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이 2018년 11월 중국에서 김성혜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을 만나 '거짓말쟁이'로 몰린 이화영 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두둔하며 "우리 형 욕하지 마라. 천만불이든 얼마든 내가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동석자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
이 전 부지사가 북한과 약속했다는 '스마트팜'(협동농장 현대화) 사업 비용 500만달러를 경기도가 지급하지 않자 북측이 불쾌감을 드러냈고, 이에 대해 김성태 전 회장이 대납을 약속하게 된 구체적인 정황이 포착된 것이다.
수원지검 형사6부(김영남 부장검사)는 5일 이화영 전 부지사를 소환 조사한다. 외국환거래법 위반 등 대북송금 혐의와 관련해 이 전 부지사가 검찰에 출석하는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검찰은 이번 조사에서 이 전 부지사와 방 부회장의 대질 신문을 통해 대북송금 등에 관해 이 전 부지사가 얼마나 인지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적으로 캐물을 계획이다.
검찰은 2018년 11월 말 중국 선양에서 김성태 전 회장과 안부수 아태협 회장,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 등이 김성혜 조선아태위 실장, 박철 부위원장, 대남 공작원 리호남 등을 만난 저녁 자리를 가진 사실을 확인했다.
당시 북측 김성혜 실장이 이 전 부지사 얘기를 꺼내면서 "경기도가 스마트팜을 지원해준다고 했는데 소식이 없다", "이화영이 약속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안 지켰다" 등 비판조로 얘기했다고 한다. 이를 들은 김성태 전 회장이 술에 취해 "우리 형(이화영) 욕하지 마라. 내가 해주면 될 것 아니냐"라며 "비용이 얼마냐, 천만불이든 얼마든 내가 해주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당시 자리에 동석한 방용철 부회장은 지난 3일 수원지법에서 열린 이 전 부지사와 자신의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같이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방 부회장은 "김성혜 실장의 말을 김 전 회장이 기분 안좋게 들어 테이블까지 엎어버리려고 했다"고 증언했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곤란하게 했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이 전 부지사가 방북을 해서 지원을 약속했는데 약속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후일담을 들었다"며 "거기에다 2018년 10월 방북 당시 스마트팜 비용 500만달러를 약속했는데 지키지 않아 총 2차례"라고 설명했다.
방 부회장은 이화영 전 부지사가 '쌍방울의 대북송금이나 대북사업을 추진한 것을 몰랐고 경기도는 이와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얘기"라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는 법정에서 "쌍방울은 삼성도 아니고 현대도 아니다"라며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통해서 안부수 회장을 소개받았고 대북사업을 의논했다. 경기도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누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겠느냐"라고 말했다.
이어 "스마트팜 비용 500만달러를 부담할 때 엄청난 고민을 했고 이재명 방북 비용도 처음 500만달러 요구한 것을 돈이 없다고 사정해 300만달러만 했다"라며 "돈 100억원이 장난이 아니다. (김성태) 회장 입장에서는 회사가 잘 되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쌍방울이 독자적으로 대북사업을 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시가총액 1조도 안 되는 회사다. (현금을) 다 합쳐서 300억원도 없는 회사가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했다.
한편 검찰은 김 전 회장의 자택과 이 전 부지사가 수감 중인 구치소 등을 지난달 압수수색했다.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의 대북송금을 인지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추가 증거 확보를 위한 강제수사로 풀이된다.
이 전 부지사는 여전히 대북송금과 뇌물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이 전 부지사의 검찰 수사 변호를 맡고 있는 현근택 변호사는 최근 취재진에게 "방 부회장의 진술 변경은 재판부에 진술 신빙성에 대한 의문을 갖게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방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법정에서 '기소된 이후 법정에서 범행을 전면 부인하다 기존 입장을 번복해 범행을 자백한 이유가 뭐냐'는 검찰 질문에 "김 전 회장이 검거됐고 재판을 몇 번 받다보니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저랑 30년 넘게 생활했던 동생들까지 증거인멸로 구속됐고, 피의자 신분이 된 사람도 10여명이 된다"면서 "그 사람들 또한 어쩔 수 없이 위증을 한다는 얘기 듣고 나서 보니 제가 도저히 할 짓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던 찰나에 회장님이 검거됐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