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5남매(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난 고인은 고학 끝에 1959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다. 4학년 때인 1962년 슈만의 가곡 '시인의 사랑' 전곡을 부르며 성악가로 데뷔했고, 1967년 국립오페라단 오페라 '마탄의 사수' 주역으로 발탁됐다.
1970년 미국으로 건너가 줄리아드 음악원과 맨해튼 음악원 등에서 수학했다. 당시 전설적 소프라노 마리아 칼라스의 줄리아드 음대 오디션에 합격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3년 서울대 성악과 교수로 부임한 후에는 '클래식 음악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는 소신에 따라 대중적 행보를 보였다. 시인 정지용의 시에 작곡가 김희갑이 곡을 붙인 '향수'는 1989년 음반 발매 후 현재까지 130만 장 이상 팔리는 등 성악가와 대중가수 협업인 크로스오버의 대표적 명곡으로 꼽힌다.
'향수' 음반이 성악계의 반감을 사면서 1991년 국립오페라단 단원 재임용에서 탈락하는 고초를 겪었지만 1990~2000년 전국에서 2천 회 이상 공연하는 등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섰다. 2003년 서울대에서 퇴임한 뒤에는 백석대 석좌교수와 음악대학원장을 맡았다. 2011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안희복 한세대 음대 명예교수, 아들 플루티스트 박상준씨가 있다. 장례 예배는 LA 현지에서 3일 오후 6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