서모(26)씨도 "국민장으로 치러지는만큼 많은 시민들이 함께 고통을 분담했음 좋겠다"고 부탁했다.

자원봉사를 모집하는 노사모 한 관계자는 "하루 평균 200~300명 정도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며 "그러나 대부분 파트 타임으로 봉사하고 가다보니 군데군데 일손이 모자라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여성 분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데, 짐을 나른다던가 청소를 도와주는 등 힘을 많이 쓸 수 있는 남성 분들의 도움이 지금 가장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9신: 2009-05-26 13시 25분] "유족, 사저 부근으로 장지 결정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지 예정지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유족들은 형 건평씨가 소유하고 있는 땅에 장지를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유족들이 가족회의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의 장지를 사저에서 서쪽에 있는 형 건평씨 소유 밭(김해시진영읍 본산리 산12번지)660제곱미터 중 100제곱미터에 비석을 세우고 안장(평장)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8신: 2009-05-26 13시 23분]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대표 "영원히 잊지 못할 위대한 업적은 10.4 선언"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등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치열하게 맞섰던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영원히 잊지 못할 위대한 업적인 10.4선언을 남겼다''''고 평가했다. 오종렬 대표는 26일 오전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에 헌화한 뒤 기자들과 만나 ''''노 전 대통령은 장렬하게 산화해 다시 우리들 품으로 돌아오실 것이다, 아니 이미 서민의 품으로 돌아오셨다''''며, ''''슬픔을 딛고 국민주권이 바로 서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오종렬 대표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미FTA를 꼭 체결해야 한다는 노 전 대통령과 충돌도 있었다''''면서도 ''''6.15선언에서 담지 못한 군사적, 정치적 장애를 제거하는 데 힘을 써주십사 부탁했는데 거침없이 해냈다''''고 후한 평가를 내렸다.

한미FTA 저지 범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지내기도 한 오종렬 대표는 참여정부 시절 한미FTA 체결과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을 두고 노 전 대통령과 첨예하게 대립한 바 있다.

[7신: 2009-05-26 13시 17분] ''봉하마을''에 조기 게양된 태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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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 나흘째인 26일 오전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 태극기가 조기로 게양되어 있다.

[6신: 2009-05-26 10시 17분] 권양숙 여사 장지 예정지 둘러봐

권양숙 여사와 유족들이 오전 7시부터 30분동안 지관(구영옥 80, 진영읍)이 지정한 장지 예정지(사저 서편 50미터 상거)를 둘러본 것으로 알려졌다. 장지는 가족회의 후 최종 결정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진영읍 이장단 등 자생단체 회원 230여명이 마을 청소 작업을 하고 있으며, 봉하마을에서 진영역을 오고가는 셔틀버스 12대 운행하고 있다. 배차시간은 밤 12시까지 10분 간격.

[5신: 2009-05-26 09시 54분] 전통차 모임 ''가야다회'' 회원 장군차 달여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나흘째인 26일, 김해 봉하마을 분향소에는 노 전 대통령이 무척 즐겨 마셨던 ''장군차'' 향기가 가득했다.

김해지역 전통차 모임인 가야다회 회원 10여 명은 이날 아침 일찍 흰색 한복을 차려입고 분향소를 찾아 노 전 대통령을 위해 정성스럽게 장군차를 달여 바쳤다.

차를 우려낸 뒤 찻 잔을 들고 빈소 앞에 다가간 회원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찻 잔은 떨렸다.

가야다회 회원 차봉선(55)씨는 "노 전 대통령이 전통차 홍보에 많은 관심을 갖고 위로와 격려해 주신 기억이 있다"며 "장군차를 즐겨 마셨던 노 전 대통령께서 가시는 길에 차 한잔 드시고 편히 쉬셨음 좋겠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귀향 후 지난해 4월, 봉하마을 뒷산 봉화산에 2년생 장군차 나무 6천 그루를 심는 등 장군차 재배와 상품화에 관심이 많았으며, 평소에도 장군차를 자주 달여 마신 것으로 알려졌다.



[4신: 2009-05-26 09시 42분] 盧 전 대통령 중학교 후배 분향소 방문

"이제는 편히 쉬셨으면 좋겠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김해 봉하마을에는 노 전 대통령의 모교인 진영중학교 학생들이 교복을 단정하게 갖춰 입고 빈소를 찾았다.

이날 오전 8시 30분쯤, 진영중학교 반장과 부반장 등 40여 명으로 구성된 학생조문단은 분향소에서 선배였던 노 전 대통령을 위해 국화꽃을 헌화하고 묵념을 했다.

심아람(2학년) 양은 "대선배님이셨는데 돌아가셔서 안타깝고, 이제는 편히 쉬셨음 좋겠다"고 말했다.

인솔교사는 "노 전 대통령은 16회 졸업생이셨다"며 "2007년엔 학교 방문도 하셨는데 서거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나 안타까워 수업 전에 아이들과 함께 조문을 왔다"고 말했다.

진영중학교는 학생 수가 부족해 지난 79년 제32회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폐교됐다가 2007년 3월 재개교를 했다. 학교 주변에는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안히 주무십시오" 등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후배들의 플래카드가 여러 개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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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신: 2009-05-26 07시 00분] 서거 나흘째 봉하마을 새벽부터 조문행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김해 봉하마을에는 날이 밝자마자 조문 행렬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밤새 촛불행렬이 봉하마을을 가득 메워 지금까지 50만 명 이상이 애도했다.

이날 오전 7시부터 조문객 1백여 명이 분향소 앞에 대기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출근하기에 앞서 빈소를 찾은 사람도 있고 노부부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에게 국화 한송이를 바치며 애도했으며, 일부는 감정이 북받친 듯 통곡했다. 애도행렬은 이날 오전 5시까지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쉼 없이 계속됐다.

1시간 동안 분향소 주변을 정리한 뒤 오전 6시부터 나흘째 조문이 시작됐다. 애초 오전 7시부터 조문 재개가 예정됐지만, 아침 일찍 조문객이 몰려와 분향소를 열어 달라고 요구하면서 1시간 앞당겨졌다.

25일까지 사흘간 봉하마을의 누적 조문객은 47만 6천여 명으로 잠정 집계돼 밤새 촛불행렬을 감안하면 50만 명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25일 하루 일행을 잃어버렸다며 관광안내소에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10여 건에 달했으며, 분향소 설치 이후 처음으로 미아가 발생해 긴급 안내방송이 나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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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신: 2009-05-26 07시 00분] 이건희 전 회장 등 조화

26일 0시 10분 쯤 김기영 삼성전기 부사장 조문하였음.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과 그룹 임직원 일동 명의 조화 설치, 문익환 목사 가족도 조화 설치

03시에는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과 간부 등 30여명이 조문을 다녀갔음. 03시 15분에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함세웅 신부 등 40명이 조문해 15분간 기도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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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신: 2009-05-26 01시 00분] 조문객수 집계 포기

26일 새벽 0시 58분 현재 조문객 행렬 1Km 이상 늘어져(한줄에 7~8명씩) 이런 상황이 2~3시간 이상 계속됐음. 도저히 현재원이 몇명인지도 가늠이 안됨.

관광안내소는 저녁 6시 이후에도 조문객수 파악하려했으나 결국 실패. 마을 입구 2명이 헤아리기엔 너무 많은 수의 조문객이 쉼없이 밀려들어 카운트 안된다고. 사실상 집계 포기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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