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야 제일 싼 것 아닐까"…최고 경제고통지수 속 전망도 암울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류영주 기자

40대 주부 정혜인씨는 "물가가 올랐다"는 말로는 겪고 있는 고물가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4인 가족의 장을 볼 때마다 전보다 오른 식품 값에 놀라다보니 "안 썩는 거면 오늘 사두는 게 제일 싼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할 정도라고 한다. 실제로 3일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청양고추는 전년대비 2배, 애호박 61%, 오이 80% 이상 오르는 등 주요 채소류부터 가격이 심각하게 올랐다. 난방비 폭탄에 따른 생산단가 급등 탓이다.

여기에 가공식품은 물론 생수나 조미료까지 가격 인상 소식이 하루가 멀다하고 줄줄이 전해지고, 외식을 위해 방문한 식당에서는 부쩍 비싸진 메뉴판을 확인해야 하는 상황이다. 가격이 올랐다고 먹고 사는 것 만큼이나 줄일 수 없는 건 초등학교 자녀 2명의 학원비다. 정씨는 "학원들도 고물가에 힘들다고 수강료를 올려서, 지난 해 말부터 학원지출이 달 5만원씩 더 늘어났다"고 했다. 1일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2년 미혼 자녀가 있는 부부 가구의 '학생학원교육' 지출은 월평균 36만3641원으로 전년보다 18.3%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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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 임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지난해 근로자 1인당 월평균 임금은 전년보다 18만원 늘었지만 실질임금은 7천원 줄어,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실질임금이 뒷걸음질 쳤다. 정씨를 비롯한 서민들의 생활 수준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각종 통계는 고물가에 허리띠를 졸라맨 서민들의 고충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통계청의 2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 1월 우리나라의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2% 상승했다. 상승 폭은 전월보다 되레 0.2%p커졌다. 특히 구입빈도가 높고 지출비중이 높아 가격변동을 민감하게 느끼는 품목으로 작성된 생활물가지수는 6.1% 올랐다. 소비동향을 보여주는 소매판매가 2.1% 줄어든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음식료품 등 비내구재는 물론 의복 등 준내구재부터 승용차 등 내구재까지 모두 판매가 감소했다.

앞으로도 물가가 빠르게 내려갈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게 더 큰 문제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소비자물가는 향후 둔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 여건 변화를 감안할 때 불확실성이 크다"며 물가 둔화 속도가 "더딜 것"이라고 못박았다. 물가 상승 주요 요인인 국제유가의 경우 중국 리오프닝과 함께 서서히 거래 가격선을 끌어올리는 중이고, 기대인플레이션(향후 1년간 예상하는 물가상승률)을 높이는 공공요금은 기간과 폭이 불확실할 뿐 인상 자체는 기정사실이다. 당장 기대인플레이션율은 4.0%로 전월 대비 0.1%포인트 상승했다.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 전망한다는 의미다.

연합뉴스

외부 환경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크리스토퍼 월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이사는 2일(현지시간) 홈페이지에 "인플레이션이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진정되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등 미 연준 내에서는 이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1월 신규 고용, 소비자물가지수, 개인소비지출 모두 전문가 예상치를 상회하는 등 미국부터 물가상승률이 목표치(2%)에 한참 못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의 2월 소비자물가도 전년 대비 8.5% 상승하며 상승률 둔화세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등 인플레이션 규모가 글로벌한 수준이다.

이같은 추세는 우리 기준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행이 지난달 23일 1년 6개월만에 기준금리를 동결한 이후 원달러 환율은 1310~1320원대로 뛰고 외국인 자금은 1조원 가까이 빠져나갔다. 한미 금리 격차는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유출->원화 가치 하락->수입물가 상승->물가 인상까지 이어질 수 있다. 한은 이창용 총재부터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인상기조가 끝난 건 아니"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고물가는 물론, 고금리로 인한 서민 고통이 한동안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을 합쳐 체감 경제상황을 나타내는 경제고통지수는 집계 이래 1월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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