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도움 안됐다"…숨진 전세사기 피해자의 절규

전세금 못 돌려받은 30대 전세사기 피해자 숨진 채 발견
피해 극복 노력했지만 정부 지원책 '아무런 도움 안돼'
유서에는 '못 버티겠다…나의 죽음으로 더 좋고 빠른 지원책 나오길'
NGO "전세사기는 사회 재난…정부와 국회가 피해자 구제 앞장서야"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 아파트. 연합뉴스

정부가 최근 수도권을 중심으로 발생한 전세사기 범죄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지원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갇힌 피해자가 적지 않다.
 
특히 지난달 숨진 채 발견된 30대 전세사기 피해자의 유서에 정부의 지원책이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내용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을 위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금 못 돌려받은 30대 전세사기 피해자 숨진 채 발견


3일 인천시 등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오후 5시 43분쯤 인천 미추홀구의 한 자택에서 A(37)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120억원대 전세사기 혐의로 구속된 건축업자 B(62)씨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 가운데 1명이다. 경찰은 범죄 관련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A씨 시신을 가족에게 인계했다. A씨 집에서는 유서도 함께 발견됐다.
 
앞서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의 주범으로 B씨를 사기와 부동산 실권리자명의 등기에 관한 법률 위반 등 혐의로 지난달 구속했다. 공인중개사, 바지임대업자, 중개보조인 등 공범 58명은 불구속 입건됐다.
 
B씨는 공범들과 공모, 지난해 1~7월 인천시 미추홀구 일대 아파트와 빌라 등 공동주택 163채의 전세 보증금을 세입자들로부터 받은 뒤 가로챈 혐의 등을 받고 있다. 피해 규모는 총 126억원에 이른다.
 

피해 극복 노력했지만 정부 지원책 '아무런 도움 안돼'


인천 전세사기 일당 엄벌 촉구하는 피해자들. 연합뉴스

A씨의 전세빌라는 현재 임의 경매에 넘어갔다. A씨의 빌라는 2011년 주택 근저당권이 설정됐고 A씨 빌라의 전세금은 7천만원이다. 하지만 A씨는 지금까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은 정부의 지원에 따라 최소 6개월에서 최장 2년까지 살 수 있는 긴급거처를 제공받거나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한 경우 가구당 최대 2억4천만원을 연 1~2%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A씨는 이러한 정부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했다.
 
A씨는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뿐 매각 기일이 잡히지 않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피해사실확인서를 발급받을 수 없었다. 이 확인서는 주택 경매가 끝나거나 강제 퇴거 조치가 이뤄져 실제 전세사기 피해가 확인됐을 때 발급된다. A씨는 확인서가 없기 때문에 정부 지원도 받을 수 없었다.
 
그는 떼인 보증금의 일부라도 받을 수 있는 최우선변제금 보상 대상인 소액 임차인에도 속하지 않았다. 최우선변제금은 전세보증금이 소액일 경우 경매나 공매로 넘어갔을 때 은행 등 선순위 권리자보다 앞서 배당받을 수 있는 금액을 말한다.
 
A씨 빌라의 경우 소액임차인 전세금 기준은 6500만원 이하였고, 이에 따른 최우선변제금은 2200만원이었다. 즉 전세금이 6500만원 이하였다면 최소 2200만원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A씨의 전세금은 그보다 500만원 많은 7천만원이었다. 500만원의 차이로 A씨는 보증금을 한푼도 되돌려받을 수 없었다.
 
또 A씨는 시중 주요 은행의 대출 연장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은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들을 위해 최장 4년까지 전세대출을 연장해주기로 했지만 이는 HUG 대출 상품에만 국한됐다. HUG 보증 전세대출을 받지 않은 A씨는 지원 대상이 아니었다.
 
은행 대출로 마련한 전세금과 집을 모두 잃은 A씨는 대출 상환기일의 압박을 받았다. A씨는 오는 10월 끝나는 전세금 대출 연장이 가능한지 은행에 문의했지만 '집 주인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안된다는 대답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서에는 '못 버티겠다…나의 죽음으로 더 좋고 빠른 지원책 나오길'


전세피해 지원센터서 상담하는 시민. 연합뉴스

전세자금 대출 성격상 대출금을 한 번에 갚아야 하는데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통상 시중은행이 전체 전세자금의 70~80%를 대출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A씨가 은행에서 빌린 돈은 4900만~5600만원 사이일 것으로 추정된다.
 
A씨는 인천 전세피해지원센터가 문을 연 직후인 지난 1월 31일 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는 등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아무런 지원을 받을 수 없었다.
 
A씨의 유서에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모여 구성한 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를 통해 많은 위로를 얻었지만 더는 못 버티겠다. 자신이 없다'라며 '정부는 제대로 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이게(나의 죽음이) 계기가 돼서 더 좋은 빠른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내용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NGO "전세사기는 사회 재난…정부와 국회가 피해자 구제 앞장서야"


전세사기 피해자가 안타깝게 숨지자 정부와 국회에 피해자 구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다시 확산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인 인천시 미추홀구전세사기피해대책위원회는 보도자료를 내 "수많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힘들게 모은 전 재산을 잃고 대출 상환 압박을 받거나 길거리로 내몰렸다"며 "정부와 인천시 대책은 재발 방지 중심이고 피해 구제 방안은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인 주거권네트워크도 "정부와 국회는 지금이라도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모든 공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전세사기 피해자의 안타까운 죽음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의 무게와 심각성을 방증한다"며 "정부와 국회가 현행법의 한계를 이유로 전세사기 피해자들에 대해 실효적인 구제대책은 등한시한 채 가해자 처벌과 재발방지 대책에 집중할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은 "무분별한 전세대출과 보증을 남발하던 정부기관과 금융기관들은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개인의 부주의나 잘못으로 몰아간다"며 "전세사기는 사회적 재난으로 피한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는 6일 미추홀구 경인국철(서울지하철 1호선) 주안역 남광장에서 A씨의 추모제를 열 계획이다.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으면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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