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처음부터 '메타버스를 이용해야지' 하는 느낌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손수정 PD는 기획 단계였던 지난해 3~4월이 여전히 코로나 시기였고, 이럴 때 '요즘 애들은 뭐하고 놀까, 어떻게 소통하고 지낼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메타버스 공간에서 자기들끼리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하는 문화로 접근하고자 했고, 요즘 들어 아이돌 위주의 프로그램이 없는 점, TV에서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위주로 산업이 전환되는 상황도 두루 고려했다.
기획 단계부터 공들인 것은 서사와 세계관 확립이었다. 출연진과 만나 오랫동안 상의해 각자 캐릭터와 서사를 탄탄하게 만들어 나갔다. 손 PD는 "제작진 중에도 2D 캐릭터에 거부감 있던 친구들이 있었다"라며 "진입장벽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개개인에게 서사를 부여한 게, 아이돌 친구(출연진)부터 여기에 몰입해 있으면 보는 사람들도 거부감 없이 들어갈 수 있고, 캐릭터로서 온전히 받아들일 때가 분명히 올 거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조주연 PD는 구체적인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캐릭터를 세심하게 만들기 위해 머리와 눈 색깔, 키, 몸무게 등 여러 가지 데이터를 수집해 반영했고, 각 캐릭터의 '월드'도 30개 버전으로 준비했다. 산타 마을에서 태어난 '루비', 만화 속 주인공이 되고 싶은 '도화' 등 각양각색의 '월드'가 펼쳐진 이유다.
'소녀 리버스'는 전·현직 걸그룹 멤버 30명이 출연하는 '대규모' 예능이었다. 뒤로 갈수록 탈락자가 생겨 총인원이 줄긴 하지만 워낙 출연진이 많아서 편집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조 PD는 "30명에 왓쳐분들도 4명이라 34명의 오디오가 있다. VR 카메라맨이 같이 있어도 누가 어디서 나를 찍고 있는지 소녀들은 전혀 모른다. 카메라가 보이지 않고 투명 아바타로 있기 때문에. '근데 찍고 있나?' 하는 얘기를 할 정도로 이 친구들이 말을 막(자유롭게) 뱉었기 때문에 오디오 선별하는 과정이 굉장히 오래 걸렸다"라고 말했다.
예를 들어 한 번 촬영을 6시간 정도 하면, 30인 기준으로 했을 때 '듣는 것'에만 최소 180시간이 걸렸다. 조 PD는 "좋은 오디오, 나쁜 오디오 선별 과정이 오래 걸렸다. 소멸(탈락)해서 (나중에는 수가) 조금 줄었지만 마지막까지 열 분의 소녀가 있었다. 버추얼(소녀V)일 때 매력적인 장면은 소녀X(현실 본체)로서도 귀엽기 때문에 귀여운 포즈나 표정을 했을 때 현실 소녀X와 싱크 맞추느라 편집 시간이 오래 걸렸다"라고 부연했다.
'메타버스 예능'이기에 더 까다로웠던 부분도 있다. 우선 저작권 문제가 있었다. '소녀 리버스'는 당초 지난해 11월 말 공개 예정이었으나, 크리에이터와의 저작권 협상이 마무리되지 못해 올 초로 공개 일정을 연기했다. 이에 손 PD는 "크리에이터 한 분도 빠짐없이 협의했고 콘텐츠 제작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후속 논의까지 전부 다 마친 거로 안다"라며 "한 번 딜레이(연기)된 후에는 서면 계약과 크리에이터 보상까지 모두 마친 후 시작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희 나름대로는 커버하기 위해서 상주 인원을 부스 앞에 배치해놨고 (부스) 안에 있는 걸 모니터하기도 했는데, 실제(얼굴)로 보는 게 아니니 부스 촬영에서는 그런 것(출연진 컨디션)을 캐치하는 게 살짝 늦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앞으로도 보완될 상황은 좀 더 많은 것 같다. 실제 촬영보다는 준비 기간과 촬영 시간이 길고 편집도 오래 걸리고 어려웠다"라고 털어놨다.
만들면서 어려움만 느낀 것은 아니다. 조 PD는 "'소녀 리버스' 만들면서 느꼈는데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라는 거다. 스튜디오에서 인터넷이 요 정도여야 출연진 30명, 스태프 60명이 있어도 구현되는구나, 이게 가능하구나 했다"라고 운을 뗐다. 조 PD는 "움직임이 가끔 튀는 부분이 있는데 기기가 얼마나 날 잘 인식하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그게 발전되면 훨씬 더 양질의 콘텐츠가 나오지 않을까"라며 "구성적으로는 충분히 모든 것을 예능으로 만들 경지에 오르지 않았나 싶다"라고 바라봤다. <끝>